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국교회 회복 프로젝트

한국교회가 살아나는 길 (10) - 자랑에서 존중으로

새벽지기1 2020. 2. 5. 06:48


한국교회가 살아나는 길 (10) - 자랑에서 존중으로

 

“스펙이 아니라 스토리다”

 

요즘 많이들 듣는 이야기입니다. 스펙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몸부림으로 나온 말입니다. 스펙은 구직자들이 취업을 위하여 준비하는 학점, 학력, 온갖 자격증을 말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충분할 때 취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참으로 우울한 현실이지만 실제가 그러합니다. 비정규직 직원이 전체 취업의 1/3이 되기 때문입니다. 3명중 1명은 비정규직이 되는 현실에서 정규직을 위한 몸부림은 처절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스펙 쌓기에 청춘을 소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펙에 물든 우리 사회는 참으로 가련합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창의적인 삶이 아니라 스펙 쌓기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를 들어가면 거의 스펙 쌓기 위한 사육에 들어갑니다. 봉사활동도 자발적인 기쁨보다는 스펙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나라의 미래가 어떻겠습니까? 어떤 미치광이는 35살이 되었는데도 가난하면 자신이 못나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1/3은 비정규직이 되는 사회에서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이러한 현상이 스펙에 몰두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최근에 와서는 스펙 열풍에 제동을 걸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업마다 스토리를 말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통하여 그 사람의 재질을 알아보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좋은 발상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통하여 진정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삶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잘 정착된다면 건강한 사회로 조금은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의 모습은 아직은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스토리도 학원에서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대를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스토리 안에 있는 진정한 스펙이 빛을 발휘하는 날들이 올 것입니다.

 

우리시대의 모습을 언급하는 것은 교회의 모습과도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이면에 붙어있는 현상은 바로 스펙 교회입니다. 스펙 목사입니다. 우스운 말로 지역구 목사와 전국구 목사가 있다고 말합니다. 전국 어디에서도 통하는 교회와 목사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지역구 목사들이 아무리 용을 써도 소용없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러한 패배주의적 시각을 가진 것은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많은 시간 동안 잠식해 들어왔던 전국구 목사들의 욕심 때문입니다. 한 예로 전국구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의 부교역자들은 일차로 담임목사 청빙 1순위가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목회자들은 상당수 스펙이 괜찮습니다. 또한 청빙이 되지 않으면 프렌차이점 교회를 세웁니다. 이것이 얼마나 피해가 심했으면 지역구 교회들이 프랜차이점 교회다 들어오는 것을 막는 시위를 했겠습니까?

또한 지역구 목사들의 가슴 아픈 사연은 잘 키운 청년들이 결혼을 위하여 전국구 교회로 가는 것을 볼 때입니다. 막을 수 도 없고, 보내기는 싫은 그 아픈 마음을 누가 알겠습니까? 전국구 교회로 모여드는 청년들의 스토리를 알아보면 그 속에는 지역구 교회의 눈물이 묻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전국구 교회에서 사역을 하지 못하였던 일부 지역구 목사들은 자신들이 좀더 나은 상황을 위하여 과감하게 스펙 쌓기에 최선을 다합니다. 대학원을 가고, 각종 자격증을 취득합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 상담사 자격증, 독서 지도사 자격증, 요즘은 바리스타 자격증, 아하 대형버스 면허증등 많은 목사들이 가지고 있는 스펙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머물지 않습니다. 청빙을 받기 위해서는 유학은 필수 과정처럼 되었습니다. 학위는 받지 못하여도 이민 교회 목회자 타이틀만 있으면 청빙 조건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소명과 삶의 여정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스펙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슬픈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이기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이들이 아직도 도처에 있기에 한국 교회가 그나마 지탱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렇게 슬픈 이야기를 길게 나열한 것은 여기서부터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는 그 어느 시기보다 어려운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유사 이래 이렇게 타락한 교회를 본적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얼마나 타락하였으면 이러한 소리를 들어야 하겠습니까? 결코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쓴 약이 몸에 좋다는 말처럼 우리는 좀 쓴 이야기를 들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점차로 악성 종양에 물들어 죽을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우리는 스펙을 자랑하는 것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로 전환 되어야 합니다. 스펙을 보고 목사를 세우는 현상에서 복음과 삶의 이야기를 살피고 살펴서 세워야 합니다. 그라고 가진 것을 자랑하는 모습에서 가난한 자를 존중하는 신앙으로 변혁되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의 병적인 모습은 큰 것을 자랑하고, 성공을 자랑하고, 높은 것을 자랑하고, 배운 것을 자랑하고, 가진 것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래서 복음과 관계없는 이상한 신앙을 양산하였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흘러 나와야 하는 소리는 성공이 아닙니다. 번영이 아닙니다. 신비도 아닙니다.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의 소식이 들려져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를 살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복음만이 교회를 살리는 길입니다. 스펙이 자랑되고, 가진 것을 자랑하고, 큰 것을 자랑하고, 전국구 목사와 교회가 되었다는 것을 무기로 삼는 다면 한국 교회는 침몰하는 세월호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한국 교회가 앞으로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감당해야 할 것은 바로 십자가의 복음으로 가난한 사람을 존중히 여기는 일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아픈 가슴을 감싸 안아 주는 것입니다. 제발 헛된 영광에 사로잡히면 안 됩니다. 외적인 것을 자랑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멸망의 징조입니다. 화려한 예배당이 부흥의 증거가 아닙니다. 역사상 화려하였던 예배당 뒤에 멸망의 지름길이 놓여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매머드 한 교회는 참된 교회의 모습을 감당 할 수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모이는 것을 자랑하지 말고, 더 모이도록 광고하지 말고 중형 교회로 나눠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몇 개가 있다는 자랑을 지속적으로 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개독교가 되었으며, 동네 개처럼 이리저리 발길질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배우는 일을 등한시해서는 안 됩니다. 기회가 되어 진다면 지속적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나 공부가 자랑이 되거나, 번영을 위한 도구가 되거나, 교회 성장에 기반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버려야 할 쓰레기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자랑이 아닙니다. 교만이 아닙니다. 고개가 뻣뻣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이며, 존중입니다. 특별히 힘이 없는 이들을 위한 나눔이 지속적으로 있어야 합니다. 전국구 교회들은 지역구 교회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늘 존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벼락을 맞아도 시원치 않을 것입니다.

성도 역시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배울 수 있고,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복입니다. 남들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혹시라도 자신이 받은 복을 간증하고 싶다면 자발적 불편을 사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아니라 사욕입니다. 간증은 지금 잘 사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하여 자발적 불편을 살겠다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 허세입니다. 간증을 하려면 어떠한 조건도 없어야 합니다. 자발적 헌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각오가 없다면 간증이 자칫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 있습니다. 연예인들이 간증을 할 때에 매니저들이 상당수의 금액을 요구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닐 것이라 믿지만 혹시라도 간증이 사업이 되고 있다면 멈춰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입니다. 이것은 연예인들만이 아닐 것입니다. 사업가든, 교육가든 간증을 하려면 거저 받았기에 거저 주는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간증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복을 받았기에 이제 아무 대가 없이 나누어 주는 것이 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돌아다니면서 주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복을 간증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목사는 복음을 전하고, 성도는 복음을 통한 삶을 전하는 것이 바로 복음 전도이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 하는 일입니다. 이렇듯 한국 교회를 다시 살리는 길은 자랑이 아니라 나눔입니다. 스펙이 아니라 복음이 만들어준 삶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존중하고 겸손하게 사라지는 일입니다. 한 사람의 영혼을 위한 순수한 헌신이 있을 때 다시금 교회는 살아납니다. 오늘 그 수고를 우리들이 감당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