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묵상 931

성령을 모독하는 자 (막 3:20-35)

예수님의 사역이 계속되는 가운데 잠시 쉼을 가지고자 하지만 사람들의 방문에 식사도 못할 지경이 됩니다. 예수님의 친척들은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예수님 믿을 때 종종 듣는 이야기를 예수님이 먼저 들으셨습니다. 여기에 예루살렘에서 온 서기관들이 바알세불에 사로잡혔다고 말합니다.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하여 사탄이 사탄을 내어 쫓는 일의 무지함을 지적합니다. 분쟁하는 모든 곳은 망합니다. 싸움은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근거로 무시무시한 경고를 하십니다. 어떤 죄와 모독은 용서를 받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용서받지 못함을 말씀합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치유하고 복음이 증거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귀신의 일이..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노라.(막 3:1-19)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음을 말씀하신 예수님은 안식일에 손 마른 병을 가진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안식일에 손 마른 병을 가진 이를 데리고 와서 고쳐 줄지를 시험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과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가운데 무엇이 중요한지 질문하십니다. 잠잠하자, 완악함에 탄식하시고 노하십니다. 그런 후에 병든자를 고쳐주십니다. 정직하지 못한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분노입니다. 그러자 이들은 예수님을 죽일 논의를 합니다. 복음이 증거될 때 나타나는 현상은 회심 아니면 저항입니다. 예수님을 죽일 논의를 하는 기득권들을 뒤로 한 채 많은 약자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모였습니다. 유대, 예루살렘, 이두메, 요단강 건너, 두로와 시돈등 사방에서 모여 ..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막 2:13-28)

가버나움에서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진 메시야 됨을 알리신 예수님은 본격적으로 새 시대를 열어가십니다. 예수님은 12 제자를 채우시기 위하여 남은 제자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세리와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알리십니다. 사람들의 이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중요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음을 선포합니다. 이미 죄 사함을 선포하신 죄인의 구주이신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은 반복적으로 저항합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와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 상황에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세상이 다 한 쪽으로 가고 있는데 왜 당신은 따르지 않느냐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막 2:1-12)

가버나움에 일어난 중풍병자 치유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집에 계시다는 소리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때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메고 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많아서 들어 갈 수가 없자 네 사람이 예수님 계신 집의 지붕을 뚫고 환자를 예수님께로 내립니다. 참으로 대단한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네 사람의 중풍병 환자에 대한 사랑과 중풍병 환자의 간절함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집약된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예수님께 환자를 데려오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주님은 이 믿음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작은 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 말이 그곳에 모여있는 서기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습니다. 서기관은 예수님의 말에 대하여 신성모독이..

권위 있는 새 교훈 (막 1:21-34)

예수님의 본격적인 사역이 갈릴리 지역에서 시작합니다. 그 가운데 당시에 큰 도시였던 가버나움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가버나움에 회당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유적지로만 남아있지만 꽤 큰 회당입니다. 회당에서 복음을 전할 때 모두가 주님의 권위 앞에 놀랐습니다. 구약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여 주셨기 때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향하여 큰 소리로 대들었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고백은 거룩한 분입니다. 귀신의 고백은 정확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분입니다. 거룩하신 주님이 귀신을 향하여 꾸짖고 나오라고 명령하자 귀신은 그 사람에게서 나왔습니다. 이 광경을 본 모든 사람들이 또다시 예수님의 ..

변방에서 중심을 (막 1:12-20)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공생애를 매우 빠르게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공적 임직식을 끝내자마자 성령에 의하여 광야로 몰아내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40일동안 사단에게 시험을 받습니다. 마가복음은 시험받은 내용이 없습니다. 마태와 누가의 기록에 나타납니다. 광야 40일의 기도는 첫 사람 아담이 실수하였던 죄들이 그리스도안에서 회복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승리함을 통하여 예수님이 구약이 증거한 메시아 즉 그리스도임을 드러냅니다. 요한이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히게 된 후에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십니다. 예루살렘이 아니라 변방 갈릴리로 가십니다. 나사렛을 지나 더 변방인 갈릴리로 가십니다. 그리고 중심인 예루살렘을 깨우기 위한 준비를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사역은 사도들의 사역이 되었고 교회의 본질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의 시작이라 (막1:1-11)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세례요한을 통해 준비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통해 세례를 받으십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나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준다고 하였습니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왕으로 임직하셨습니다.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하늘 아버지의 선언입니다. 이제 주님은 창조 중보자이며 구속 중보자로서 사역을 시작합니다. 여기에 예수님이 복음인 이유입니다. 구속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쁜 소식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 고백하는 기쁨이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삼위 하나님의 영원성 (시102:12-28)

시102편의 후반부입니다. 시인은 전반부와 달리 후반부에서 관점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영원성에 대한 고백을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영원성에 대한 전제입니다(12). 시인은 시온 즉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하여 기도합니다. 무너진 예루살렘이 다시 회복될 때가 왔음을 청원합니다. 바벨론에 의하여 무너진 예루살렘 성과 성전의 돌과 티끌에 대하여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기도합니다. 예루살렘의 회복은 하나님의 영광의 회복입니다. 예루살렘의 회복으로 모든 나라가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13-16). 시인은 하나님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들으심에 감사합니다. 자신의 기도를 외면치 않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록하여 장래에 남겨질 것을 바라보면서 다..

내 뼈가 숯같이 탔습니다.(시 102:1-11)

시인의 간절한 부르짖음을 봅니다. 시인이 처한 상황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내 날이 연기 같이 소멸된다고 말합니다. 내 뼈가 숯같이 탔다고 부르짖습니다. 삶의 즐거움도 사라지고 열매도 보지 못한 채 스러지는 자신의 삶을 부르짖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럽기에 음식이 입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바짝 말라서 살과 뼈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앙상한 나무와 같은 모습입니다. 자신의 처지가 광야의 올빼미며, 황폐한 곳의 부엉이고,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같다고 말합니다. 아무 소망이 없는 처량하고 쓸쓸한 모습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이러한 모습에 원수들은 비방하고 날 뜁니다. 재를 먹고 눈물 섞인 물을 마신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자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모습이 하..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겠나이다.(시 101:1-8)

하나님 앞에 완전한 자의 모습을 인자와 정의로 말합니다. 이 말은 보면 도산 안창호의 말이 떠오릅니다. 도산은 나라의 망국적인 모습이 거짓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나라를 바르게 세우는 일은 거짓을 없애는 일입니다. 그리고 건전한 인격자가 되는 일입니다. 그 방법은 무실역행과 정의돈수에 있습니다. 유명무실의 사회를 개조하는 것은 정직한 삶을 실행하고, 사랑을 익히고 사랑하는 것을 습관으로 만들때 이뤄진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위하여 회개와 사랑을 통한 민족개조론을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도산의 생각은 성경의 가르침에서 나왔습니다. 소요리문답을 철저하게 배우고 학습하였을 뿐 아니라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실체를 시편기자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자와 공의입니다. 사악한 마음과 악한 일에서 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