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4

신앙생활은 호기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다.

새벽지기1 2018. 2. 13. 07:44


집은 대체적으로 수십 년 동안 유지된다. 잘 보관하고 유지하면 100년이라도 간다.

영국 유학시절 집이 80년 된 집에 살았는데 영국 집들은 대체적으로 빅토리아 여왕 시절에 지은 집들이다.

세대가 바뀌어도 건물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미국도 콘크리트로 지은 집이 아닌데도 30년이상 아니 50년 이상 된 집들이 많다.

50년이 된 집이라면 적어도 여러 사람들이 살았다고 여겨진다.


요즘 아파트 생활을 하는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고 이주하므로 새집에 사는 것보다

옛 집이만 벽지나 가구만을 바꿀 뿐 실제는 옛집에 살고 있는 셈이다.


언제가 되어도 새로운 집에 살 수 있을까?

결혼하는 당사자는 새로운 삶을 산다.

부모가 보는 자녀의 삶은 어떻게 그 기나 긴 삶을 견딜 수 있을지 늘 걱정이다.


지금 이 나이가 돼서 돌이켜 보면, 모든 어른들이 걸었던 길이지만 나에겐 생소한 길이었다.

일을 직면하면 난감해 하고 묻고 또 물어서 하나씩 해결했다.

인생은 정해져 있는 것이고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지만 당사자에겐 생소하고 낯선 것이다.

그래서 경험 많은 배터랑이 요구되는 가보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가지고 아이들은 충격을 받고 신선한 도전을 받는다.

대학생들은 고등학교와는 다른 분위기에서 밚은 지식을 쌓는다.

그 지식을 가지고 이성적으로 판단한다.

흉내 내는 것이지만 자신에게는 신지시그로 수용되기 때문이다.

간접적 지식이지만 자신의 것인 양 사회를 비판하고 심지어 부모까지 들먹이면서 반항한다.

아직 세상을 살아보지 못한 자들의 작태들임을 알지 못한다.

경험에서 얻은 지식을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지식인 양 설치는 어설픈 청년들의 자태를 본다.

조금의 지식을 가지고 모든 것을 아는 양 세상에 대해 날카로운 칼날을 간다.

그 칼은 컴퓨터 화면에 나타났을 뿐 사용하지도 사용되지도 않는 칼날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이론 일뿐이라는 것이다.


진리는 경험에서 하나씩 얻어 간다.

이론적인 지식인 의식화 교육과는 너무나 다르다.

듣는 말씀들이지만 삶에서 증명해 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경험을 통해 얻어진 참된 지식이 아니라면 참고 기다려야 한다.

오늘 내뱉은 말이 내일이면 되돌아오는 경우가 흔한 이유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결정했기 때문에 부메랑으로 돌아와 후회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에 있어 호기심을 가진 지식으로 인간은 만족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실천보다 지성적 만족감에 빠진다. 이것은 신념이다.

예를들어, 포만감이 나타나기 전에 배불리 먹으려고 한다.

일단 포만감이 들면 먹기 부담스럽다.

하지만 이 감정이 나타나기 전까지 정신없이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정신없기 음식을 씹지도 않고 먹는다.

그러다 보면, 배불리 먹게 되고 만다.


신앙생활은 호기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다.

지성적인 만족에 머물지 않는다.

실제로 그 말씀대로 살면서 그 진리가 삶으로 나타나도록 한다.

사람에 따라 오래 걸릴 수도 있겠지만 삶에서 깨달은 진리를 호기심을 채운 진리와 전혀 또는 질적으로 다르다.

전자는 신념적으로 믿음이라면, 후자는 실천적 신앙이라 말할 수 있다.

전자는 의지적 믿음이라면, 후자는 실제적 신호라고 말 할 수 있다.

체험을 통한 진리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