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낮은 곳에서 부르는 생명의 노래'

솔로몬이 구한 것은 지혜가 아닌 레브 쇼메아(왕상3:3-15)

새벽지기1 2020. 2. 21. 07:11


솔로몬이 구한 것은 지혜가 아닌 레브 쇼메아(왕상3:3-15)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다.

우리는 각각의 위치에서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

누가 세상을 가장 지혜롭게 사는 사람일까?

독일의 양심 본회퍼는 이런 말을 했다.

“성숙한 성도는 남이 말할 때 자기가 말할 것을 생각하여 끝날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듣는’ 성도이다.”


세상에는 언제나 많은 소리들로 가득하다.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 소리로도 이 세상은 충분히 시끄럽다.

오늘날 인간관계에서의 화두가 소통을 위한 경청이다.

경청 중에서도 적극적 경청(Active listening)이다.

사람의 됨됨이도 그리 큰일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악수를 나누는 일, 인사 한마디 나누는 일,

눈을 마주침 등, 표정 하나 하나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에서 이미 판정이 난다.


창세기에서의 선악과 명령을 필두로 듣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생각해 본다.

듣고 순종했는가, 순종하지 않았는가에 따라 복과 저주, 생명과 사망, 상급과 심판이 내려진다.

출애굽기에서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과 고통의 소리를 들으시고(출2:24),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여전히 지금도 우리의 말과 기도에 귀 기울이고 계신다.

나님은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이웃들의 소리를 잘 들으며 사랑에 준비된 자로 살아가야겠다.

단순히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행동을 다하는 적극적 경청으로 말이다.

모든 일은 듣는 것에서 시작된다.

녀는 부모의 말을 경청해야 하고, 부모 또한 자녀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참된 소통이 이루어진다.

아내와 남편 사이에도, 친구와 친구, 선생과 학생, 목사와 성도들 사이에는 듣는 마음이 모든 것의 바탕이 된다.

아! 이 부분에서 우리 모두는 실패하고 아파하고 힘들어 하는 것 같다.


쉬운 것 같지만 어려운 일중에 하나가 “잘 듣기”인 것 같다.

상대방에게 말을 많이 하면 내 생각이 잘 전달된 것 같지만 늘 그렇지 않다.

나중에 조용히 생각해 보면 듣는 쪽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전했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잘 듣는다는 것은 상방에게 내 마음 속에는 당신을 향한 사랑과 이해, 인내와 관심,

믿음과 희망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적극적인 수단이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보다 잘 듣는 사람이 어디에서나 인기가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를 만날 때마다 “많이 듣고 적게 말해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후회하는 우리들이다.

정말 마음이 겸손해지고 상대를 향한 관심과 사랑이 깊어지면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좋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솔로몬의 그 유명한 재판 판결 이야기(왕상3:16-28)에 한 본문을 묵상하면서

경청, 혹은 듣는 마음(듣고 있는 마음)에 하여 함께 나누고 싶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성경 전체를 그러한 시각으로 읽고

인생 전체를 그러한 관점으로 살아가는 것이 신앙적 삶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솔로몬의 명 재판에 한 이야기는 간혹 잘못 왜곡되게 해석되고 있는 말씀 중에 하나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듣는 마음을 구한 솔로몬에게 부귀화는 물론 지혜와 총명을 주신 일에 대한 사건이었다.

그는 정작 지혜를 구한 것이 아니라 잘 듣는 마음을 구했다.

솔로몬은 인간관계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었다.
솔로몬은 자신이 왕이 되어 재판을 할 일이 많아졌으니 행여 공평되지 못한 판결을 하지 않도록

잘 들을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했다.

로몬은 두 여인이 자신들의 입장을 변호하며 열변을 토할 때

이들의 이야기를 흘려듣지 않고 귀담아 경청했다.

들으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그 결과 거짓과 참을 구분해 내는 명 판결에 이르게 되었다.

솔로몬의 모든 일생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한 순종 여부는

한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낳고, 한 나라의 운명을 가르는 중한 문제다.


기서 솔로몬이 하나님께 구한 것은 ‘지혜’(호크마)가 아니다.

‘지혜로운 마음’(’레브 쇼메아’)로서 “듣는 마음”(listening heart)이다.

‘쇼메아’는 현재진행형으로 ‘현재적으로 계속하여 듣고 있는’이라는 의미다.

‘듣는 마음’은 히브리어로 심장을 뜻하는 ‘레브’와 듣고 있다는 ‘쇼메아’가 결합된 말로 ‘마음으로,

심장으로 듣는다.’라는 뜻이며 솔로몬은 선악을 분별함에 오직 ‘하나님의 마음으로 심장으로 듣겠습니다.’라는 것이다.

남의 말을 끊거나 지레짐작하거나 건성으로 듣거나 내 말만 하지 않고,

남의 말을 충분하게 경청하는 자세가 그것이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솔로몬과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

두 여인 사이를 오고가는 소리에 보태 소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다.

경청하여 들으니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알 수 있었다.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들어야 한다.

“단순히 듣는 것보다(hearing) 경청(listen to)하는 것이고,

청한다는 것은 상방을 이해(under stand)” 하는 것이다.

“코미디언을 죽이는 데는 하품 한 번이면 족하다”는 말처럼 남의 이야기를 듣는 자세는 너무도 중요하다.

경청은 귀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도 하고, 입으로도 하고, 손으로도 하는 것이다.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음을 계속 표현하고 몸짓과 눈빛으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존중이며 사랑이다.


듣는 것이 먼저


예수님께서 귀머거리와 벙어리 중에 귀머거리를 먼저 고쳐주신 사건이 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고쳐주시는 순서를 자세히 보면, 먼저 귀가 열리게 하신다.

먼저 들을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이다.

M. Luther는 이렇게 멋진 해석을 한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귀를 고쳐주시고 난 다음에 언어장애를 고쳐주신 것은

듣는 일이 먼저요 말하는 것은 들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라’

우리들의 믿음이라는 것도 분명 들음에서 난다.

말씀을 듣다보면 귀가 열린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음이라”(롬10:17).

귀가 막히면 기가 막힌 일이 많이 생긴다.

이사야 선지자는 자기의 귀를 열어 학자같이 알아듣게 해주시는 은혜에 감사하고 있다(사50:4).

예수님은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수없이 말씀하신다.

그리고 듣는 귀가 복되다고 말씀하셨다(마13:16).

비난, 비판, 불평 금지(걸림돌 금지)


입술의 30초가 가슴에서는 30년을 간다.

‘비난, 비판, 불평하지 마라’는 카네기 인간관계의 첫 번째 원칙이자 유일한 부정적인 표현이다.

장미꽃을 전해준 사람의 손에는 장미향이 남아있는 법이다.


미소를 지어라


미소는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다.

미소는 꽃이 피는 것과 같다.

사람의 ‘얼굴’에서 ‘얼’이란 정신, 사고, 사상, 이념을 나타내고 ‘굴’은 보인다는 의미이다.

얼굴을 보면 그 사람에 해 알 수 있다.

도전적인 상황 속에서 미소가 만들어내는 결과는 매우 놀랍다.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사람들이나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려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미소는 구름을 뚫고 나오는 햇빛과도 같다.


코 당신이 틀렸다고 말하지 마라.


‘상방을 이해하는 것은 꽃이 태양을 필요로 하는 것과 같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의견 발표를 했는데 당신이 생각하기에 그 사람이 확실히 틀렸다면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해보라.

“선생님의 의견을 다른 방법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물론 제가 틀렸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내용을 함께 검토해보시겠습니까?”

만약 당신이 상방에게 “넌 틀렸어!”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상방으로 하여금 바로 보복해주고 싶은 마음을 솟아나게 할 뿐이다.


나는 듣습니다.


한번은 미국 CBS 방송에 테레사 수녀가 출연했다.

앵커가 물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뭐라고 기도하십니까?”

테레사 수녀는 답했다. “나는 듣습니다.”

앵커가 당황하여 다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듣고 있을 때 하나님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테레사 수녀는 다시 답했다. “그분도 듣고 계시지요”


잘 듣는 마음


어떤 사람이 젊은 시절 신학대학원에 다니며

인턴 훈련의 일환으로 양로원에 가서 노인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어느 날, 그는 노인의 인생 이야기에 해 귀를 기울이면서 듣게 되었다.

한 시간쯤 지나자 그 노인은 너무나 감격스럽게 이 젊은 청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여보게, 젊은이! 내가 자네에게 정말로 고맙게 생각하는 이유가 뭔지 아는가?

자네는 나를 찾아온 사람 중에 유일하게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 시계를 보지 않았던 사람일세.”
그런데 노인의 칭찬을 받은 그는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사실은 그 날 아침 시계가 고장이 나서 시계를 안차고 와서

시계를 볼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노인에 이야기에 귀를 기울던 것이다.

이 일 후에 그는 사람을 만나러 갈 때는 아예 시계를 차지 않고 갔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우리의 주위가 산만하지 않을 때, 우리가 완전히 상대방과 함께 현존해 있을 때,

사람들은 우리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타인들과 그 시간에 완전히 함께 현존해 있을 때,

그들과의 상호교류는 더 깊고, 더 완전하고,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처지에 함께 관심을 가지고

그의 말이나 행동에 적극적으로 경청해야 한다.

인도의 테레사 수녀를 만났던 어떤 분이 이런 고백을 했다.

“그분에게서 발견한 놀라운 점은,

그분 앞에 있을 때면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분은 상방에게 완전한 관심을 쏟습니다.

그분은 거의 말을 하지 않지만 상대방에게 완전히 몰입이 되어 있어서

그분의 개인적인 힘이 상방을 사로잡습니다.”


언제나 입으로는 격려와 긍정의 말을!

손으로는 감사의 편지를!

발로는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사랑의 실천이요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 생각하며

한없는 부끄러움에 고개가 떨구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