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부활과 씨 뿌리는 비유(마가복음 4:1~20)

새벽지기1 2021. 5. 3. 07:15

의심하지 말고 말씀 안에 거하고, 부활 안에 거하십시오. 그러면 풍성한 포도송이를 맺는 건강한 포도나무처럼 될 것입니다.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는 풍성한 은혜와 열매들이 30배, 60배, 100배가 맺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닷가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던지 예수님께서 땅위에 서 계실 공간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쩔 수 없이 배를 타고 사람들과 조금 떨어져 있는 바다에서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호숫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예수 주위에 모여들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호수에 배를 띄우고 배에 올라앉으셨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호숫가를 따라 앉아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1~2절)

 

그리스도인의 상징 ‘부활’

 

여러분, 오늘은 우리 모두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부활절입니다. 저는 목사가 된 이후 가장 감명 깊게 경험하는 것 중 하나가 부활절 아침에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부활절 설교는 늘 제게 큰 감동을 줍니다.

오늘은 여러분과 부활과 씨 뿌리는 비유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부활절은 지난 이천년 동안 기독교가 지켜온 가장 감격적인 승리의 날이며 축제의 날입니다. 여러분, 부활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부활이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과거의 모든 슬픔과 절망, 그리고 패배를 넘어 기쁨과 희망, 그리고 과거에 승리한 사건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승리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부활의 상징은 이처럼 엄청납니다.

무신론자들에게 상징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진화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상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부활입니다.

여러분, 부활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부활의 시작은 생명입니다. 생명이 존재하기 때문에 부활이 가능한 것입니다. 만약 생명이 없다면 부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생명과 부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여러분, 생명의 세계에는 죽음이 없고, 빛의 세계에는 어둠이 없습니다. 죽음이 없고 어둠이 없는 세계를 부활의 세계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생명의 세계와 빛의 세계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는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부활의 세계를 설명하고 계십니다.

 

길가에 뿌려진 씨앗처럼

 

“‘잘 들으라. 어떤 농부가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고 있는데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모두 쪼아 먹었다. 어떤 씨는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는데 흙이 얕아 싹이 금방 돋았지만 해가 뜨자 그 싹은 말랐고 뿌리가 없어서 시들어 버렸다. 다른 씨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무성해져 그 기운을 막는 바람에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했다. 또 다른 씨는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잘 자라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들을 맺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3~9절)

부활은 마치 농부가 씨를 뿌리는 것과 관련해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씨가 아니라 씨가 뿌려질 밭입니다.

여러분, 씨는 생명입니다. 생명인 씨가 밭에 뿌려지면 반드시 싹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열매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뿌려진 씨가 어떤 밭에 뿌려졌느냐에 따라 결과가 전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밭이냐에 따라 싹이 나오기도, 반대로 싹을 틔우지 못하고 그냥 죽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밭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 번째 밭은 길가입니다. 길가는 씨가 땅 속으로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딱딱합니다. 마치 아스팔트와 같습니다. 사람과 마차, 동물들이 다니면서 땅을 다져놓았기 때문에 매우 단단합니다. 이곳이 길가입니다. 농부가 길가에 씨를 뿌린다고 해도 그 씨는 흙을 뚫고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결국 길가에 뿌려진 씨는 이러 저리 휘날리다 새의 모이가 되고 맙니다.

 

풍성한 열매 맺는 ‘옥토의 씨앗’

 

두 번째 밭은 돌밭입니다. 돌밭에서는 흙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돌들만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농사짓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돌밭에 씨앗이 뿌려져도 그 씨앗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따가운 햇볕 때문에 쉽게 말라 죽습니다. 뿌리를 내릴 만한 땅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뿌리가 없기 때문에 생명력도 없습니다. 돌밭에서 씨가 잘 자라기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세 번째 밭은 가시덤불 밭입니다. 이곳은 흙이 좋고 돌도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시덤불이 무성합니다. 가시덤불 밭에 씨앗이 뿌려지면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려고 하지만 그 싹이 올곧게 자랄 수 있는 공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삐딱하게 자란다든지 가시덤불에게 영양분을 빼앗겨 잘 자랄 수가 없습니다. 네 번째 밭은 좋은 땅입니다. 말 그대로 옥토입니다. 이곳에서 싹을 튀우게 되면 잘 자라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옥토는 길가에 있는 밭도 아니고 돌밭도 아닙니다. 또한 가시덤불 밭도 아닙니다. 옥토는 씨앗을 받아들이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들을 귀 있어야 듣는 ‘진리와 부활’

 

오늘 본문 10~12절을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왜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메시지를 선포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혼자 계실 때 열두 제자들과 그 곁에 있던 사람들이 그 비유가 무슨 뜻인지 물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됐으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말한다. 이것은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해 그들이 돌아와서 용서를 받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10~12절)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모든 사람이 부활을 믿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대로 들을 귀 있는 사람만이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메시지는 이 천년 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전달되고 있지만 여전히 들을 귀 있는 사람들에게만 들립니다.

 

여러분, 진리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알아듣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듣는 귀를 가진 사람들만이 부활과 진리의 이야기를 듣고 믿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능력이 발휘되지 않고 자유가 없다고 느끼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늘 진리와 부활 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진리와 부활의 참뜻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변화되지 못하고 과거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늘 진리와 부활이 내 곁에 있는 줄 알면 쉽게 화를 내거나 감정기복이 심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진리와 부활이 내 곁에 있음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진리와 부활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우리 곁에서 떠나거나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능력이 발휘될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뿌리는 사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비유를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씨앗을 뿌리는 농부는 말씀을 뿌리는 사람이다. 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곧 사탄이 와서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을 가로채 간다. 이와 마찬가지로 말씀이 돌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즉시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서 오래 가지 못하고 그 말씀 때문에 고난이나 핍박이 오면 곧 넘어진다. 또 다른 사람들은 말씀이 가시밭에 떨어진 것과 같아서 그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이 세상의 걱정, 돈의 유혹, 그 밖에 다른 많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의 기운을 막고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떨어진 것과 같은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다.”(15~20절)

본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씨앗 뿌리는 사람은 말씀을 뿌리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뿌리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뿌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철학이나 이론을 뿌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 사람이 뿌리고 있는 것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단단한 믿음의 뿌리가 있어야

 

말씀이 길가에 뿌려지면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그 말씀의 능력을 사탄이 와서 가로채 갑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말씀도 열심히 들으며 진리에 접근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너무 딱딱하게 굳어서 말씀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마음이 딱딱하게 굳은 사람에게 뿌려진 말씀은 사탄이 다가와 그 말씀을 가져가버립니다. 결론적으로 길가처럼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사람에게는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사탄에게 말씀을 빼앗겨버리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말과 생각을 할 줄 모르면서 어떻게 기적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감정, 자신의 생각, 자신의 환경에 따라서만 살면 절대로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 오직 자신만의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믿음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말씀의 씨앗이 돌밭에 뿌려진 사람은 메시지를 들으면 즉시 ‘아멘! 할렐루야!’라고 외치지만 이 사람들에게는 뿌리가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말씀의 뿌리가 없기 때문에 조금의 고난과 핍박 그리고 시험이 오면 쉽게 넘어집니다. 믿음의 뿌리가 없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을 통해 얻은 열정과 능력이 오래가지 않고 금방 식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평소에 믿음이 굉장히 좋은 사람도 시험이 오면 쉽게 믿음이 흔들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러한 질문의 공통된 답은 굳건한 믿음의 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믿음의 뿌리가 지탱할 힘이 없기 때문에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핍박이 오면 쉽게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굳건한 믿음의 뿌리를 만들어야합니다. 화려한 꽃이 스스로 피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 화려한 꽃을 피우기 위해서 뿌리에서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받고, 가지가 햇볕을 충분히 받았기 때문에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 보다 말씀이 우선

 

또한 말씀이 마치 가시밭에 떨어진 것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살이의 걱정, 돈의 유혹, 그 밖의 수많은 욕심 때문에 말씀의 능력을 스스로 제한하고 결국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분명 말씀의 씨가 땅에 떨어졌는데도 자라지 못합니다. 풍성한 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씨앗이 올곧게 자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씨가 싹을 틔우고 올곧게 자라야할 공간에 가시덤불이 엄청나게 덮여 있어 싹이 자라날 엄두를 못내기 때문입니다. 그 여린 싹이 어떻게 가시덤불을 뚫고 나갈 수 있겠습니까. 가시덤불 밭의 또 다른 문제는 싹이 햇빛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풍성한 땅위에 떨어졌지만 가시덤불에 막혀 자라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와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걱정, 돈의 유혹, 그 밖의 여러 욕심들이 항상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들로 인해 결국 믿음이 성장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춰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와 같은 사람들의 특징은 믿음이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화가 나면 부정적인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누군가를 의심하는 말을 자주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진리보다 자신의 감정을 우선시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자신의 감정이 말씀보다 우선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은 항상 자기가 우선이기 때문에 말씀이 뿌려졌어도 성장할 기회가 없습니다.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더 큰 문제는 평생을 자신의 뜻대로만 살아왔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조심 하십시오. 잘못된 말 한마디가 여러분이 그동안 쌓아놓은 믿음, 인격, 성품을 한꺼번에 잃게 할 수도 있습니다.

 

옥토에 뿌려진 씨앗처럼 마지막으로 말씀이 옥토에 떨어진 것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씀이 옥토에 떨어졌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마치 겨울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봄이 찾아오듯이 이러한 사람들의 인생에는 늘 풍성한 열매들이 맺힙니다. 때때로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절망적으로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옥토에 떨어진 사람들은 그 어려움 가운데서도 희망을 발견합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풍성한 열매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날마다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그 열매의 수가 한두 개가 아니라 주렁주렁 열린 풍성한 열매가 되길 바랍니다. 이러한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 언제나 희망을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이것이 바로 옥토에 뿌려진 씨입니다. 잊지 말고 기억하십시오. 말씀의 씨앗이 옥토에 떨어지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수확하게 됩니다. 또한 옥토에 떨어진 씨와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의심하지 말고 믿으십시오 오늘 말씀을 통해 두 가지를 적용해보고 싶습니다.

첫 번째 여러분, 부활의 말씀을 의지하십시오.

때때로 부활의 사건을 두고 많은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순히 믿으면 될 것을 ‘과연 사실인가, 거짓인가’ 의심합니다. 또한 ‘그럴지도 모르잖아?’라고 의심하기도 합니다. 부활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도 이렇게 많은 의심을 하는데 어떻게 믿음이 성장할 수 있겠습니까. 계속해서 의심하고 방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진심을 담아 여러분에게 어렵게 사랑고백을 한 사람을 두고 ‘저 사람의 사랑이 진실일까, 거짓일까’하며 계속 고민하고 갈등하면 그 사랑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만약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부활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냥 믿으면 됩니다. 절대로 의심하지 마십시오. 말씀 또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자신의 생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무조건 수용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굳건한 믿음의 씨가 옥토에 뿌려진 것처럼 여러분의 신앙이 생명력이 넘치고 날마다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풍성한 은혜 누리십시오

 

두 번째,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신 내용을 보면 옥토에 뿌려진 씨는 30배, 60배, 100배가 넘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상인에 비유해보면 얼마나 풍성한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풍성하게 수확한 열매를 우리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삶속에서 느껴지는 기쁨과 행복, 그리고 여러분 자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업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분이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때때로 자신이 쏟아 부은 노력에 비해 훨씬 많은 것을 얻고 생각보다 일의 결과가 만족스러운 경우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포도나무가 자랄 때 성장하기 위해서 애쓰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가지에 잘 붙어만 있으면 포도는 저절로 성장하게 됩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신앙 성장을 위해 스스로 노력한다고 해서 무조건 잘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믿음을 성장시킬 수 있을까요. 방법은 하나입니다. 말씀 안에 거하십시오, 또한 부활 안에 거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풍성한 포도송이를 맺는 건강한 포두나무처럼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정도의 열매가 아닙니다.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는 풍성한 은혜와 열매들이 30배, 60배, 100배가 되어 여러분에게 올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기적은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한 사건이 아닙니다. 이러한 기적이 여러분의 인생을 장식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열매를 우리가 추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내게 필요한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원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기껏해야 부와 명예입니다. 더 깊이 생각해보아도 신체적 건강, 화려한 옷, 좋은 사람 정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고 계신 것은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것이며,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부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늘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