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4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생명처럼 보호하는 것과 같아 하겠다.

새벽지기1 2018. 2. 6. 13:45


나는 엄격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늘 자율성을 보장받았다.

그것에 대한 대가도 받아야만 했다.

1979년 교육전도사로 임명 받은 후 나는 줄곧 실행한 교역자 생활이 지금까지 40년이 되어 간다.

현재는 자라서 목사와 장로 및 권사들이 되었지만 제자들이 당시에 한결 같이 나를 향해 말했던 흑평이 있었다.


"독재자!" 그렇다! 나는 독재자였다.

죽어가는 영혼을 과묵할 수 없다.

물에 빠져 죽어 가는데 차분하게 말할 수 없다.

고함을 치고, 손짓하고, 뭔가를 해야만 한다.

세상의 영들이 우리를 얼마나 유혹하고 미혹하는데 영의 양식을 별로 만들어주고 먹게 하지도 않고

힘 있게 살아가라고 말하는 게으른 부모가 되기 싫다.


난 새벽마다 기도하는 내용이 있다.

"하나님의 자녀를 저에게 맡긴것을 압니다. 그 양들을 책임지고 하늘나라까지 데리고 갈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목회의 좌우명이다.

누가 자신의 자녀를 세상에 방치하며 내버려둘 것인가?

버려진 반려 동물처럼 취급하는 것은 부모로서의 도리가 아니다.


교회는 영적 모친이다.

양육하고 먹이고 이끌고 가르치고 경고하고 자라게 하게 해야 한다.

물론 이런 행위는 인간의 행위이다.

영적으로 자라게 할 수 없다. 그분이 하실 것이다.

하지만 맡은 청지기로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목회자인 목사에게 말하는 명령이다.


나의 성도로 아니고, 나의 교회도 아니다.

10여 년이 지나면 누구든 이 성도들을 맡아 목회할 것이다.

누군가 이 교회를 맡아 목회자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나는 운동장의 경주자로서 바통을 다음 경주자에게까지 전달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새벽기도회 때마다 기도하는 내용이다.


나는 엄격하게 성도들을 양육한다. 양육할 것이다.

이것이 힘들 다면 하나님의 교회들은 주위나 편한 곳이 주위에 많다.

언제든 자발적으로 가서 양육을 받으면 된다.

모든 성도가 나의 취미와 취향을 좋아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언제든 취향에 따라 떠나면 된다.

이런 취향을 따라 양육을 받고자 하는 자들이라면 난 엄격하게 다룰 것이다.

어떨 때는 엄격한 훈도자의 감독자로서, 다를 때는 다정한 이웃집 아저씨로 대할 것이다.
조금도 방심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진 성경적 지식, 신학적 자식, 역사적 지식을 충분히 전할 것이다.

그것을 통해 한국교회에 널려 있는 너절한 이단사상을 자신있게 딛고 힘차게 살아가도록 할 것이다.

세상이 우리를 넘어뜨려도 잠시 비틀거릴지라도 주저앉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우리를 유혹할 지라도 쉽게 곁길로 빠지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맡긴 양떼를 위협하면 나는 사정없이 달려가서 내칠것이다.

빼어내서 치유할 것이다.

연약한 양떼를 마음대로 이러 저리 이끌러 끌고 가는 것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열정이 지나쳐서 남의 영역을 넘보지 않을 것이다.

나의 영역과 한계를 철저하게 지킬 것이다.

내 울타리 안에 있는 양떼에 대한 책임을 맡았다.


이것은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생명처럼 보호하는 것과 같아 하겠다.

선을 베푸셔서 이웃집 양떼를 돌보도록 한다면 이따금 가서 젖을 먹일 수 있어도

나는 언제든 내가 자녀를 더욱 사랑할 것이다.

나는 새롬교회 목회자로 부름을 받았다.

이 책임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