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4

세상에서 잊히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고 그분에게서. . . . .

새벽지기1 2018. 1. 31. 11:24


등산을 하다보면, 돌에다 자신의 이름을 새긴 것을 종종 본다.

자연을 만끽하다가도 그런 낙서를 보면 짜증이 난다.

남산에 오르면 열쇠뭉치들이 수없이 있지만 본인이 걸어 놓았던 것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고 하여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안다깝기만 하다.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자연을 훼손해도 된다는 그런 착상 자체가 불쌍하게 여겨진다.


대학교들이나 무슨 재단에 보면, 심지어 교회당에서도 어떤 인물의 이름을 기리는 건물들이 있다.

황당한 것을 본다.

세상에서나 학교면 몰라도 교회당 안에도 누구의 이름을 기념하는 건물이 있다는 것을 보면 심정이 상한다.


그리스도 외에 누구를 기억할까?

칼빈 선생의 무덤은 아직도 없다.

존 낙스의 무덤은 현재 주차장으로 상용 되고 있다.

자신의 이름 석자를 남기는 것에 미련을 두도 있나?


시중에 널려 있는 책들을 보자.

자신의 얼굴을 내세워 겉표지 하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책이란 문자를 통해 그 저자의 사상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것이지

연예인들도 아니고 얼굴은 왜? 얼굴을 알리고 싶다면 목사나 저자가 되어야할 이유가 없다.
그냥 얼굴마담으로 살면 된다.


연예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까 생각해보자.

연예인들은 대중으로부터 자신이 잊히는 것을 공포로 생각한다.

정치인은 어떨까?

어떤 스캔들을 통해서라도 자신을 대중들에게 인상 지우려고 발광을 한다.

어떤 여성 연예인들은 옷을 비취거나 몸을 드러내는 롱드레스를 입고 공식 석상에 나타난다.
그렇게 하여 대중의 시선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런 시선이 곧 인기와 돈과 관련을 맺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어떤가?

면책 특권을 악용하여 매스콤에 자신들의 이름 석자가 늘 등장하고

인터뷰가 나타난도 싶어 혈안이 되어 있다.


개혁신앙이라면 진정으로 잊히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일반인들처럼 대중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이다.

그분이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영벌이다.

그분이 우리를 기억하고 있다고 착각에 빠지곤 한다.
절에 가서 부처상 앞에 사는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형상을 가진 하나님으로 여겨 그분에게 눈도장 찍으려고 애쓴다.

어처구니없는 행동이지만 실제로 수많은 거짓 신자들이 그런 행동을 한다.


심지어 주보에도 자신의 헌금을 낸 이름을 순서가 뒤에 있거나 바뀌면 무척 화를 낸다.

주보만 아니라 학교나 관공서에도 자신의 이름의 순서에 우리는 매우 민감하다.

한 번 보고 그만 둘 것이지만 대중의 기억에 남으려고 한다.

대중은 쉽게 잊어버린다.

자신의 직접적인 일과 무관하면 대중은 쉽게 등을 돌린다.

그것의 등 돌림이 힘들어 애을 쓴다.


하나님의 기억하심은 개혁신앙인에게 매우 중요하다.

손바닥에 이름을 새기면서까지 우리를 기억한다고 이사야는 말한 적이 있다.

이런 기억은 보호하심을 의미한다.

그분이 우릴 기억하는 것은 아버지로서의 보호하심을 의미한다.


그분의 우릴 기억하는 것은 아버지로서의 보호하심을 의미한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를 기억해 달라고 애쓰는 것은

보호함과는 상관없이 이익을 보겠다는 심보가 깔려 있다.
그것이 자신의 명예와 물질과 관련을 맺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잊히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고 그분에게서.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