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남창우목사

도망가는 엘리야, 추적하시는 하나님(열왕기상19:1-8)

새벽지기1 2018. 10. 24. 07:43


도망가는 엘리야, 추적하시는 하나님                                                          

   

설교일시 : 2018. 10. 14

설 교 자 : 남창우목사

성경말씀 : 열왕기상19:1-8

 

 

우리 인생은 기대대로 되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 인생을 돌아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괜찮습니다. 여러분, 참된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세상과 우리와 다른 것은 그러한 실망스런 일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내편이 되시고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상의 형편과 사정에 상관없이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시는가, 하나님은 나의 심령 속에 살아계시는가 이것이 우리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 힘이 세상의 모든 낙심된 일을 이겨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성공도 우리의 것이 아니고 우리의 실패도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공을 했다고 교만해서도 안 되고, 실패를 했다고 낙심을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의 희망도 성공도 기쁨도 낙심도 슬픔도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 삼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것을 믿는 것이며 그것 때문에 교회를 나오는 것이며, 하나님이 좋은 것이며, 교회가 좋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나눈 말씀을 보면 믿음의 영웅 엘리야가 낙심과 절망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850명을 죽이고 바알 종교의 거짓됨을 온 천하에 그 거짓됨을 폭로하였습니다. 그런 그가 이세벨의 죽음의 협박과 공갈에 낙심하여 도망을 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낙심과 절망 가운데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하나님께 자살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낙심은 어떤 외부의 여건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고 자기 내면에서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이를 보면 우리의 문제는 언제나 우리 안에서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믿음의 영웅 엘리야는 왜 낙심을 했고 왜 도망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엘리야 그는 형편이라고 하는 올가미 갇혀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3절 말씀입니다.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 앞에 펼쳐지고 있는 상황만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보아야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보지 말았어야 할 형편만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진정 죽을 형편입니까? 이세벨은 죽일 생각이 아니라 협박 편지만 보냈을 뿐입니다. 이세벨은 엘리야 뒤에 계신 하나님 때문에 그럴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방 여인도 보는 하나님을 하나님의 사람 믿음의 영웅 엘리야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엘리야를 협박한 이세벨이 문제가 아니라 이세벨을 바라보는 엘리아의 시각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문제를 만나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예 하나님을 보려 하지도 않는 우리들이 아닙니까? 상황만을 보고 그 상황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를 만날 때 중요한 것은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가 아무리 커도 그 문제보다 더 크신 이가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두 번째로 낙심의 올가미는 바로 자기라는 올가미에 갇혀 있었습니다. 자기 집착, 자기 사랑, 자기 영광이라는 올가미입니다. 4절 말씀에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조금 전까지는 자기 조상들보다 낫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자기 중심적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정한 기준에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 10절을 보면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히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하고 말하고 있는데 엘리야의 중심에는 항상 ‘나’만 있습니다. 지금 그의 인생의 주어가 하나님이어야 하는데 나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모두다 하나님을 떠나고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18절 말씀에 바알에 무릎을 꿇지 않은 7천명이 남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실패했다고 다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끝났다고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실패했다고 하나님이 실패한 것이 아니며 내가 끝났다고 우리 하나님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낙심이 찾아오고 도망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 혼자 있다는 그 자리에 우리 하나님이 계시며 그런 못난 나일지라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손을 놓지 아니하시고 얼굴을 돌려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그런 나와 끝까지 상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바로 엘리야를 찾아오신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그동안 수많은 영정 전투로 지칠대로 지친 엘리야를 치유하시고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희망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오신 것입니다. 우리를 포기하기 아니하시고 끝까지 추적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상황을 바라보지 말고, 나 자신을 바라보다 말고, 상황이 어찌되든지 내 자신이 무력하여 무너지는 순간일지라도 그곳에는 하나님이 계시며 그런 나를 상대하시고 내가 낙심 가운데 내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잊었을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끝까지 추적하시며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나만 보기 때문에 낙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만 보아 쉽게 무너지지 말고 나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언제 어디서나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겠습니다.

 

세 번째 낙심의 올가미는 성공이라는 올가미에 갇혀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믿는 사람은 언제나 성공해야 되는 것 아닌가?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데 왜 어려움이 찾아오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 기준의 성공 방식 그 성공 신화에 갇혀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생각하는 성공이라는 신화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기준의 성공 조건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돈과 인기와 미모가 그런 것입니다. 지금 엘리야도 그런 성공 신화의 덫에 걸려있습니다. 4절 말씀입니다.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서 하룻길을 가서 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 이것은 지금까지는 좋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엘리야 자신이 세운 기준입니다. 엘리야는 지금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 방식대로의 성공이라는 올가미에 갇혀서 그 성공을 있게 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성공은 성공이고 실패는 실패인 것입니다. 그 성광과 실패 뒤에 누가 있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답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엘리야를 굴 밖으로 나가게 하시고 그 손을 붙잡아 산에 서게 하시고 큰 위엄을 드러내시는데 그 가운데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 후에 세미한 음성으로 나타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엘리야야 네가 영웅이 되어 있던 그 자리에만 내가 거기 있었다고 너는 생각하느냐? 지금의 초라한 자리, 이런 실패한 자리, 지금 이러한 슬픈 자리에도 나는 있었느니라‘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성공과 실패의 경계선은 우리가 생각하는 성공과 실패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우리가 있는 자리마다 하나님이 계셨느냐 아니 계셨느냐 하는 바로 그 경계선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성공이고 함께 계싲 않으면 실패인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성공은 성공이 아니며, 하나님이 계신 실패는 실패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에게 낙심이 찾아올 때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우리가 형편을 볼 것인가 그 형편 뒤에 계신 하나님을 볼 것인가? 그리고 도망가고 싶을 때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 내가 잘났으면 하나님의 것이고 내가 못났으면 하나님을 떠난 것인가? 그리고 낙심이 되고 도망가고 싶을 때 이 말씀을 기어하십시오. ‘나만 홀로 남았더니’ 거기 왜 너만 혼자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하고 상대하고 있는 나도 여기에 있고 그리고 내가 너와 이 조국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예비해 놓은 7천명이 남아 있느니라. 너는 네 인생이 끝났다고 그리고 이 우주의 역사가 끝났다고 생각하느냐?

 

여러분 ‘상황’의 올가미를 벗어던지기 바랍니다. ‘나’라고 하는 올가미를 벗어 던지십시오. 세상이 말하는 ‘성공신화’라고 하는 올가미를 벗어던지십시오. 실패해도 하나님이 계시면 실패가 아닙니다. 성공을 해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실패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짜리’입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삶 가운데 이 믿음의 원리를 작동시키며 살아왔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그 믿음의 원리를 작동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보아야 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생명의 근원은 돈의 유무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상황이 아닙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도 아닙니다. 상황이라는 올가미를 벗어던지고 나라고 하는 올가미도 벗어던져 버리고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신화, 있지도 않은 실체 그 모든 올가미를 던져 버리고 생명의 근원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다시 살게 하시고, 정말 세상 모든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고 증거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짜리’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소망이 있습니다. 아직도 형편 대문에 자시 자신의 못남 때문에 그리고 세상 성공신화라고 것에 마음을 빼앗겨 실망하고 낙심하고 죽음의 길을 재촉하며 가고 있는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우리가 힘써야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두려워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마음의 생각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지만 일의 결국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말씀 묵상과 나의 삶 돌아보기

 

1. 나는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 하나님이 나의 주가 되시며 나를 지으신 분이시며 그분께서 온 우주를 주권적으로 다스리고 계심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음은 참으로 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역사입니다. 분명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며 이제는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나의 삶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믿음의 여정을 돌아보면 여전히 나의 마음과 삶 가운데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의지하지 못하는 연약한 부분이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교만함으로 때로는 무지함과 거짓됨으로 온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나를 있는 이대로의 모습으로 받아주시고 순간마다 사랑으로 강권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로 믿음의 길을 가게 하시는 은혜 안에서 오늘을 살아갑니다. 분명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며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갑니다. 또한 이 구원은 나의 의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의로 된 것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여전히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죄성의 쓴 뿌리가 자리잡고 있어 언제든지 나의 의를 세우며 하나님께 등을 돌이며 교만한 모습이 드러나는 삶의 위험에 처해있음을 일상의 삶에서 찾아볼 수 있기에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원컨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믿음의 순례길을 계속할 수 있길 소망해 봅니다.

 

 

2. 나는 누구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믿음의 고백이 일상의 삶에서 증거되고 있는지 두렵고 떨림으로 돌아보게 됩니다. 순간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사람이나 세상의 제도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분명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바 되었고 나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고백하며 살아갑니다. 또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의 자녀 된 자로서 나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구속의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그러나 나의 삶을 돌아보면 순간마다 나의 주인이 내가 되고 있으며 얼마나 쉽게 하나님을 잊고 세상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지요. 오늘 엘리아의 연약한 모습은 바로 나의 모습입니다. 나의 삶을 돌아보면 얼마나 쉽게 상황의 올가미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지요. 하나님이 나의 산성이시요 능력과 힘이라고 고백하지만 상황 속에 갇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모든 상황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영적 어린이로 살아갈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나는 십자가에서 이미 못 박혀 죽었다고 고백하곤 하지만 여전히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어 나라는 올무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지요. 여전히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당장의 나의 유익과 편함에 마음을 두고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는 말씀을 입술로 뇌까리며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뜻보다는 이 세상에서의 성공이라는 가치에 매몰되어 살아가고 있는지요. 순간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잃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이런 나를 여기까지 사랑으로 인도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요. 감사할 뿐입니다.

 

 

3. 나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분명 죄와 허물로 죽었던 나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를 통하여 살리셨습니다. 이제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나의 삶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의 선한 일에 부요한 자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를 입은 자요 복음에 합당한 자로 살아가도록 부름을 입은 자가 되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은 자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습니다. 분명 나의 삶에 일어난 최대의 기적입니다. 비록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는 순례자입니다. 나의 삶의 여정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해석될 수 없는 수많은 흔적들이 많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의 강권하심의 역사들입니다.

 

이제 나의 남은 날들을 계수하는 지혜를 구하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나의 삶의 근본이기에 그 은혜 안에서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여전히 연약하고 허물이 많고 믿음도 연약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는 지혜도 부족합니다. 쉽게 나의 의를 구하게 되고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며 살아가며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지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힘과 능력이 되시며, 나의 진정한 참 목자가 되시기에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놀라운 은혜 가운데 믿음의 공동체에서 말씀으로 양육 받게 하시고 믿음의 지체들과 아름다운 믿음의 교제를 나누게 하셨습니다. 저의 연약한 심령에 순간마다 사랑으로 역사하셔서 새벽을 살게 하시고 말씀을 묵상하게 하시고 이웃들과 나누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분명 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에 빚진 자입니다. 남은 삶이 하나님의 사랑에 올바로 반응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길 수 있길 소망해 봅니다. 복음으로 살아가며 복음의 통로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아직 구원에 이르지 못한 이웃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믿음의 본을 보이며 나의 일상의 삶이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드러낼 수 있길 소망해 봅니다. 그들에게 사랑으로 다가가고 복음을 전할 구 있길 소망해 봅니다. 성령님께서 저의 마음과 생활을 강권하셔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있는 자로 살아갈 수 있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