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박윤선박사

심판의 날이 가까움을 명심하고 물질을 초월하여라 (겔 7:12-13)

새벽지기1 2016. 10. 24. 07:26


기독신자는 심판의 날을 기억하고 사는 사람이다. 롬 14:10-11에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고 하였다. 우리가 세상에 쌓아 놓은 재산도 그날에는 소용이 없고, 도리어 그것이 주님의 일을 하지 않은 우리의 죄악을 증명해 줄 뿐이다.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약 5:3). 그러므로 우리는 심판의 날이 오기 전부터 물질을 초월하여 그날을 대비해야 된다. 우리는 무엇을 매수(買收)하고도 그리 기뻐할 필요 없고, 무엇을 팔고도 근심할 것 없다. 우리는 물질을 초월해야 된다.

1. 물질을 초월한 신자는 물질이 있어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없어도 하나님께 감사함

우리는 물질을 초월하여 살았던 아브라함을 잘 안다. 그는 그의 조카 롯과 헤어져 살기 위해 자기 생활의 터전이 될 곳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롯에게 말하기를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라고 하며 선택의 우선권을 조카에게 양보하였다. 이때에 롯은 자기의 욕심을 따라 “여호와의 동산 같고” 물이 넉넉한 땅 요단 온 들을 택하여 소돔까지 옮겨갔고(창 13:10-13), 아브라함은 산지(山地)인 헤브론으로 장막을 옮겼다(창 13:18). 훗날 롯이 욕심으로 차지한 것은 그에게 큰 화(禍)가 되었다(창 19장). 롯과 헤어진 후 아브라함은 소돔 왕을 도와서 승전한 뒤에, 그 왕이 전리품(戰利品)을 취하라고 하는 것을 거절하였다(창 14:21-23).

신앙의 인물 욥은 부유한 때에도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으며(욥 1:2-3,8,10) 물질 때문에 범죄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재산을 일시에 잃었을 때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하기를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라고 하였다.

그리고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히 11:26). 그가 그렇게 물질을 초월하게 된 비결은, 히 11:26의 말씀과 같이 ‘상 주심을 바라봄’이었다. 사람은 영원을 사모할 수 있고 또 그리해야 된다(전 3:11). 영원한 나라의 보화를 귀한 줄 아는 것이, 이 세상 물질을 초월하는 비결이다.


2. 물질을 초월한 신자는 남들을 돕기 위하여 직무에 충성함

물질을 초월한 신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청지기임을 바로 앎으로 남을 돕기 위하여 직업을 가진다. 이에 대하여는 사도 바울의 생활이 그 표본이라고 생각된다. 그는 말하기를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4-35)라고 하였다. 신자는 남에게 주기 위하여 일해야 된다. 남을
도와 주기 위하여 사업하면, 그 일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성공하기도 쉽다.

주는 것이 복이 있는 이유는 (1) 남에게 주는 생활을 하는 자는 자기 속의 개인주의를 죽이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자는 그 사욕(私慾)으로써 자기 자신을 해롭게 한다. 사욕은 인격을 파괴시킨다. (2) 남을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하여 도와주는 생활은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는 것이므로 복을 받는다(마 22:39 참조). (3) 남을 도와주는 자에게는 하늘에 보화가 있으므로 복되다(막10:21). (4) 남에게 주는 자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복을 받는다. 신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에게 감사하기 위하여 구원을 받았으니(엡 1:3-6),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그의 최고의 목적이다. 신자가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계속하기만 하면 그것은 그가 이적(異蹟)을 행하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이다. 감사는 이적보다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