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낮은 곳에서 부르는 생명의 노래'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롬12:9-21)

새벽지기1 2020. 2. 20. 06:42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롬12:9-21)


사랑은 감정이 아니다. 사랑은 저절로 생겨지는 자연스런 감정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의 사랑의 정의는 이렇다. “사랑은 감정의 혼란상태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사랑은 의지인 것을, 의지가 없으면 사랑이 아닌 것을 차츰 배워간다.

본문에서 바울은 거짓 없는 사랑을 말씀하고 있다.

거짓 없는 사랑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설파하고 있다(롬12:9-21).


사랑이라 하면 역시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빛을 발한다.

1절에서 3절까지는 사랑의 필요성에 대한 말씀이고,

4절에서 7절까지가 사랑의 본질에 대한 얘기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말씀을 읽어가면서 우린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은 그냥 가만있으면 절로 생기는 자연스런 감정이 아니라,

진리에 의지를 가지고 순종할 때 비로소 생겨나는 영적인 새로운 감정인 것을 배우게 된다.

제를 사랑하며 우애하는 것, 존경하기를 먼저 하려는 것, 부지런한 것,

게으르지 않는 것, 열심히 손을 접하는 것, 이 모든 것이 그저 감정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것뿐이 아니다.

핍박하는 자를 저주하지 않고 축복하는 것 또한 절로 되는 일이 아니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는 자들로 함께 우는 것보다 즐거운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걸 우린 안다.

의지가 없으면 즐거워하는 자들 앞에서 배가 아프지 함께 즐거워하기는 어렵다.

사람은 원래가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감정에 이끌릴 수밖에 없는 감정의 존재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다르다.

감정에 이끌리는 사람이 아니라 진리에 이끌리는 사람이다.

감정에 순종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리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진리에 순종하기 위해 의지의 결단을 다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은 감정적인 취향이 아니고 어떤 대상을 향한 진리에 입각한 태도”이다.


“좋아할 수 없으면 사랑해버리라”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좋아할 수도 없는데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은 감정이지만, 사랑은 태도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다.

좋아할 수 없는 기분과 감정이라면 적어도 사랑을 해 보라.

그러나 그 적어도의 사랑이야말로 좋아하는 감정보다 위한 것이며

성경의 말씀에 훨씬 더 부합되는 진리에 이르는 길이다.


진리와 감정은 언제나 함께 가는 건 아니다.

때론 진리가 감정 때문에 무수한 방해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내 감정이 동할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진리에 먼저 순종함으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성경적 감정이 따라오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의지를 가지고 의지의 결단을 하고 순종하기를 배우는 사람들이다.

그때 감정이 따라온다. 그때 생기는 감정은 하나님이 주시는 감정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감정은 진리에 순종할 때 비로소 따라오는 최후의 순화된 감정이다.

그리스도인은 감정에 이끌리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이끌어내는 사람들이다.


사랑하는 것이 쉬운가, 아니면 좋아하는 것이 쉬운가? 이미 답은 내려졌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감정의 토대 위에서 피어나는 자신의 주관적인 기분과 관련된 소산이기에 상대방을 향한 나의 감정이 상하거나 불편한 일이 생기면 단박에 싫어지는 감정이 생긴다.

러므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감정을 속이지 못한다.

대상를 향한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우리는 난 네가 미워, 싫어 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랑은 나의 쉬 변하는 감정보다 객관적 명령에 근거하는 의지의 발현이다.

즉 사랑은 감정이 싫어도 미워도 진리에 입각하여 진리에 순종하여 먼저 선포하고 결단하는 것으로서 가능한 일이다.

내가 받은 감정과 상처에 상관없이 선전포고하듯 진리를 먼저 선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치유되지 못했던 감정 부분까지도 치유되고 회복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용서는 감정까지 다 치유되지 못했어도

진리의 순종하는 마음으로 먼저 선전포고함으로서 가능한 일이며,

이런 의미에서 좋아하지 못하면 사랑해버리라고 권면할 수 있다.


사랑은 믿음으로 하는 것이지 feel로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will을 동원하는 사람들이지,

믿음과 상관없이 그냥 생기는 feel에 의지해 사랑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아님을 가르쳐주신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 사랑을 얘기하기에 심히 곤란한 사람,

런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라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할 의무는 주었지만 미워할 권리는 주시지 않았다.

사랑보다 앞서는 판단, 사랑보다 앞서는 충고는 우리의 몫이 아니다.

우리의 권리는 모두 같다.

사랑의 권리를 가지라.

사랑은 행위 이전에 관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