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852

본래의 교회를 기억하자

본래의 교회를 기억하자 2021년도 역시 코로나19로 시작합니다. 새해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생각하였지만 꿈이 되었습니다. 교회 예배 역시 어려운 상황에서 20명만 드리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1000명대의 확진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백신을 개발한 나라에서는 연신 예방 접종이 시행 되지만 여전히 힘들고 어려운 상황입니다. 우리나라는 봄이나 되어야 일반 접종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제 봄도 그림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일상을 되찾지 못한 채 맞이한 2021년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코로나 19와 관련된 책이 많이 나왔습니다. 저 역시 『팬데믹과 교회격변』을 출판하였습니다. 많은 책들이 논의하는 주제는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앞다퉈 새로운 교회의 모습을 제시합니다. 예배와..

코로나를 견디는 7가지 법칙

코로나를 견디는 7가지 법칙 2020년은 코로나19를 빼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삶을 급변시켰습니다. 현생 인류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현상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도 전 세계에서 많은 이들이 고통 받고 있습니다.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미국의 한 회사를 통하여 백신이 공급되고 있다는 사실은 가뭄에 단비와 같은 소식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유행병을 진정시키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생성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동물 실험으로 인하여 발생되었다고 합니다. 즉 자연적인 바이러스가 아니라 인위적인 바이러스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인류 안에 항체가 형성되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역사 속에 존재하였던 모..

•영적 면역력이 긴급한 시대

영적 면역력이 긴급한 시대 코로나19가 계속되는 시대에 자주 듣는 말이 면역력입니다. 사전적인 의미로 “사람이나 동물의 몸 안에 병원균이나 독소 등의 항원이 공격할 때, 이에 저항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쉽게 표현하면 독소에 저항하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각종 독소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역시 강력한 독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떻게 이겨야 할지 아직 모르는 세력입니다. 그래서 온 인류가 저항하고 있습니다. 적을 물리칠 수 있는 무기가 생기기 전까지 중요한 것은 견디는 일입니다. 우리 주의를 포위하고 압박하는 세력의 기운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자칫 방심하였다가 큰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견딜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이 힘이 바로 면역입니다. 우리 몸에 들어오는 바..

누구를 바라보십니까?

누구를 바라보십니까?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창47:9)” 야곱이 바로에게 한 말이 자주 떠오르는 시절입니다. 130년을 살았던 야곱은 자신의 생애를 “험악한 세월”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험악하다는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삶이 험난하고 고난의 연속이었다는 말입니다. 젊은 세대는 이 말의 의미가 크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삶의 연륜이 싸여야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알고 싶다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가야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온 세계가 험악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에서 앞선 세대들이 경험하였던 세계적인 유행병을 지금 온몸으로 맞이하고..

뿌리가 뽑혀지고 있다.

뿌리가 뽑혀지고 있다. 한국에서 방송 일을 하는 미혼의 일본 여인이 정자를 받아 아이를 출산하였습니다. 이에 방송은 연일 소식을 전하고 있고, 사람들의 격려가 이어졌다는 소문입니다. 참으로 기괴한 일이지만 세상은 놀라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격려가 넘치고 있다고 방송합니다. 우리 시대의 방송과 생각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도대체 이 여인이 받은 정자는 어떻게 구했는지? 누구의 것인지도 모릅니다. 매우 윤리적인 문제가 많은 내용인데 아무런 논쟁도 없이 격려와 감사 인터뷰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별일 아니듯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뿌리들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를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어떠한 세상이 우리 앞에 올지 두려운 시..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때까지.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때까지. 우리 말에 ‘엎친 데 덮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자로는 설상가상(雪上加霜)입니다. 이 말은 눈 위에 서리가 내린다는 뜻으로, 어려운 일이 거듭하여 일어남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지금의 현실이 이 말에 딱 들어맞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났습니다. 현실이 주는 무거움이 얼마나 힘든지 곳곳에서 소리치지 않는 비명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특별히 젊은 청년들이 코로나 19로 인한 우울증에 격하게 시달리고 있습니다. 단지 질병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기업들은 취업의 문을 더욱더 좁게 열고 있습니다. 또한,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거의 미친 수준입니다. 집값의 폭등은 다음 세..

믿음은 우리 하나님을 향한 확신입니다.

믿음은 우리 하나님을 향한 확신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인지 많은 이들의 정의가 있습니다. 아마도 사람 수만큼 될 것입니다. 예수 믿음을 하나로 정의하기에는 무리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믿음에는 공통적인 고백과 확신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내 편’이라는 고백과 확신입니다. 이러한 확신과 고백이 없다면 믿음은 소유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믿음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하나님은 내 편’이라는 확신은 분명해집니다. 수많은 사람이 믿음을 말하고 정의를 내리지만, 그 고갱이는 같습니다. 하나님께 내 편이 되신다면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창조주이시고 구속주이신 하나님께서 내 편인데 이 땅에서 무엇이 두렵고, 부럽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확신이 무너질 때 세..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갈 때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까? 따스함과 편안함입니다. 그리고 한 끼 밥입니다. 이것이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끈입니다. 집이 냉랭하고 무섭고 살벌하다면 누가 집에 들어가고자 하겠습니까? 아주 오래전에 가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집에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바로 아버지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가장 많았습니다. 참으로 슬프고 씁쓸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와 사는 것보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사는 것이 더 좋다는 이야기에 정말 많이 아팠습니다. 집이라는 의미가 담고 있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대가 무너지면 집은 더이상 집이 아닙니다. 부모라는 의미가 담고 있는 기대도 같습니다. 단지 혈육으로 관계되어 있다고 가..

도고 기도, 도보 기도

도고 기도, 도보 기도 시편을 묵상할 때마다 시편 저자들의 간절한 기도 소리를 듣습니다. 자신들의 삶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하였습니다. 10월 말씀 묵상이 시편 24편부터 39편까지 였습니다. 한편 한편이 신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시 24:3-4]” “내 영혼을 지켜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치 말게 하소서[시 25:20]”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시 26:2]”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믿음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믿음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오늘은 종교개혁 503주년 기념주일입니다. 교회개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지 503년이 되었습니다. 넓게는 313년 이후부터이지만 본격적인 열매가 맺힌 시기는 1517년부터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개혁의 열매를 503년동안 먹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주님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계속해서 입을 벌려 먹을 것입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하여 교회에 대한 생각들이 많아졌습니다. 개혁교회의 열매에 대한 소중함을 더욱 깊이 느끼는 한 해였습니다. 본래의 교회를 세우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더욱 절감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교회개혁은 거짓 교회에 대한 저항으로 본래의 교회로 돌아가자는 회복운동입니다. 그러나 권력화된 로마 교회는 참된 교회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핍박하고 포악했습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