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권인목사

찬양의 파장

새벽지기1 2015. 6. 2. 15:22

 

설교의 대상은 인간이다. 설교는 사람을 움직인다.

그러나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다.

그런데 찬송은 하나님과 사람을 움직인다. 오늘 주님이 부르시면 설교도 기도도 끝난다.

그러나 찬송은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히 계속된다. 천사들이 모두 찬양할 것이다.

 

신앙의 절정은 노래를 통해서 나타난다. 잔인한 죽음도 노래를 빼앗지는 못한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했다.

조국과 민족 세계 인류 평화보다도 더 절실하고 웅대한 삶의 동기는 나를 지으신 이를 만족시켜 드리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참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가수가 노래 한곡을 취입하기 위해 같은 노래를 보통 2,000~3,000번이나 부른다고 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똑같은 일이 생겨난다고 한다.

감정을 있는 대로 넣어 부른 노래들은 자기 자신이 그 노래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다.

감정을 제대로 넣어 부른 노래가 히트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 히트한 노래를 수백, 수천 번을 부르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가사 내용이 잠재의식에까지 연결되어 그를 이끌게 된다는 것이다.

가사의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어버린 잠재의식은 나중에 현실의 세계에다 그 내용을 정확히 투영한다.

 

가수 100명을 대상으로 히트곡이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조사해보았다고 한다.

놀랍게도 91명의 가수가 자신의 히트곡과 운명을 만들었고

요절한 가수들은 너나없이 죽음과 연관된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노래는 말에다 곡조를 실은 것이어서 말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한국 노랫말 연구회에서도 '슬픈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일찍 죽거나 슬픈 운명의 길을 걷는다.' 라는 사실을 발표했다.

마음에 밝은 곡조의 노래를 부를 때, 우리들 자신의 '마음의 파장'이 파장에 맞는 일을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의 파장이 '기쁜 곡조'를 연주한다면 '기쁜 일'이 모여올 것이고

우리들 마음의 파장이 '공포의 곡조'를 연주한다면 '두려워해야 할 일'이 일어날 것이다.

 

과거에 우리나라가 못 산 가장 큰 이유는 말 때문이었다.

얼마나 부정적인 말이 많았는가!

자녀에게 실망했다고 자녀에게 "빌어먹을 놈"이라고 하면 자녀는 절대 베푸는 사람이 되지 않고 빌어먹을 놈만 될 것이다.

그리고 흔히 내뱉는 "죽겠다!"는 말도 문제다.

"배고파 죽겠다, 귀찮아 죽겠다."고 하면 죽을 일만 생겨나게 된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에서 자살 율 1,2위를 유지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이어령 교수는 우리나라가 그래도 이만큼 잘 살게 된 이유가 코흘리개 아이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코를 흘리니까 어른들이 말하기를 "얘야! 흥<興>해라!" 그 말을 많이 해서 우리나라가 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머 속에 메시지가 있는 글이다.

 

사실 대중음악이라는 것이 대중의 취향에 맞추고 따라가다 보니 그 음악을 흡수하고 소화하는 능력은 빠르지만,

빨리 지루해지고 경박스럽고 영이 맞지 않는 경우의 노래들로 인해 마음이 불편하고 불쾌해지기까지 하는 경우들을 경험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의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드려야 한다.

개인의 취향이나 개인의 의견에 따라 드리는 예배가 아니다.

인간의 편리에 의해, 인간의 유희를 위해 드리는 예배도 아니다.

하나님의 방법에 맞지 않으면 하나님은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

나답과 아비후의 제사(레10:1-2)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다.

사울 왕의 제사도 받지 않으셨다(사무엘상 13:8-14).

이는 흠칫 사도행전 5:1-6절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연상케 한다.

 

메시야가 오실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네만의 노래를 연주하려 할 것이다.

그 결과는 참으로 역겨운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소수의 선택받은 자가 있어 그분의 노래를 연주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분의 영원한 기쁨의 노래, 사람의 아들이 되신 겸손의 노래, 그분의 갈보리의 노래,

그분의 부활과 승천의 노래를 그분이 주신 각자의 몸의 악기로 그분의 노래를 연주하는 우주적 콘서트의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주님은 오히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의 모든 유혹을 거절하고 오직 하나님의 길로만 당당히 행진할 수 있도록

우리들에게 더 좋은 음악을 들려주시는 분이시다.

모든 아름다운 음악 그 중에서도 더 아름다운 음악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구원받은 무리들이 밤낮 쉬지 않고 드리는 왕에 대한 찬미요 구속의 찬양이다.

아름다운 노래보다도 더 아름다운 노래 그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생명의 노래다.

 

아침마다 매일의 순간순간마다 찬양으로 영혼의 파장을 확장시키리라.

찬양은 내 영혼을 하나님 은혜의 보좌 앞으로 생명의 파장이 되어 천국 잔치를 이 땅에서 맛보게하는 축제가 되리라. 

 

나 이것 다시금 다짐하고 이 은혜, 이 축복 놓치지 않으리라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