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마이클호튼

율법과 복음을 혼동하면 칭의도 해방의 능력도 맛보지 못한다 / 마이클 호튼

새벽지기1 2018. 3. 2. 08:03


율법과 복음은 다 필요하지만 각각은 다른 일을 한다. 율법과 복음을 혼동할 때,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주는 의상도, 하나님의 은혜에 있는 해방하는 능력도 맛보지 못하고 만다. 마치 복음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사역이 아니라 우리와 우리의 일에 대한 메시지인 듯, 복음을 살아내고, 복음을 행하며, 심지어 복음이 되는 것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율법에서 등을 돌리는 것도, 율법의 요구를 완화시켜 도움을 주는 조언으로 만드는 것도 합당한 반응이 아니다.

 

율법과 복음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바른 반응이다. 우리에게 복음을 살아내라고 하신 적이 없고,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자비의 관점에서 율법을 따르라고 하셨다. 복음을 율법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가 식은 죽 먹듯 할 수 있는 일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된다. 이것이 복음을 당연시할 수 없는 이유다.

 

어뗜 유형의 복음을 행함은 범주 오류이다. 율법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만, 복음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이 나올 때 행함은 틀린 답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4:4-5). 어떤 종류든 우리의 일 전체가 배제된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롬11:6).

 

생활을 위한 원리, 실천적인 조언, 승리하는 생활의 비결, 제자도의 촉구 그리고 지침 등은 모두 율법이라는 범주 아래 들어간다. 엄중하게 제시하든 부드럽게 하든, 하나님의 명령이든 사람의 것이든 상관없다. 요점은 이 말들을 흘려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a) 이것들이 우리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인하고, b)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더라도, 복음의 하나님의 말씀과는 다른 것임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하겠다”고 한 일들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 거룩과 구속”(고전1:30)이 되어 주셨다는 것이 복음이다.

 

율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을 말하지만, 복음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하신 일을 말한다. 따라서 율법과 복음은 본래적으로 상반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느냐의 문제와 관련하여 이 두 원리는 반대의 입장에 있지 않다.

 

매순간 우리의 자연적인 성향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그 대상인 그리스도를 놓칠 위험에 늘 노출돼 있는지라, 믿음의 시초만이 아니라 기독교인으로 사는 동안 우리 앞에 복음이 플래카드처럼 걸려 있어야 한다. 우리는 매주 복음화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모범을 좇음으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그리스도로 옷 입음으로써,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가능하다. 성령께서 복음을 통해 믿음을 일으키실 때 우리는 의롭다 하심만 아니라 거룩하게 된다.

 

- 마이클 호튼,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pp 166-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