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종교개혁 주일― (로마서1:8=17)

새벽지기1 2018. 1. 30. 08:09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4)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 캐슬 예배당 정문에 95개조의 개혁문을 붙인 이후로 10월 마지막 주일을 우리 신교에서는 종교 개혁 주일로 지키어옵니다.
16세기의 종교 개혁은 당시 유럽은 물론 세계적으로 오늘날까지, 다만 신앙생활 뿐 아니고 정치, 경제, 문화, 각 방면에 큰 변혁을 일으키게 만든 것입니다. 이 큰 종교 개혁 운동의 표어는 우리가 지금 읽는 1장 17절의 말씀이올시다.『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늘 종교개혁 기념 주일을 당해서 우리 신교를 믿는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여기에 대하여 알만한 몇 가지를 특별히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대로 생각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여러분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제1세기에 주님께서 오시고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신 후에 온 사도들과 믿는 사람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당시 로마 제국에 활포(滑布)되게 된 것입니다. 유대 사람들의 핍박이 먼저 있었고, 그 다음에 로마 정권의 핍박이 가혹했지마는, 당시의 믿는 사람들은 담대히 사방에서 복음을 전파해서 주후 313년에는 기독교도 온전히 신앙의 자유를 로마 제국에서 얻게 된 것입니다. 그 후 몇 해가 되지 아니해서 기독교는 당시 그리스도를 믿는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서 국교로 인정을 받게 되었고, 그 때부터 전 로마 제국이 신봉하는 유일(唯一)의 종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 불행히 로마 제국이 분열되어서, 로마시를 중심으로 하는 서로마 제국이 이루어졌고, 콘스탄틴노불을 중심으로 하는 동로마 제국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교회의 정치상 발전도 그 영향을 많이 받아서, 점점 서로마 제국의 판도 안에 있는 교회들은 로마의 주교가 다스리게 되었고, 동로마 제국의 판도 안에 있는 교회들은 점점 콘스탄틴노불에 있는 대주교가 통치하게끔 된 것입니다.
그 후 몇 세기를 내려오면서 그 두 교회 사이에 큰 교리 상 차이는 없지마는 대체로는 교권의 충돌로 말미암아서 동편에 있는 교회와 서편에 있는 교회가 점점 멀어가다가 마지막에 1054년에 불행하게도 동 교회와 서 교회가 완전히 분열된 것입니다. 그래서 11세기부터, 지금으로 말하면 동편 유럽과 중동 지대에 있는 교회를 정통 교회 혹은 헬라 정통 교회라고 하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로마 시를 중심으로 하는 다시 말하면 로마 교황이 다스리는 서 로마 제국판도 안에 있는 교회를 로마 카톨릭 교회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본래 카톨릭(Catholic)이라고 하는 말은 라틴말로「일반적」이라고 하는 뜻입니다.「세계적」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따금 쓰는 에큐메니칼이라고 하는 말과 뜻이 대동소이합니다. 그래서 사실 11세기까지 내려오는 동안은 부분적으로 인도의 말토마 교회라든지, 애굽의 콥틱 교회든지, 혹은 수리아 교회가 분열되었지마는 기독교 전체는 대체로 이 카톨릭 교회라고 하는 이름아래에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11세기에 동 서 교회가 분열된 까닭으로 그 다음부터는 서편에 있는 교회만을 로마 카톨릭 교회라고 하는 이름으로 역사상에 불리게끔 된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 유럽은 대체로 이 서 교회, 로마 카톨릭 교회의 지배 아래 있게 되었는데, 여러 암흑 세기를 지나오면서 불행히 이 서 교회가 많이 부패하게 되었습니다. 신덕(信德)이 없는 사람들이 교황이 되고, 혹은 주교가 되고, 혹은 신부가 되며, 심지어 교직을 매매하게끔 되었고, 여러 가지로 부패해 내려오다가 16세게 초에 와서는 심지어 사람이 죄 사함을 받는데 속죄 표를 사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이론이 성립되게 되었고 그와 같은 일을 교황청에서 감행하게 즘 된 것입니다.
본래 마틴 루터는 독일 색손이라고 하는 지방에서 광부의 아들로서 가난하게 났는데, 그러나 그 때에 신앙하는 법대로 경건한 가정에서 났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아주 엄격한 신앙 지도를 받았고, 소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서 졸업한 후에는, 그 당시에 흔히 하던 대로 자기의 몸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칠 뜻으로 수도원에 들어가서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수도사가 된 얼마 후에, 신부로서 안수를 받으면서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성경을 강의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그가 맡은 과목이 시편과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였습니다. 이와 같은 성경 과목을 가르치면서 연구하는 동안에 점점 깨닫게 된 것은 당시 교회의 교훈과 행사가 성경의 교훈과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게끔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 신부는 마음가운데 많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때 마침 로마 교황이 성 베드로(St, Peter)라는 큰 예배당을 짓기 위해서 전 유럽으로 모자라는 돈을 모금하는데 속죄 표를 널리 팔면서 독일 근방에까지 와서 속죄 표를 선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에 이 청년 루터는 더 침묵을 지킬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95개조의 그릇된 점을 지적하면서 속죄 표 파는 것을 반대했고, 그 당시의 소위 참 회개라고 하는 모든 것에 대한 반대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오직 죄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으로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로 죄 사함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인데 속죄 표를 사서 어떻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겠느냐 고 반대를 하게끔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처음에 비텐베르크 작은 도회에서 시작이 되었지마는 이 소식이 유럽에 퍼지게 되었고 종교 개혁의 불길은 요원의 불과 같이 온 세계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교황은 자기의 정치적 세력을 이용해서 물론 무력으로 탄압하기를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신교도들도 부득이 핍박을 받다 못해 싸울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소위 종교전이 16세기와 17세기에 많아졌습니다. 스페인 같은 데서는 종교 재판소에서 신교 사상을 가진 사람을 전부 일일이 심사해서 학살한 수가 얼마나 많은지 부지기수입니다.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도 1572년 8월 23일, 성 바돌로매 제일 같은 때에는 갑자기 구교도들이 일어나서 신교도들을 7천 명에서 1만에 달하는 생명을 파리에가 학살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30년 전쟁이 일어나서 오랫동안 끌다가 마지막에 1648년 웨스트팔리아 조약에 의해서야 비로소 유럽에서 신교도들이 양심대로 주를 믿을 수 있는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왜 제가 이 말을 여러분에게 드리는고 하니 양심대로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하여 얼마나 고가의 희생이 지불되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깨닫고,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신교의 자유가 있다고 하는 것을 감사할 수밖에 없는 까닭입니다.
종교 개혁이 있은 후에 천주교 안에서도 자체를 개혁하자는 운동이 일어나서 여러 가지로 부패한 점을 많이 고쳤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지금까지도 구교와 신교 사이에는 그 교훈이나 그 신앙이나 그 예배 상 여러 가지 방면에 다른 점이 많습니다. 우리 신교를 믿는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몇 가지를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첫째로 우리 신앙의 제일 중요한 것은 신앙의 표준이올시다. 이 신앙의 표준을 어디에 두느냐? 우리 신교들은 신구약 성경에 둡니다. 신구약 성경은 우리 신앙의 정확 무오한 법칙으로 우리 신교도들은 다 믿습니다. 그러나 구교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구교에서는 신앙과 행위의 표준을 성경과 교회의 유전, 전통, 그것에 둡니다. 그러니까 성경 이외에 다른 것이 많습니다.
우리 신교에서는 누구든지 성신의 감화 가운데라면 양심적으로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됩니다. 구교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해석할 권리는 교회에만 있는데 그것은 교황에게 최종적으로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교에서는 성경 무오설을 믿지마는 구교에서는 교황 무오설을 믿습니다. 교황이 신앙이나 도덕에 대하여 무슨 작정을 할 때에는 실수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신조입니다. 결국은 교황의 생각이 그들의 신앙과 행위의 대부분 표준이 됩니다.


또 둘째는 구원의 표준을 어디다 두느냐? 우리 신교들은 성경에 가르친 그대로『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그 신과 하나님의 은혜에 둡니다. 구교에서는 신앙도 인정합니다. 허나 거기에 선한 행위도 하나 더 겸해야 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얼른 듣기에는 좋고 타당한 말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들은 왜 선한 행위를 해야 되는고 하니 구원을 얻기 위해서 선한 행위를 해야 됩니다. 우리 신교에서는 믿는 사람이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은 믿음의 한 열매로 압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참 신앙입니다. 자연히 열매로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공을 쌓기 위해서 선행을 해야 된다고 이렇게 가르칩니다. 또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아무리 그렇게 해도 저 혼자 믿으면 안됩니다. 꼭 천주교회와 교황에게 순복(順服)하면서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셋째로 중보(中保) 문제를 생각해 보세요. 우리 신교에서는 성경대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는 오직 그리스도 한 분뿐인 줄 믿습니다. 그러나 이 구교에서는 물론 그리스도도 인정하지마는 그리스도 외에 다른 여러 가지 중보가 많습니다. 가령 마리아, 그들은 성경이 없는 말을 많이 믿습니다. 마리아는 원죄가 없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승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보다는 마리아에게 먼저 기도합니다. 마리아 뿐 아닙니다. 베드로, 여러 사도, 여러 성자들까지 다 성상을 해 놓고 그들한테도 기도합니다.
또 그뿐 아닙니다. 산 사람 가운데도 중보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우리 신교도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직접 기도하고 하나님께 은혜 받고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신부를 통해서입니다. 결국은 교황을 통해서야 복을 받게 됩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정치는 어떠해요? 우리 신교에서는 여기 성경에 있는 대로 합니다. 집사를 선정하고 장로를 선정하고 당회(堂會)를 조직하고 이렇게 해서 교회를 다스립니다. 우리 신교 가운데 정치가 좀 다른 교회도 있지마는 과히 틀리지 않고 대체로 그렇습니다. 구교에 가면 절대로 다릅니다. 구 교회에서는 한 사람 중심인 독재 정치입니다. 교황은 베드로 계승자라고 주장합니다. 역사적으로 증명할 것은 없지마는 좌우간 그렇게 믿습니다.
그것이 다릅니다. 사도 계승자 교황이 대주교를 임명하고, 대주교가 주교를 임명하고, 주교가 그 아래 신부를 임명해서 온 천주교를 다스립니다. 평신도에게는 발언권 하나도 없는 일인 독재 정치입니다. 천주교에는 자유가 없습니다. 심지어 책 한 권도 마음대로 못 봅니다. 교황청에서 만든 금서목록이 있어서 거기에 금하는 책을 보다가는 출교(黜敎) 당합니다. 여러 가지로 제재가 있습니다.


또 보세요, 성경은 어떠한가? 우리 성경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구약39권 신약 27권, 꼭 66권입니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거기에 좀 더 가져다 붙였습니다. 구약 39권에다가, 우리 신교의 학자들이 혹 옛날 사정을 연구하기 위해서 참고서로 쓰는 구교 외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무슨 바룩이니, 토비야니, 마카비니, 이런 외경들이 여섯 권이 있는데 이것을 더 붙였습니다. 그래서 카톨릭 성경은 66권이 아니고 72권입니다.
열 가지 계명은 어떤지 아십니까? 그들의 계명도 열 가지는 열 가지입니다. 그러나 읽어 보면 우리가 읽는 열 계명과 다릅니다. 첫째 계명은 같지마는 둘째 계명은 없습니다. 그들의 둘째 계명은 무엇인고 하니『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으지 말라.』는 셋째 계명이 이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마지막의 열째 계명은 둘로 나누었습니다. 아홉째 계명을『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이렇게 말들었고, 열째 계명을『네 이웃의 집이나 물건을 탐내지 말라.』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둘째 계명을 빼버렸습니다. 여러분, 둘째 계명이 무엇인지 압니까?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고 하는 계명입니다. 그 계명을 묵살한 것은 의미가 심장 합니다.


성례를 보세요. 우리 신교에서는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지킵니다. 세례 받고, 성찬식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구교에서는 다섯 개를 더 붙였습니다. 견신례라고, 세례 받은 다음에도 주교가 와서 기름을 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 참회례(懺悔禮)라고 죄 지은 다음에 신부한테 와서 자복하고 죄 사람을 받는 것입니다. 말유례(末油禮), 혹은 종유례(終油禮)라고, 사람이 죽어가게 되면 특별히 와서 기름을 부어 주면서 기도하는 기름 붓는 예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혼례식, 임직식, 이것 두 가지도 겸해서 구교에서는 성례가 일곱 가지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많아도 좋습니다. 하지마는 성경에는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것을 성례라고 안 했습니다. 성경에는 우리 신교대로 두 가지만 가르친 것뿐입니다.
예배는 어떠하냐? 우리 예배는 사도들이 보던 대로 그저 모여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성경 말씀을 읽습니다. 지금도 예배 보지 않습니까? 구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구교는 예배가 아니고 사실 제사를 늘 드리는데 미사 제라고 합니다. 이 미사 제란 구교에서는 성찬 예식 때에 쓰는 떡과 포도즙을 신부가 한번 종을 치며 기도한 다음에는 그것이 사실상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피로 변한다고 믿습니다. 화체설(化體說)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이것이 사실 예수님의 몸이 되면 예수님의 몸을 다시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것이 미사 제입니다. 그 때 예배 보는 사람의 죄를 다 용서해 주기 위해서 신부가 기도해서 만든 예수님의 몸을 하나님께 제물로 방금 드리는 것입니다. 옛날 제사장들이 양을 드리듯이 하는 것이 미사 제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근본적으로 성경의 속죄의 원리를 전복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산상에서 십자가에 그 몸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림으로 말미암아 한번에 우리의 죄를 대속 하였다고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이것은 잊어버리고 주일날 모일 적마다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예수님 제사를 다시 자꾸 드립니다. 성경에 근거가 전혀 없는 사람의 상상에서 나오는 행동밖에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 밖에도 그들의 예배를 가보면 여러 가지로 의식적 예배가 있습니다. 바로 예배당에 들어오면 성수를 찌어서 십자가를 드립니다. 또 촛불을 쓰느니 혹은 성상 앞에서 하는 여러 가지 식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아무렇게 해도 좋지마는 분명히 알 것은 천당이 있다고 그랬고 분명히 지옥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우리 신교에서는 단순히 그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구 교에서는 한 가지 더 첨가합니다. 천당과 지옥 사이에 연옥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좀 잘 믿는 사람은 곧 천당에 가지만 잘못 믿는 사람 가운데 지옥에 채 안갈 사람은 연옥에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연옥에 간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옛날에는 속죄표(贖罪票)를 사라고 굉장히 광고를 했습니다. 성경에 없는 이야기들입니다.


또 사죄의 관념을 보세요. 우리 신교에서는 단순히 성경 그대로 누가 죄를 지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직접 하나님 앞에 나와서 죄를 자복하면,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공로로 그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 마음에 평화를 주십니다. 천주교에서는 다릅니다. 하나님께 직접 안 가고 누구에게 가야 하는지 압니까? 신부에게 가서 죄를 자복해야 됩니다. 다 자복한 다음에 신부가 좀 중한 죄는 좀 중한 일을 시킵니다. 경한 죄는 조금 경한 책임을 줍니다. 그 책임을 다 했을 경우에는 신부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신도의 죄를 사해준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여기 잘 믿는 구교도들은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자복을 합니다. 매일 가는 것이 좋고 옳은 것입니다. 잘못 믿는 사람은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자복을 하는 것이 천주교의 법이라고 합니다. 이런 모든 것이 성경에 없는 법입니다.


또 보세요. 우리 신교의 교회는 단순히 종교 단체입니다. 그러나 천주 교회가 완전히 종교 단체이냐? 그것은 의문입니다. 천주 교회는 정치 단체로 변합니다. 로마에 가 보면 로마 성 안에 바티칸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는 아무나 침범 못합니다. 교황이 그 나라 왕입니다. 전부를 다스립니다. 그것이 확대되어서 다른 데 나오면 교회가 됩니다. 몸은 하나인데 머리를 둘입니다. 교황도 되고 왕도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알 것은 천주교가 어디 가던지 언제나 정치적 관심이 많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나라로 행세할 때에는 다른 나라와 외교 사절도 교환합니다. 다른 나라와 조약도 맺습니다. 우리 신교야 다른 나라와 조약 맺는 것이 있습니까? 그러기에 여러분이 알 것은 이 천주교회라는 단체는 언제나 신령한 단체만은 아닙니다. 일종의 정치적 단체입니다. 구교를 믿을 때 한 가지 알아야 될 것은 단순히 교회라는 단체에 가입하는 줄만 알아서는 안 됩니다. 일종의 정치적 단체에 가입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거 보세요. 신앙의 자유를 어떻게 보느냐? 몰론 20세기에서 구교가 신교를 무력으로 탄압하려는 생각은 안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래도 사실을 사실대로 알아야 되겠는데 현재 20세기에서도 구교가 절대 다수인 나라에서는 신교가 핍박을 받는 교회가 많습니다. 가령 스페인에서도 현재 받습니다. 제가 지난번에 갔던 남아메리카 가운데 특별히 콜롬비아에 같은 나라는 특별히 그렇습니다. 그곳은 천주교가 절대 다수이니까 위에 대통령으로부터 순경에 이르기까지 천주교가 정권을 다 잡았습니다. 핍박하려면 얼마든지 핍박합니다. 콜롬비아에 가서 제가 그 소식을 직접 들어보니 과거 20년 동안에 이와 같은 천주교 나라에서 신앙 때문에 순교를 당한 사람이 118사람이라고 합니다. 예배당 66곳이 파괴당했다고 합니다. 이 구교 압박으로 학교 폐쇄 당한 곳이 2백 학교나 된다고 합니다.
먼저 번 피얼스 박사도 수양회 때 와서 말했지마는 그 자리에서 직접 앉아서 다 적어 가지고 왔습니다. 목사 수양회 때 한 3백 명 모였는데 그 가운데서 구교도 핍박으로 인하여 감옥에 갔던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니까 62사람이나 되었습니다. 자기 예배당 파괴당한 교회가 몇 사람되는지 손들어 보라고 하니까 28사람이 들었습니다. 직접 총알에 맞고 매맞은 사람이 몇 사람이냐고 하니까 26사람이 손들었습니다. 자기 교인 가운데 순교 당한 그런 교회 목사가 몇 사람이냐고 물어 보니까 24사람이 손들었습니다. 이것은 20세기 현재의 사실입니다. 우리 신교가 이런 것을 알기는 알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과거 4백 년 동안에 어떤 나라는 신교로 내려 왔고 어떤 나라는 대체로 구교로 내려온 까닭으로, 신교가 일반 국가에 주는 문화와 영향과 구교가 일반 국가에 주는 영향을 역사적으로 연구해 볼 수 있습니다. 가령 북 아메리카에 있는 미국과 캐나다는 대체로 신교들입니다. 남아메리카는 대체로 구교 나라입니다. 남 북 아메리카의 문화의 수준을 비교해 보세요. 유럽을 보면 저 북구와 영국은 다 신교입니다. 이 아래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거의 다 구교입니다. 그 두 나라들은 문화가 어떠한지 여러분께서 연구해 보면 분명히 신교와 구교가 일반 국가와 문화에 주는 영향이 어떤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 분명히 기억해야 될 것은 자유를 존 귀히 여기는 이 민주주의 사상과 민주주의 정치는 신교를 중심한 나라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점입니다. 오늘날까지 가만 볼지라도 이 민주주의 제도가 잘 운행되는 나라는 신교가 절대 다수인 나라에 이 제도가 잘 운영됩니다. 남아메리카 여러 나라에도 민주주의 제도는 가졌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언제든지 독재자가 나타나서 항상 어지럽게 됩니다. 구교들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볼 때에 우리 한국에 있어서 신교도의 사명이 얼마나 중대하다고 하는 것을 꼭 깨달아 알아야 되겠습니다. 과연 우리 한국이 이 앞으로 자유가 있는 건전한 민주주의로 발전하려고 하면 어떠한 종교가 우리 민족의 머리를 지배해야 되겠는지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북에서 오신 분이 많습니다. 우리가 아는 우리 나라의 제일 긴 강을 압록강이라고 합니다. 압록강은 백두산 상봉 천지라고 하는 못에서 발원됩니다. 그 압록강 물이 천지에서 처음 내려 올 때는 물이 맑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신의주에 오래 살았는데 신의주에서 그 강을 보면 더럽기가 한이 없습니다.
왜 종교 개혁이 일어났어요? 천지와 같이 원지에 돌아가서 신약의 본원지에 돌아가서 맑은 순수한 복음의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종교 개혁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귀한 유전을 감사히 생각해서 이 유전을 바로 지키도록 우리가 힘써야 되겠습니다.
(1960년 10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