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교리강좌(1)

28장 속죄

새벽지기1 2016. 5. 27. 13:42


28장 속죄

 

1.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

 

1) 십자가 사건의 중요성

- 신약 성경 기자들은 십자가 사건에 큰 중요성을 부여한다

신약성경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건을 직접적으로는 175번, 간접적으로는 더 많이 언급한다. 사복음서는 주님에 대한 네 가지 묘사일 뿐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21;25).

 

복음서는 견본, 또는 초상화라 할 수 있다. 복음서 하나 하나가 비교적 짧은 책이지만 놀랍게도 각각의 책은 삼분의 일을 주님의 죽으심에 할애했다. 주님의 성육신과 생애와 가르침도 대단히 중요한 것이지만, 이 모든 것보다도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 명심할 것은 성령의 인도와 지도 아래 복음서를 기록할 때, 그들이 강조하는 십자가의 죽으심이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임을 잘 알면서도 전면에 내세웠다는 사실이다.

 

사도행전 역시 주님의 죽으심을 강조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면 두 가지 일을 했다. “그리스도가 해를 받아야” 할 것과,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는 것(행17:3).

서신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고전15;3).

 

베드로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1;18-19). 요한도,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2:2). 계시록도,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7:14)

 

최고의 중요성을 부여한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우리도 살펴 보아야 한다. ‘십자가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주님의 죽으심의 의미는 무엇이며 이 사건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 십자가 사건에 대한 오해와 무지는 커다란 문제를 낳는다

십자가의 교리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 신약성경을 바르게 이해한다면,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는 우리의 이성을 최대한 사용하면서 주의 깊게 접근해야 하는 대상이다. 십자가는 중심이기 때문이다. 우리 영혼의 원수이자 대적이 이 특별한 진리를 모호하게 하고 혼동시키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필요한 것은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일 뿐 그 의미에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은 십자가에 대해 나름대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해석이 틀렸을 경우의 위험성은 정말 끔찍하다. 그래서 진리가 무엇인지 검토하고 우리가 성경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믿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십자가의 교리적 정의 따위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언제나 십자가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해서, 심지어 강단 위나 자기 교회의 어딘가에 십자가를 걸어 놓았다고 해서 그가 십자가에 대해 바른 교리를 가지고 있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철학적 사상이나 공상들을 덮어 씌운 사람들이 많이 있다.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십자가를 무용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2) 십자가와 관련된 잘못된 개념들에 대한 반론

- 예수님은 죽음을 예상치 못하고 당하신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자가의 사건을 하나의 비극 혹은 사고라고 생각한다. 주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전혀 에상치 못하신 채 갑자기 당하셨고, 주님이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다 끝장이다”라는 뜻이었다고 말한다. 주님의 삶은 실패로 끝났다고 한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 대해 말씀하셨으며, 자기 제자들을 준비시키셨다. 특히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시몬 베드로가 신앙을 고백한 이후 우리 주님은 즉시 십자가와 지신의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주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고 말씀하셨다.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은 법이 없느니라”(눅13:33). 히브리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이 세상에 오셨다.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히2:14). 베드로,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행2;23). 주님은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고 하심으로 죽으실 정확한 시점까지 아시고 사흘 전에 이미 경고하셨다.

 

- 예수님의 죽음은 순교자로서의 죽음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 훌륭한 교사가 자기의 가르침을 철회하게 하려는 사람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기꺼이 순교자로서 죽어갔다고 한다. 순교자들은 승리와 기쁨 가운데 처형됨으로 영광을 얻었다. 그러나 주님은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번민을 느끼셨고(요12:27),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뇌하셨다(마26;19). 주님의 죽음은 독특한 것이었으며 순교자의 죽음보다도 위대한 죽음이었다. 그것은 한 가지 방법으로만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죽음이었다. 신약 성경은 이 사건이 사람의 구원에 필수적인 것이었음을 분명하게 밝힌다.


3) 십자가와 구원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들

속전설; 십자가에서 포로로 잡힌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마귀에게 속전을 지불하셨다고.

 

만족설; 안셀무스. 사람이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의 명예-공의가 아님-가 손상되었다. 그리스도가 자신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명예를 보상했다고.

 

도덕감화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는 데는 아무 어려움이 없다. 단지 사람들이 그것을 믿도록 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은 하나님의 사랑을 놀라운 방법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하나님의 공의가 전혀 언급되지 않으며, 하나님 편에서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고, 문제는 오직 사람에게만 있다고 한다. 그리스도는 중보자가 아니다.

 

모범설;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훌륭한 모범을 남기기 원하셨기 때문에 즉기까지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된 것이 아닌 것이 된다.

 

통치설; 데일, 그로티우스. 우주에 대한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를 보존하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이 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십자가로 보내셨으며, 성자는 인류로 하여금 죄는 심각한 것이며 금지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 십자가로 가셨다고.

 

신비설; 에드워드 어빙. 그리스도의 인성이 완벽하다고 믿지 않았다. 그 인성에는 죄된 것이 있어서 성령의 능력으로 죄 없이 유지할 수 있었고,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통해 인성으로부터 죄를 몰아내었다.

 

대리회개설; 20세기 초 인기. 주님이 십자가에서 정말로 하신 일은 인류를 대신해 회개를 드리는 일이었다. 사람은 죄에 대해 참된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주님은 인류를 대신해 죄를 고백하셨다고.

 

- 십자가에 대한 올바른 설명은 대속적 속죄의 개념뿐이다

성경의 가르침인 대속적 속죄의 개념이 유일하게 모든 것을 분명하게 설명해 준다.

대속적 속죄의 개념은 십자가와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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