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교리강좌(1)

30장 속죄의 필요성

새벽지기1 2016. 5. 30. 14:04


30장 속죄의 필요성

 

1. 대속적, 형벌적 속죄의 증거(계속)

 

1) 십자가의 죽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음을 강조하는 성경 구절들

- 대속적, 형벌적 속죄만이 죽음 앞에서 주님이 하신 행동들을 설명할 수 있다

주님은 왜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뇌하시며 핏방울 같은 땀을 흘리셨는가? 하신 말씀도 설명해야 한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주님은 분명히 요청하셨다. 이것이 단순히 육체적 죽음에 대한 것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제자 순교자들보다도 못한 분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주님이 지상에 계신 동안 이와 같은 요청을 한 것은 단 한 번뿐이며, 예외적인 경우였다. 이것은 우리 주님의 죽음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그 무엇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주님이 하신 질문은 이것이었다. ‘이것이 정말로 필요한 일입니까? 다른 방법으로 이 일을 하는 것도 가능합니까? 가능하다면 이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하지만 우리 주님은 피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면 순종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이 사실은 우리 주님의 십자가상 죽음이 그 방법상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음을 증명하는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논증이다.

 

십자가에서 버림 받은 주님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15:34) 부르짖음.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 때문에 이런 부르짖음이 나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로 옳지 않다. 십자가에서는 무언가 독특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주님은 하나님께 버림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주님과 영원하신 성부 사이의 교제가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영원하신 품속에서 오셨으며 창세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주님이 영원 가운데 오직 단 한 번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오직 한 가지 이유, 즉 이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했다는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논증이다.

 

- 대속적, 형벌적 속죄만이 롬 3:25-26을 설명할 수 있다

(롬3:25-26)“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주님의 죽음은 과거의 죄 뿐 아니라 모든 시대의 죄를 덮으실 수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하나님이 의로우시면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실 수 있는가? 하나님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십자가에서 자기 아들에게 하신 바로 그 일이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죄를 위한 화목제물로 세우셔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을 보이시는 방법으로 그 일을 하셨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자기의 독생자 안에서 죄를 벌하셨기 때문에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유일한 설명은 그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 십자가상의 죽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음을 시사하는 다른 성경 구절들

(히2:9)“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음의 모든 쓰라림과 공포를 맛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신 것이다. 그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부르짖으신 것이다. 그 때문에 주님은 그토록 빨리 돌아가셨으며 주님의 심장이 문자 그대로 터져 버렸다. 모든 일은 주님이 죽음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이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았다면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께서 자기 독생자, 사랑하는 아들이 이런 일을 겪도록 허락하셨겠는가?

(롬8: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

(요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

2) 보조적 논증들

- 하나님의 진노와 율법에 대한 교리는 형벌과 대속의 필연성을 보여 준다.

- 죄책을 인정하면 형벌적 대속이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

- 대속적, 형벌적 속죄만이 그리스도를 반드시 믿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3) 반론과 답변들- 죄책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 사랑의 하나님은 대속이 없이도 용서하실 것이라는 주장

우리는 대속이 없이도, 아무런 처벌이 없이도 서로를 용서해 준다. 훨씬 더 사랑을 갖고 계신 하나님은 훨씬 더 용서하실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실 뿐 아니라 빛이시고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다. 사람의 경우에 비추어 하나님을 판단하는 논증보다 더 큰 오류는 없다. 사랑에 대한 우리의 감상적이고 엉성하고 불공정하고 불의한 개념을 영원하신 하나님께 적용하는 것은 가장 큰 위험한 시도이다.

- 대속은 하나님의 속성들을 손상시킨다는 주장

하나님의 모든 위대하고 영원한 속성들은 분리시킬 수 없다.

- 대속의 개념은 바울이 만들어 냈다는 주장

(마20:28)“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또한 십자가에서 속죄를 완성하시기 전에 충분히 설명하실 없었던 이유가 있다.

(요16:12)“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이라는 궁극적 진리를 확신하도록 한 것은 부활이었다. 그리고 진리의 빛 아래 그들은 속죄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 대속은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을 설득하여 우리를 용서하시도록 했음을 의미한다는 주장

이것은 성경의 진리를 지독한 웃음거리로 만드는 행위이다. 이러한 구원의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대속하여, 우리가 초래했고 우리가 받아 마땅한 율법의 형벌을 당하시는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2. 속죄 교리의 핵심

 

1) 예수님의 수동적 순종과 능동적 순종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기 위해서는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완전히 화해해야 한다. 율법은 존중되어야 하고 만족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 주님은 그 죄책을 십자가에서 처리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주님께 지우셨다. 주님은 수동적이셨고, 하나님이 그 일을 하셨다. 그 일은 하나님의 행동이었고 그리스도는 수동적으로 순종하셨다. 하지만 주님은 자기의 삶 가운데 능동적으로 순종하셨다. 주님은 율법을 완벽하게 순종하심으로써 이 일을 하셨다. 주님은 율법을 완전히 지키셨다.

(마5:17-18)“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2)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에게 전가된 의

바울이 로마서5장에서 말하듯이 우리는 주님 안에 있다. 우리는 모두 아담 안에 있었다. 아담은 우리의 대표이자 언약의 머리였다. 아담이 타락했을 때 우리는 모두 그와 함께 타락했다.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아담 안에 있었던 것처럼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리스도께 해당되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순종의 행위로 율법을 존중하고 지키셨을 때 그것은 그리스도 자신을 위한 행동일 뿐 아니라 나를 위한 행동이기도 했다. “너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롬6:14)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다. 우리의 구원이 율법의 준수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한 율법은 지켜졌고 존중되었으며, 의로 전가되었다.

(고후5:21)“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롬8:3-4)“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가 되었다는 위대한 교리이다. 주님이 능동적으로 행하신 일이 우리에게 전가되었다. 수동적으로 행하신 일도 우리에게 전가되었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믿고 그와 하나 된 우리는 아무런 두려움이나 떨림, 흔들임이 없이 율법을 바라볼 수 있다. “율법과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나와 아무 관계 없네/ 내 구세주의 순종과 피가/ 내 모든 범죄 보이지 않게 숨기시네”(토플레디). 이 장엄한 교리를 말해주는 찬송가가 극히 적다.

 

'좋은 말씀 > - 교리강좌(1)' 카테고리의 다른 글

32장 언약의 복들   (0) 2016.06.02
31장 승리자 그리스도  (0) 2016.05.31
29장 대속  (0) 2016.05.29
28장 속죄  (0) 2016.05.27
27장 제사장이신 그리스도   (0) 2016.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