좋은 말씀/박윤선박사

우리의 감사 (살전5:16~18)

새벽지기1 2016. 10. 28. 07:45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주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시기를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필요를 위해 기도함에도 열중해야 되겠지만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1. 감사의 원천
기뻐함과 기도함은 감사의 두 원천이다.

신약 성경은 감사에 대하여 말할 때에 그것을 기도와 함께 말하든지(골 4:2; 빌 4:6),

또는 그것을 기쁨(평강)과 함께 말한다(살전 5:16, 18; 골 3:15).

사실상 기쁨이 없고 기도가 없는 신자는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지 못한다.

(1) 항상 기뻐하는 생활을 하려면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만일 신자가 순종하는 노력이 없이도 기뻐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다면 본문 말씀이 명령문으로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면, 거듭나는 것은 사람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므로 성경은 '거듭나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명령은 순종을 요구하며 순종은 고난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성경은 증거하기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우셨다고 한다(히5:8). 그렇다면 일반 신자들이야 더욱 고난으로 말미암아 순종을 배우게 되지 않겠는가.

우리는 고난이 없이는 기쁨을 가져보지 못하며, 고난이 없이는 참된 기도도 해보지 못한다.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는 생활을 하였는데 그는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한다"(고후 6:10)고 하였다. 그가 말한 "근심"은 고난 중에 받는 어려움을 의미한다. 그는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전 13:6)고 하였으니 이 말씀도 기뻐할 조건이 없는 쓰라린 고초 가운데서 기쁨을 누린다는 뜻을 보여 준다. 곧, 신자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그것과 충돌하면 진리의 위로가 성령의 역사에 의하여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런 체험은 실상 주님을 만남으로 기쁨을 얻는 그 생활을 가리킨다. 이 기쁨은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것이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6:22)고 하셨다.

(2) 참된 기도생활도 역시 고생하며 순종하는 자만이 할 수 있다.

칼빈은 말하기를 "기독 신자가 기도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대로 놓아두면 우리의 기도생활은 없어진다. 우리는 성령의 감동을 기다려서 기도하겠다고 잘못 생각하면 안 된다."라고 하였다. 기도는 고생하며 힘써야 되어진다. 금식기도는 그래서 필요하다. 기도는 내 살에 배어야 되고 내 뼈에 배어야 된다. 그래야 그리스도를 만난다. 예수님을 만나는 길 중에 하나는 분명히 힘써 기도하는 것이다. 롬 8:10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고 하였다.


2. 범사에 감사하자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면 무슨 일이든지 내게 문제될 것이 없고 죽음까지도 유익함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할 뿐이다. 기독 신자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다.

(1) 신자는 말할 수 없는 주님의 은사를 인하여 감사한다(고후 9:15).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는 너무 커서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렵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신 은혜이며, 또한 그와 함께 만물을 우리에게 주신 은혜이다. 롬 8:32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하였다. 이 "모든 것" 가운데는 사망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고전 3:21-22에 말하기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라고 하였다. 사망까지도 우리에게는 유익이 된다고 하였으니 사망보다 더 나쁜 것은 없는 만큼 우리는 감사하지 못할 것이 없다.

(2) 신자는 하나님의 일이 잘될 줄로 믿고 감사한다.

하나님의 일이 잘되면 나도 잘된다. 요셉은 임종시에 그의 형제들에게 하는 말이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유언하였다(창50:24). 우리도 하나님의 예언과 약속이 반드시 성취될 것을 내다보고 감사하
자.

그런데 어떤 사건은 일조일석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한세상 사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개인개인에게 행하시는 그의 심판을 우리는 목격하게 된다. 교계의 교역자들 중에도 진정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하여 일하는 이들이 있다. 만일 그들이 평생토록 무사하다면 마지막 심판을 두려워해야 된다.

(3) 신자는 자기를 대적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감사한다.

우리는 무모하게 대적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나를 적대하는 그들 때문에 실상 나 자신은 더 잘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내가 잘하는 가운데도 흠이 있을 수 있는데 나를 대적하는 그들로 인하여 나 자신을 살펴서 더욱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며, 더욱 성결을 힘쓰게 된다면 그것은 얼마나 나에게 필요한 일인가! 나는 다윗과 같이 나의 죄가 머리털과 같이 많은 줄 알아야 된다. 시 40:12 참조. 대적하는 이들이 나로 하여금 내 죄를 생각나게 해주며 또 나로 하여금 겸손하도록 만들어 준다.

목사인 나에게는 죄가 많은 중에도 특별히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는 죄가 많다. 나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에 대해 적합한 감사를 드리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내게는 환난과 고통과 질병을 인하여 감사하지 않는 죄가 있다. 그러므로 나를 대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감사한 일이다. 휫필드는 말하기를 "왜 사람들이 내가 지나갈 때에 돌로 치지 않았을까?"라고 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