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묵상 931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막 11:1-11)

드디어 예루살렘에 예수님이 입성하십니다. 갈릴리에서 시작된 여정의 마지막을 마무리하기 위함입니다. 갈릴리는 골고다를 향하여 준비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성경의 예언대로 준비되었습니다. 오실 메시야는 나귀를 타고 입성하십니다(슥9:9). 말씀대로 준비된 어린 나귀를 타십니다. 주님이 쓰시겠다는 말에 순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린 나귀를 타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사 사람들이 앞에서 뒤에서 따르면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더라고 하면서 외칩니다. 이들의 외침에 속 마음이 다 들어있습니다. 호산나는 지금 구원하소서 입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있어서 구원자는 다윗의 나라입니다. 즉 고통받고 있는 현실에 대한 구원자입니다. 그러므로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막 10:46-52)

맹인이고 거지라 불리는 바디매오와 예수님의 만남입니다. 육체적인 연약함이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게 하였습니다. 바디메오는 여리고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부르짖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여기소서라고 소치를 칩니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조용히 하라고 하였습니다. 평상시 같으면 조용히 하였을 것입니다.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들어간 바디매오 그럴 수록 더 크게 말합니다. 예수님이 생명이고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 소리가 예수님께 들렸습니다. 예수님은 바디메오를 불렀고 원하는 것을 묻습니다. 즉 소리 지른 이유를 묻습니다. 보기를 원한다는 말에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고 말씀합니다. 바디메오가 즉시로 보게되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바디매..

많은 사람의 대속물 되신 예수님 (막10:32-45)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봅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사역의 종착지입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중심입니다. 이곳을 향하여 예수님은 올라가십니다. 예수님은 다시 한번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이유를 가르치십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에게 받는 고난과 모욕과 멸시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과 삼일 만의 부활입니다. 참으로 엄중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에게 예루살렘 입성은 정치적 위상을 얻는 행위였습니다. 함께 동행하였던 제자들 중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정치적 요구를 합니다. 주님이 영광 받을 때 좌우편에 있게 해달라는 요청입니다. 주님의 영광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지만 제자들에게는 정치적 보상이었습니다. 일종의 개국공신의 지위를..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막 10:23-31)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에 놀란 제자들을 보신 예수님은 확고하게 말씀합니다.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하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에 더욱 놀란 제자들은 그럼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묻습니다. 제자들은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사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가능하다고 말씀합니다. 베드로가 이 말씀을 듣자 자신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말에 대답 대신에 중요한 원리로 답하십니다.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세상의 집착을 버린 자는 세상에서 박해와 함께 백배나 돌려받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영생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런 후에 먼저 된자로 나중 되고 나중 된자로서 처음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막 10:13-22)

부모들이 자녀를 예수님께로 데려옵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복된 모습입니다. 어려서부터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받았다면 그의 남은 인생도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는 자녀를 교회로 보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합니다. 그래서 참으로 불행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이렇게 귀한 행동에 대하여 꾸짖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이가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아니하면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에게는 책망이고 부모들에게는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린 아이처럼 예수님께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순수하게 의..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막 10:1-12)

이혼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우리 시대에 크게 인기가 없습니다. 이혼이 자유롭고 때로는 당당하다고 말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혼 문제 특별히 남자가 아내를 버리는 문제에 대하여 분명한 답을 하십니다. 우선 모세의 기록을 통하여 말씀합니다. 신명24:1절의 관점에서는 모세의 이혼증서가 나옵니다. 그러나 모세가 이렇게 기록한 것은 사람들의 완악함때문입니다. 악한 마음으로 인하여 여자가 당해야 할 고통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기록한 본래의 원칙은 둘이 하나가 되는 일입니다.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결혼을 통하여 한 몸을 이루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짝 지워 준 것은 나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 배우자를 버리고 다른 이에게로 장가 들거나 시집가는 것은 간음죄를 짓는 일입니..

섬기는 자 (막 9:30-37)

예수님은 제자들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에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고 부활하실 것을 비로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질문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함께 동행을 하였습니다. 그러는 중에 제자들이 누가 큰 지에 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을 듣고 큰 자에 대한 답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큰 자가 되고 싶거든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자신을 영접하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영정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 시대는 서로 크고자 합니다. 큰 것이 좋다는 생각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진짜 큰 자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큰 교회는 있어도 진짜 큰 교회는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높은..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 9:14-29)

변화산에서 내려온 예수님은 제자들이 말 못하게 하는 귀신들린 아이 문제로 서기관들과 변론하고 있는 상황을 봅니다. 귀신들린 아이의 부모는 제자들에게 요청하였으나 치유함을 얻지 못하자 예수님께 치유하여 줄 것을 요청합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책망하시면서 아이를 데려올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상황을 질문합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불쌍히 여기고 도와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러자 믿는다고 말하고 자신의 믿음 없음을 도와달라고 간구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귀신을 향하여 나가고 다시는 들어가지 말 것을 명령합니다. 그러자 아이는 경련을 일으키고 귀신을 떠납니다.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

오직 예수와 자기들 뿐이라.(막 9:2-13)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십니다. 이 산이 어떤 산인지 모르지만 일명 변화산이라고 부릅니다. 이곳에서 놀라운 변화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변형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흰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아와 모세가 함께 있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광경입니다. 제자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이 상황을 보고 이곳이 좋으니 초막 셋을 짓고 모세와 엘리아와 함께 살자고 합니다. 그때 구름이 그들을 덮고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제자들이 그 말을 듣고 둘러보았을 때 오직 예수님과 자신들만 있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이 전부입니다. 예수님은 산에서 내려오면서 십자..

하나님의 일, 사람의 일 (막 8:27-9:1)

우상으로 가득한 도시인 가아샤라 빌립보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신앙 고백을 듣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생각했지만 베드로와 제자들은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죽음을 비로소 이야기 합니다. 신앙고백이 없이는 십자가를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직 미성숙한 베드로가 예수님의 죽으심에 항변합니다. 이제 시작인데 주님이 죽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를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는 책망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십자가를 회피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 사는 길을 말씀합니다. 자신을 위하여 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