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성령 모독죄 (마가복음 3:20~35)

새벽지기1 2021. 4. 14. 06:59

여러분은 왜 이 자리에 와 계십니까? 성령이 계시니까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없으면 한 사람도 이 자리에 와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말씀도 듣고 기도도 하고 찬양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음식을 먹을 겨를도 없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인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병을 고쳐주시거나 귀신을 쫓아내신 다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하지 말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소문이 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소문이 나면 사람이 구름떼처럼 모일 것이고, 사람들이 모이면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피하고 싶으셨는데 결국 사람들은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거기에 예수님의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와 형제자매들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들리는 소문이 예수가 미쳤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의문이 드는 점은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된 것도 알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는데도 불구하고 소문에 흔들린 것입니다. 그래서 온가족이 예수님을 잡으러 나섰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신 예수님

 

“예수께서 집으로 들어가시니 또다시 사람들이 몰려들어 예수와 제자들은 음식 먹을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예수의 가족들은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서 예수를 붙잡으러 찾아다녔습니다.”(20~21절)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첫째, 예수님은 음식을 먹을 겨를도 없으셨다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문을 들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음식을 먹지 못할 만큼 바빠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음식은 다 챙겨 먹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식사할 겨를조차 없이 사람들에게 밀려다니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는 것이 이해가 안 되니까 예수님이 미쳤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를 못하면 상대방 보고 미쳤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 말을 듣고 얼마나 억울하셨을까요. 하나님을 위하는 것은 밥 먹을 겨를도 없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은 미쳤다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 하늘의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땅의 일은 잘 압니다. 대학에 가서 전공을 공부하고 박사 학위를 받고 회사도 잘 운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은 아닙니다. 여러분, 교회에 와서 세상의 방법으로 일하려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세상 방법으로는 절대 이뤄지지 않습니다.

 

사탄을 대적하십시오

 

특별히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사탄의 세계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탄을 지나치게 믿고, 어떤 사람은 “요즘 같은 시대에 사탄이 어디 있느냐?”며 무시합니다. 둘 다 위험합니다. 사탄을 지나치게 강조해도 문제가 되고, 사탄을 무시해도 영적 사건이 생깁니다.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는 이런 말씀이 쓰여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사람을 찾습니다. 믿음 안에 굳게 서서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여러분이 알다시피 여러분의 형제들도 세상에서 같은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사람은 물질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입니다. 목소리도 들리고, 움직이는 것도 보입니다. 사람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고 삽니다. 나이가 들면 사람은 죽게 되어 있고, 지금 이 자리에 있으면 다른 자리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입니다. 사탄도 그렇습니다. 사탄이 눈에 안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사탄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줄도 모릅니다. 사탄이 나를 조종하고 있는데 조종당하고 있는 줄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갑자기 막 화를 냅니다. 자기는 정의를 위해서 화를 낸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귀신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상처를 주고, 다 때려 부수고 말을 함부로 합니다. 그러는데 자기는 의롭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연예인 교회를 할 때 어떤 분은 욕을 하지 않으면 말을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별의 별 욕을 다 들어봤습니다. 제가 그분께 “왜 그렇게 욕을 하십니까?” 하고 물어봤더니 그분은 욕을 안 하면 말을 안 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분은 화를 내고, 욕을 하고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인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원래 그랬겠습니까? 아닙니다. 어느새 그렇게 변한 것입니다. 그래 놓고 그것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마귀를 대적하십시오’라고 쓰여 있습니다. 여러분, 마귀를 환영하지 마십시오. 자기 안에 마귀가 있는지 없는지는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압니다. 마귀가 들어오려고 하면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 들어오지 마라’고 거절해야 합니다. 사탄이 왜 들어옵니까? 환영을 해주니까 들어오는 것입니다. 배설물이 있으면 파리가 모이기 마련입니다. 청소를 깨끗이 하면 파리들은 다 없어집니다.

 

사탄이 세상에 주는 영향력

 

사탄은 지금도 전 세계를 지배하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두 짐승이 그런 것입니다. 두 짐승 중에 하나는 경제를, 하나는 정치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돈을 벌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경제 구조의 밑바닥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우리는 권력을 추구하고 정치를 합니다. 아무리 입바른 소리를 해도 그 정치의 밑바닥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이것이 두 짐승입니다. 이 두 짐승을 타고 있는 여자가 바로 음녀입니다. 음녀는 이 세상을 음란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결국은 두 짐승도 죽고 음녀도 죽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만 우리가 사탄의 늪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매일 깨달아야 합니다.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걸려들지 않습니다. 왜 주기도문에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쓰여있을까요? 그것들이 실제로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무덤에 술도 뿌리고, 밥도 갖다 놓고, 과일도 깎아 놓습니다. 귀신들이 와서 먹으라고 말입니다. 제사상에 돼지머리를 놓든지 뭘 하든지 간에 여러 가지의 형태로 귀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사탄은 이 세상에 세 가지 영향력을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돈입니다.

돈에 굴복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만큼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돈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결국은 돈 앞에 머리를 숙입니다. 그리고 돈 문제가 생기면 움츠러듭니다. 그만큼 돈은 사탄이 이용하는 도구입니다. 돈은 잘 써야지, 돈에게 이용당하면 안 됩니다.

두 번째는 권력입니다.

인간은 권력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왜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목숨을 걸까요? 선거 때 자주 보지 않습니까? 정치하는 사람들이 선거할 때처럼 보통 때 그렇게 일을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들은 고개가 90도가 되도록 시민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선거 때는 절대로 불리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권력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공중권세를 잡은 자, 사탄이 쥐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쾌락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 쾌락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영적인 일에 대해서 심지어 교인들도 무지합니다.

 

귀신은 귀신 들려본 사람이 압니다. 사탄의 특징은 거짓말과 속임수입니다. 사탄이 얼마나 기가 막히게 우리를 속이는지 모릅니다. 뱀이 그랬습니다. 귀신은 뿔을 달고, 까만 망토를 입고, 입술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나는 귀신이다’라고 외치며 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다 도망가지 누가 옆에 있겠습니까? 귀신은 양의 탈을 쓴 이리입니다. 말도 멋있게 하고 그럴듯해 보입니다. 이단들이 그렇습니다. 이단들은 교회에 와서 처음에는 간까지 다 빼줍니다. 그러다 서서히 자신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신실함, 충성심입니다. 처음이나 끝이나 똑같아야 합니다. 믿음은 영어로 ‘faith’라고 합니다. 신실한 사람을 ‘faithful’하다고 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특징은 능력을 행하고 기적을 행하고 안수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신실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인격이 있고 신실하고 믿을만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조사하는 율법학자들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시니까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조사하러 율법학자들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이 말했습니다. ‘예수가 바알세불에게 사로잡혀 있다. 그가 귀신들의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 놓고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이 어떻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만일 한 나라가 서로 갈라져 싸우면 그 나라가 제대로 서 있을 수 없고 만일 한 가정이 서로 갈라져 싸우면 그 가정이 제대로 서 있을 수 없다. 만일 사탄이 스스로 반란을 일으켜 갈라진다면 제대로 서지 못하고 스스로 망할 것이다. 먼저 힘센 사람을 묶어 놓지 않고 그 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묶고 나서야 그 집을 털 수 있는 것이다.’“(22~ 27절)

예수님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불치병을 고치셨고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또한 바람을 잠잠케 하셨고 물 위로 걸으셨습니다. 이런 초자연적인 기적을 행하니까 전통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의 행동에 대해 해석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사를 하러 나왔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둘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든지 귀신의 힘을 힘입어 능력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 이상의 논리가있을 수 없습니다.

둘째, 진실을 인정하면 모든 문제가 간단하게 풀리지만 인정하지 않으면 일이 복잡하게 꼬인다는 것입니다.

기분이 나쁘더라도 사실은 사실이고 진실은 진실입니다. 내가 기분 나쁘다고 사실을 거부하거나, 이데올로기 또는 교리적인 이유 때문에 거부한다면 그 다음부터 꼬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가 꼬이면 다 꼬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없으니 귀신에 사로잡혔다고 말한 것입니다. 바알세불은 파리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이라고 억지 해석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자연스럽지가 않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비유를 하셨습니다. ‘사탄이 어떻게 사탄을 내쫓을 수 있느냐? 나라도 서로 싸우면 망하지 않느냐? 사탄도 자기끼리 싸우면 사탄의 나라는 스스로 망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실로 말한다. 사람이 어떤 죄를 짓든지 어떤 비방의 말을 하든지 그것은 모두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그것은 영원한 죄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그가 악한 귀신이 들렸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28~30절)

 

성령 모독죄는 영원한 죄

 

어떤 죄와 실수도 회개하면 다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결코 용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성령 모독죄가 왜 이렇게 중요할까요? 모든 죄는 짓다가도 안 지을 수 있고, 내가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영원한 죄입니다. 용서를 못 받는 것입니다. 그 말이 무슨 뜻입니까? 해석이 조금 필요합니다. 여러분, 성경은 왜 영원한 죄라고 말했을까요? 성령을 부인하면 예수님을 믿을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 드립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받은 사람이다’라고 할 수 없고 또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는 주시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오고 싶다, 예수님을 믿고 싶다, 또 어느 날 어디서 만났던 그 사람의 이야기가 마음에 걸린다, 사고가 났는데 죽지 않고 살았다 하는 것은 모두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이라는 것을 몰라서 그럴 뿐입니다.

 

여러분은 왜 이 자리에 와 계십니까? 성령이 계시니까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없으면 한 사람도 이 자리에 와 있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없으면 한 시간도 이 자리에 머무르지 못하고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며 도망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말씀도 듣고 기도도 하고 찬양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성령을 거부하는 것은 구원의 길을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것은 다 용서받을 수 있지만 여러분, 성령만은 거절하지 마십시오. 오늘 성령님을 만나지 못한다 해도 괜찮습니다. 죽기 전에 성령님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천국이 열립니다. 그러나 성령을 끝까지 거부하면 길이 없습니다. 천국으로 갈 길도 없고, 예수님을 만날 길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온전한 인간이 어디 있습니까. 실수도 하고 죄도 짓지만 성령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을 모독하지 마라, 성령을 거부하지 마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욕을 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장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용감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거짓말을 하고 세상 사람들과 싸울 수는 있지만 어떻게 하나님을 상대로 사기를 치겠습니까? 참으로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성령이 임했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 자리에 오신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 중에도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미숙한 사람이 있고 성숙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을 받았는데 미숙하고 철이 없습니다. 분별력이 없습니다. 또 어떤 분은 굉장히 성숙하고 덕을 세웁니다. 그러나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미숙하더라도 계속해서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성령 안에 있으면 마치 성령의 열매가 맺히듯 여러분의 인생에 열매가 열립니다. 사람이 성숙해집니다.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기만 해도 머리가 숙여져야 합니다. 이것이 성숙입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 또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회는 영적인 가족입니다

 

“그때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시켜 예수를 불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곁에 둘러앉아 있었는데 그들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서 선생님을 찾고 계십니다.’”(31~32절)

이런 일은 흔히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약한 것이 가족입니다. 가족은 국가나 나라보다 우선하는 조직입니다. 가족은 인류의 생존 본능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독 혈육에 대해 굉장히 집착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가족을 건드렸다가는 난리가 납니다. 우리 세상은 가족 중심의 공동체입니다. 이것은 좋은 것입니다. 마치 고향 같습니다. 우리는 가족 안에서 태어났고 가족 안에서 성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를 잊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이 있다면 가족입니다.

저희 집도 그랬습니다. 6.25 사변이 터졌을 때 저희 아버지께서는 새벽 4시에 전쟁이 난 것을 알고 잠자고 있는 가족을 데리고 급히 이남으로 탈출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정처 없이 고향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래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이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다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이 우리의 귀에 거슬립니다. 우리를 조금 불편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누군가가 가족이 왔다고 말하면 잠깐 만나면 될 일을 예수님은 냉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그러고는 곁에 둘러앉은 그들을 보며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33~35절)

이 말씀을 듣고 주변사람들이 다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족은 피를 섞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피를 섞었기 때문에 혈육의 정 때문에 가족이 된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했기 때문에 우리는 한 형제요 자매요 가족이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가족에 대한 새로운 해석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따르려거든 가족도 버리고 친척도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이 바로 이 뜻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영적 진리를 하나 배우게 됩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사업하고 병이 들도록 고생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식들에게 무엇인가를 남겨주려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우리는 자식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철모르는 자녀가 부모 없으면 어떻게 사나 걱정하며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은 혈육의 가족입니다.

피가 섞인 가족입니다. 우리의 존재의 근원은 조상입니다. 그러니 조상을 숭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분이요, 영으로 난 자는 다 가족이다. 육으로 났다고 가족이 아니다. 영으로 나야 가족이다. 육신의 가족은 때가 되면 다 죽는다. 그러나 영적인 가족은 영원히 산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영적인 한 가족입니다. 이것이 교회요 기독교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정신입니다.

여러분 옆에 있는 분들에게 인사하십시오. ‘우리는 영적인 한 가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