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남창우목사

막장일까? 축복의 통로일까? (시57:1-11)

새벽지기1 2018. 11. 11. 21:30

                                                   

   

설교일시 : 2018. 11. 4

설 교 자 : 남창우목사

성경말씀 : 시57:1-11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허둥지둥 대고 우왕좌왕하고 엄벙덤벙하고, 마치 동굴에 갇혀 어찌 할 바를 몰라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그런 모습이 우리들에게도 있습니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밝은 대낮을 살아가면서도 동굴 안에 갇혀 사는 사람들처럼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말씀 속의 다윗은 지금 동굴 속에 갇혀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극심한 생명이 경각에 달린 그런 위기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4절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당시 최고의 권력자이며 자신의 장인이었던 사울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참으로 불안하고 두렵고 억울한 상황입니다. 참으로 피할 곡이 없는 지경입니다.

 

우리는 피할 곳이 없습니다. 우리 모든 인생이 처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조심할 것은 그러한 상황에서 그러한 우리의 헛된 감정이나 앞에 놓인 상황에 대한 자연스런 감정에서 나오는 지나친 과장을 피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자기감정의 노예가 되어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은 아닌가하는 지나친 과장에 매여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바라보며 헛된 감정 그리고 그 감정에서 나오는 과장된 마음을 조심해야합니다. 7,8절을 보면 다윗은 참으로 진정한 믿음 있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지금 동굴 속에 갇혀 있는 상황, 사울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이 동굴에서 나를 피하게 하여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동굴도 내게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줄 줄을 믿습니다’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 처해있지만 그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그 상홍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은 다윗이 갇혀있는 이 동국이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었다면 오늘 날 우리가 만나는 동굴도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잇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풍랑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동굴이나 풍랑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찬송가 373장의 가사가 우리 그리스도인의 고백이 됩니다. 바람이 있어야 배가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풍랑으로 인하여 주님께로 다 빠른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큰 물결이 일어나 쉬지 못하고 고통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동굴 속에 갇혀 고통 당하고 낙심하지만 이 풍랑으로 인하여서 소원의 항구로 향하여 더 빨리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있는 자리가 동굴 속이고 풍랑 속이라면 찬송가 373장 2절이 여러분의 찬송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진정 우리는 동굴 속이나 풍랑 가운데 절망하거나 좌절할 것이 아니라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갈 수 있습니라’라고 고백할 수 있길 바랍니다.

 

다윗은 바로 그렇게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동굴은 고립의 상징이요 세상 모든 것과의 단절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입니다. 지금 다윗의 눈은 사냥감을 발견하고 달려드는 매의 눈과 같습니다.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그 하나님이 세상을 압도하는 큰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런 매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과 소통하려는 다윗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에 세상에 살면서 큰 어려움을 겪고 동굴에 갇혀 있다면 그런 상황을 보고 그런 상황 석에 나를 집어 던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을 보고 그런 상황을 통해서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동굴 속에 갇혀 있거나 풍랑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 주님과 소통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죽으라고 준 동굴이 아닙니다. 죽어 없어지라고 준 풍랑이 아닙니다.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이 풍랑을 통하여 우리 모두를 부르시고 계시는 줄을 믿습니다’ 라고 외쳐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 있는 자의 모습입니다. 동굴 속의 어두움은 사람의 힘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어두움은 빛이 오면 사라집니다. 빛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심령에 들어오실 때 우리의 심령은 밝아집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됩니다. 사람이 동굴 속에 갇혀있기 때문에 비참한 것이 아니라 이 동굴 속에 갇혀 있어도 부르짖어 도움을 청할 하나님이 없는 것이 정말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난 아픔이나 고통의 순간, 동굴과 같은 곳이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예배의 처소가 될 수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이렇게 위기 가운데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크고도 높으심을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2절 말씀을 보면 다윗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세상 무엇보다도 크고 위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는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해도 우리의 고통보다 크신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여기에 참된 위로가 잇습니다. 우리의 고통과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비교할 줄 아는 사람은 답을 찾고 답을 얻습니다. 그 사람은 고백합니다. ‘God is good!' 세상을 지으신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정말 우리의 고통이 크다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더 크십니다. 우리는 어두움이 짙다라고 말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 어두움을 삼켜 내시고 녹여 내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바로 그 하나님을 만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그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과 진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입니다.

바로 이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서 새로운 길을 나아갈 수 있습니다. 2절 말씀을 봅니다. 여러분, 그 하나님의 이름을 누가 부름니까? 바로 우리가 불러야 됩니다. 우리의 이 어려운 상황 속에 그 하나님을 불러서 우리의 어려운 상황 속에 개입하실 수 있는 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어려운 상황을 만난 우리가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길은 아는 것이 아니라 가는 것입니다. 아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부르짖고 찾고 길을 나서 가야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관계입니다. 믿음은 지식이 아닙니다. 믿음은 아는 것이며 관계 맺는 것입니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 바로 이런 하나님이 나와 상관이 없는 하나님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이 내 편이 되시고 내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 되심을 믿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은 우리가 동굴 속에서 비참하게 인생을 끝내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 하나님은 내가 당하는 동굴을 축복의 통로로 바꾸어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 일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어떤 때는 정말 답답하도록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맡긴 삶인데도 어지럽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고 싶을 때도 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맡겨야 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는 안 맡기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둘째는 내가 작품으로 빚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 일도 일어나기를 원치 않는다면 그것은 분명 진흙덩어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다윗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다윗이 동굴 속에 있게 된 이유는 자신을 의지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인생을 빚으시는 하나님의 훈련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의 삶도 그러했습니다. 아버지 집에 평안히 사는 것이 목표였다면 그토록 우여곡절을 겪는 인생을 살지 않아도 됩니다. 그의 인생이 꼬일 대로 꼬인 것은 하나님께서 요셉의 인생을 물레같이 돌리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묵묵히 하나님의 손길을 따랐습니다. 요셉은 그의 인생을 꼬이게 만드는 환란에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의 인생을 주목하시고 다루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주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하나님께서 돌리실 때에 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리시면 우리도 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시면 우리는 다루어드려야 합니다. 돌아가는 그 물레에 나를 온전히 맡겨야 됩니다. 견디고 돌아야 합니다. 언젠가는 그 물레는 멈추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할 때 명품 하난가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분노해서도 안 됩니다. 도 명심해야 할 것은 내가 나를 빗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빗으시는 것은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동굴 속에 있다 할지라도 이 동굴이 끝내라는 사인이 나오고 새로운 출발, 새로운 시작, 축복의 통로, 더 좋은 항구로 향하여 더 빨리 나아가는 복된 길이 될 수 있음을 믿고 하나님께서 명품 인생을 만드시는 귀한 날을 맞이하는 날이 오길 소망합니다.

 

 

 

말씀 묵상과 나의 삶 돌아보기

 

1. 나는 지금 어떤 동굴 속에 갇혀있는가?

 

믿음의 순례길을 가는 동안 여전히 고난이라는 장애물이 있음을 목도하게 됩니다. 이 고난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온전히 기쁨으로 수용할 수 없지만 믿음의 여정을 계속할수록 그 고난 가운데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선한 뜻을 발견하게 되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와 힘으로 그 어려움을 헤쳐 나가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의 나 됨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음에 얼마나 감사한지요. 또한 그러한 고난이 나의 믿음의 연약함과 지혜 없음 그리고 나의 허물로 인함이었음을 깨닫게 되고 돌이키는 은혜를 맛볼 수 있음도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러한 경험이 믿음의 여정을 계속할 때 믿음의 자산이 되고 있음에 감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수많은 동굴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믿음의 연약함으로 중심이 흔들리는 동굴에 갇혀 있기도 하고, 건강과 물질로 인한 근심의 동굴에 갇혀 살아가기도 하고, 관계의 손상으로 인한 아픔의 동굴에 갇혀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상실의 동굴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그 상처가 늘 마음의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살아갈 때가 많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잃고 나의 관점에 매여 있어 스스로 자신을 얽먀는 교만의 동굴에 갇혀 있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의 욕망의 동굴에 갇혀 하나님을 외면하기도 하고 분별력을 잃고 세상을 사랑하는 올무의 동굴에 갇혀 살아갈 때도 있습니다. 지금도 삶의 무게라는 동굴에 갇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를 의지하려는 교만과 우상 숭배 또한 동굴의 늪입니다. 어쩌면 이 땅에서의 삶 자체가 크고 작은 동굴의 연속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 나는 지금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 설교 말씀을 통하여 나의 믿음의 현주소를 돌아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모든 인생의 현주소를 바라볼 수 있음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답이 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조심할 것은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헛된 감정이나 앞에 놓인 상황에 대한 자연스런 감정에서 나오는 지나친 과장을 피해야한다는 말씀을 듣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또한 위기 가운데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첫째, 하나님의 크고도 높으심을 발견하는 사람이요 둘째, 그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과 진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으로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되어 참으로 감사합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세상 무엇보다도 크고 위대하신 분이심을 다시 생각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내가 받는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해도 나의 고통보다 크신 이가 하나님이시며 바로 여기에 참된 위로가 있음을 돌아보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나는 과연 믿음의 고백을 나의 삶 가운데 증거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나를 사랑하고 계시며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함께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삶으로 고백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는 그분의 백성이라는 사실이 행여 입술의 고백으로만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돌아봅니다.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총을 얼마나 쉽게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지요. 그분을 삶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스스로 동굴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를 돌아보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진정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믿음 있는 자로 살아가며 일상의 삶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믿음의 순례길을 계속할 수 있길 소망해 봅니다. 나보다 나를 더 아시며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그분을 더 알아가며 그분과 친밀한 믿음의 여정되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있길 소망해 봅니다.

 

 

3. 소망의 항구로 향하여

 

깊은 동굴 속에서 헤매며 높은 풍랑에 휩싸여 살아왔던 지난날들이 떠오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그 시절에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기보다는 원망과 불평으로 그리고 나의 힘과 지혜라는 세상적인 방법으로 그 속에서 벗어나려 했던 날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도 그러한 날들은 여전히 계속되었습니다. 그 고난의 때에 근심하기도 하고 고통을 부르짖을 때도 있었습니다. 다만 그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함께 하심을 발견하고 믿음과 인내로 견디어왔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크고 작은 동굴과 풍랑이 있습니다. 믿음의 여정이 계속될수록 그것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심을 감사하게 됩니다. 시편 기자와 욥의 고백처럼 그 고난 가운데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선한 뜻을 소망하기에 믿음으로 인내하게 됩니다. 다만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더 의뢰할 수 있길 바라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동굴이 깊고 어두울수록 밝은 빛을 더 사모하게 됩니다. 풍랑이 더 거칠고 높을수록 평온의 때를 더 사모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처럼 동굴은 막장이 아니라 축복의 통로입니다.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문제는 바로 나입니다. 나의 생명의 주되시며 나의 삶의 주권자 되시는 그분을 바로 알고 그분을 의지하며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나의 믿음이 문제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에 이르기를 소망하며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을 간구해 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여정되길 간구해 봅니다. 믿음의 연단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걸작품으로 지어져가는 일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더 하나님께 나아가며 거룩해져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동굴 체험이 그리고 시련을 주는 풍랑이 나를 더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하시며 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며 주께서 예비하신 소망의 항구로 나아가는 오늘이 되길 소망해 봅니다. 분명 주님은 나의 참 목자이십니다.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나를 안위하십니다. 그분의 음성에 늘 깨어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