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4

경건한 자는 반드시 그분 앞에서 자신을 살핀다.

새벽지기1 2018. 1. 28. 07:34


어릴 때 내 개인의 공간을 갖고 싶었다.

공부방이 있으면 이것과 저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여의치 않았다.

친구 집에 놀러가면 난 항상 부러웠다.

단칸방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우리 가족과 대조적이었다.


내 나이 20세에 이르러 마침내 모친은 내 방이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

나는 너무 좋았다. 여름이 되면 덥고, 겨울이 되면 춥지만 난 좋았다.

또 나는 키가 큰 친구들이 부러운 적이 있었다.

멋있지 않은가? 점차적으로 나이가 들어 나의 정체성을 찾게 되자 어릴 때 비교하며 살았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인간의 인격이 되자 어릴 때 비교하며 살았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인간의 인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만 아니라 하나님은 인간을 평가하실 때 한 면에만 치중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인격 안에는 영의 기능으로 판단되는데

그 기능을 영어로 function이라 표기하지 않고, faculty라 표기한다.

타고난 기능 또는 능력을 의미한다.

대학교의 교수진을 faculty라 표기하는 이유는 대학교의 타고난 기능이나 능력이 교수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영의 기능 또는 능력을 다양하다.

물론 가시적이지 않기에 결코 판단하기 쉽지 않지만 영은 여전히 지금도 부지런히 활동하고 있다.

그 활동을 멈추면 육에서 나가게 된다.

그러면 육체는 섞고 만다.

영의 기능이 어떠함에 따라 인간의 가치와 정체성은 달라진다.


어떤 인간은 마음, 즉 지성(mind)매우 탁월한 자가 있다.

그렇다고 다른 영의 기능들이 탁월하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공부 잘하는 자가 인격이 탁월하지 않기 때문이다.

판단의 주체인 오성(悟性,understanding)이 탁월하여 사업을 잘하거나 정치를 잘한다고 해서

그의 인격이 탁월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 기능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고집이 세거나 많은 일을 긍정적으로 행하는 의지가 강한 자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격이 강하다는 것은 아니다.

영의 어떤 기능이 하나가 탁월하다는 것이 그의 인격의 한면을 만해줄 뿐 인격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나이가 들어서야 이 진리를 깨달았다.

학교에서 성적이 우수한 자가 모든 면에서 우수한 줄 착각한 것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인간의 다양한 기능인 이성, 지성, 의지 및 감성이 함께 어우러질 때 인격이 제대로 된 것이다.

어느 하나의 기능이 좋다고 다른 기능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하나씩 그 기능의 활동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어느 군인이 용감하거나 담대해서 주위의 시선을 끈다고 하자.

전쟁터에서는 그 용맹성이 뛰어나겠지만 과연 개인의 삶이나 가정에서 그런 용맹서이 빛을 나타낼까?

이따금 영웅들이 있어 그럴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다.

인간은 자신의 영의 기능 중 어느 하나의 발달에만 치중한다.

하나님의 평가에서는 어느 기능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하나님 앞에 나오거나 산다면 자신을 온전히 살피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경우에는 고통스럽다.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어 한다.

육체 단련을 위해 조금의 고통이 따르는 경우와 유사하다 하겠다.

자신을 면밀하게 말씀이란 면경을 통해 살피거나 정관한다는 것을 정말이지 힘들고 또 힘들다.

하지만 경건한 자는 반드시 그분 앞에서 자신을 살핀다.

그렇기 때문에 죄 죽이기가 이뤄진다.

자신을 살피는 것은 고통이 따르지만 그 고통으로 인해 진리의 자유케 하심을 맛보게 된다.

자유의 맛을 본자는 자신의 행동을 고치게 된다.

고치지 않는 자는 여전히 영적 기능의 불구자이다.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사회에서나 가정에서 불균형의 삶을 살 것이다.

어느 한쪽에서만 칭찬 받은 자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