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깨어 기도하라 (마태복음26:36-46)

새벽지기1 2018. 1. 26. 07:07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마26:41)

때는 깊은 밤, 고요한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께서 홀로 피땀을 흘리시면서 기도하시다가 제자들에게 주신 권면의 말씀이올시다. 그러므로 이는 보통의 권면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분석해 보면 세 가지 권면이 포함되었습니다. 첫째는 깨어 있으라. 둘째는 기도하라. 셋째는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라. 이 세 가지는 서로 연관성이 있습니다. 깨어 있어야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여야 시험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 제자들은 이 권면을 깊이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깨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고로 그들은 기도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는 다 시험에 들게 된 것입니다. 이것도 우리에게 큰 전감(前鑑)이 되는 사실인 줄 생각합니다.


여러분, 당시의 환경을 잠깐만 사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세상 사람들의 죄악을 홀로 지시고 피땀을 흘리면서 주무시지 않으시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나 그 가장 가깝다고 하는 제자들은 이런 권면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잠을 잔 것입니다. 또한 그 때에 원수들은 깨어 있습니다. 그날 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대 제사장들, 서기관들, 그들 도당 가운데 한 사람도 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만은 그냥 잔 것입니다. 수제자라고 일컬음을 받는 베드로까지도 그냥 졸았습니다. 제자 중에 잠을 자지 아니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는 가룟 유다요, 원수의 지경에 가담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형편을 돌이켜 생각할 때에 그 때에 우리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민망하셨을 것을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는 어떠합니까? 분명히 아는 것은 하나도 자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있는 주님의 제자라는 이름을 듣는 우리의 형편은 어떠합니까? 깊이 생각할 만한 일이올시다.
또한 그날 밤에 주님의 원수들은 자지 않을뿐더러 졸지도 아니하였습니다. 그들은 부지런히 일하였습니다. 예수를 잡아죽일 모든 모략과 계획을 물샐 틈 없이 준비하였습니다. 가룟 유다를 통해서 예수 님 계신 곳을 확인하는 일, 관속과 무리들을 동원하는 일, 횃불과 무기를 정비하는 일, 예수를 잡은 후에 어떻게 심문할 조건들, 거짓 증인을 미리 맡기는 일, 빌라도 에게 넘겨주어야 사형할 수 있다고 하는 모든 일, 어떠한 증거를 가지고야 정죄(定罪)를 할 수 있다고 하는 모든 모략들을 짜느라고, 그들은 자지 않고 밤새도록 일하였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잤을 뿐더러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기도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그날 밤을 잠으로 지낸 것입니다. 이런 사정을 생각할 때, 우리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외로웠을 것을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형편은 어떠합니까? 우리의 원수는 자지 아니하고 부지런히 일하는데, 오늘날 한국 교계의 지도자들, 교회의 목사, 장로, 집사, 권찰(勸察), 신자들은 얼마나 부지런히 일합니까? 깊이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제자들이 잠을 잔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기하던 위기는 오고야 말았습니다. 악한 무리들은 예수를 잡으려고 겟세마네 동산 앞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예수는 그들에게 붙잡혀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졸다가 일어난 제자들, 눈을 비비면서 따라오던 제자들은 이런 가운데 어찌할 줄 모르고 허둥지둥하다가 마지막에는 하나씩 둘씩 뿔뿔이 다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목자를 치매 양이 흩어졌다고 하는 말씀과 같이 제자들은 다 이산되어 버렸습니다.
수제자라는 이름을 듣던 베드로조차도 예수 님의 눈이 보이는 그 대 제사장의 아문 뜰 안에서 예수를 세 번씩 모른다고 부인하였고 마지막에는 저주까지 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기도하라고 할 때나 깨어 있으라고 할 때에, 개어 있지 아니하고 기도하지 않은 제자들은 다 시험에 들고 말았습니다. 예수 님의 간절한 권면을 무시한 제자들은 결국 이 꼭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늙고 간악한 증경(曾經) 대 제사장이었던 안나스 앞에 서서 심문을 받게 됩니다. 요한 복음 18장 19절에 보면 안나스가 제일 먼저 물은 말이 예수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심문하였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자기 교훈에 대해서는 곧 대답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회당과 성전에서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가르친 사실을 예수님의 교훈을 알기 원하면 그 사람들에게 물어 보아도 알 것이라고 담대히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성경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 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나도 없습니다. 주석자들은 다음과 같이 추측합니다. 교훈에 대해서는 물론 대답할 수 있었지마는 그 당시 자기 제자들의 형편이 그러한데 제자들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라고. 가룟 유다 는 그 편에 가담했습니다. 뿔뿔이 다 헤어졌습니다. 심지어 수제자라 하는 베드로도 그 심문을 방금 하는 그 때에 마당에서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제자들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주석 자들은 추측합니다. 예수님은 일생 동안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당한 일이 없건마는, 이날 밤에,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하여 질문을 받을 때에는 아무 말도 못하시고 유구무언으로 그 자리에 서서 처음으로 부끄러움을 당하였다고 말합니다. 왜 그랬습니까? 시험에 든 제자들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다만 옛날 이야기 뿐 아닙니다. 교회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 예수 그리스도의 생활에 대하여 어느 누구라도 감히 비난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끄러운 일을 당한다고 하시면, 오직 예수를 따른다고 하는 제자들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어떠합니까? 오늘날 한국교계의 소위 지도자들 때문에, 한국신자들 때문에, 한국 교계에서 되는 일 때문에 주님의 얼굴이 붉어지는 일은 없습니까?
그런고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간곡히 권면하십니다.『깨어 있어 기도하여 시험에 들지 않게 하라.』믿는 사람들이 시험에 들면 우리 주님께 부끄러움이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간절히 권면하십니다.
왜 깨어 있으라고 권면하십니까? 지금도 말했듯이 우리는 자고 있지만 원수는 자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의 대적, 악한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밤낮을 헤아리지 않고 삼킬 자를 찾을 다닙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등한하거나 방심할 때에 갑자기 우리에게 시험을 던집니다. 베드로도 그날 저녁에 갑자기 시험을 당했습니다. 베드로가 슬그머니 대 제사장 아문에 들어가서 어두컴컴한 밤에 불이나 쪼이면서 예수님 동정이나 살피겠다는 생각이었지, 갑자기 누가 와서 그에게 갈릴리 사람 아니냐 고 물어보리라 기대했겠습니까? 갑자기 계집종이 나타나서 살펴보더니『너도 갈릴리 사람 아니냐?』그만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세 번씩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왜 깨어 있으라고 합니까? 악한 마귀는 언제든지 우리가 야할 때에 우리에게 시험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광양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실 때에 심히 주리셨습니다. 그 때에 나타나서『네가 하나님의 아들 이어든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라.』주릴 때에 먹는 것으로 시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난할 때에 이 방면으로 들어오는 시험을 경계해야 됩니다. 에서가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었다고 미련한 놈이라고 우리가 비웃습니다. 그러나 에서에게 물어보면 그 사정이 다를 겁니다.
『내가 그 날 종일토록 산에 가서 사냥하여 피곤하고 배가 심히 고팠습니다. 들어와 보니까 동생 야곱이 팥죽을 아주 김이 무럭무럭 나게 잘 쑤어 놓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베고픈 김에 붉은 팥죽 한 그릇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깜찍한 야곱이 팥죽을 줄 테니까 장자의 명문을 달라고 했습니다. 이러는 바람에 지금 배가 고파 죽겠는데 장자의 명분이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에 팥죽이나 갖다 달라고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되어서 시험에 빠졌습니다.』
아마 에서에게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왜 깨어 있으라고 합니까? 악한 마귀는 우리의 약한 틈을 타서 우리가 약할 때에 우리에게 시험합니다 


깨어 있으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정신을 차리라고 하는 뜻입니다. 우리가 다 눈을 떴다고 정신차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모두 눈을 떴다고 정신차려서 제 말 다 듣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세계적으로 나타난 통계를 보면 흔히 공장에서 사고가 일어나는데 아침에 시작한 다음부터 두 시간 동안에 사고 나는 비례가 제일 높다고 합니다. 왜 그러냐? 사람들이 깨어서 아침에 오기는 왔지마는 한 두 시간 동안은 채 깨지 못한다고 합니다.
정신차려서 내가 사는 시대와 내가 사는 환경을 자세히 살펴서, 어디 위험한 일이 있고 어떠한 원수가 나를 방해하려고 하는지 자세히 살피면서 조심해서 살라고 하는 말입니다. 우리 남한에서 이만큼이라도 평화를 누리며 살게 되는 것은 우리의 국군 장병들이 자지 않고 살피면서 38선을 지키는 덕분입니다. 우리의 자유 진영이 이만큼이라도 현상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눈으로 보이지 아니하지마는 전 세계를 통한 레이더망을 통해서 적국이 어떠한 행동을 하는 것, 어디에 어떤 비행기가 떠간다고 하는 것을 일일이 살피는 까닭입니다. 살피며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 사람은 다른 데만 살피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도 살핍니다. 내 마음이 어떠한 자리에 있는가? 나의 약점이 어디에 있는가? 나의 허한 데가 어디에 있는가? 어떤 사람은 정직도 하고 부지런도 하고 열심 도 있고 다 좋습니다. 가러나 전의 삼손처럼 특별히 정욕의 약점이 있어서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자다가 망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면에 어떤 사람은 그런데는 전혀 죄에 빠지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방면에 약점이 있습니다. 혹은 아간 처럼 물질의 약점이 있습니다. 돈 냄새 나면 그만 끌려 들어가서 시험에 빠지고 맙니다. 또 어떤 사람은 요나 처럼 자기의 편견과 고집을 가지고 이대로만 나가려고 애쓰다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이러다가 큰 풍랑을 만나서 고기 뱃속에 들어가는 것처럼 큰 곤란을 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약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 보기에는 저 사람이야 무슨 시험이 있을까 하지마는 자세히 살펴보면 약점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그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내 약점을 미리 알고 그와 같은 방면에 시험을 받지 아니하도록 미리 조심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깨어 있는 사람은 기도합니다. 그날 저녁에 제자들이 깨어만 있었다고 하면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졸은 까닭으로 기도를 못했습니다. 기도는 문자 그대로 우리 성도의 호흡이올시다. 숨결이올시다. 숨쉬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올시다. 우리 신앙 생활에 있어서 기도 생활이 끊어지면 벌써 그 영혼은 죽은 영혼이올시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야 포도나무로부터 오는 생명의 진액(津液)을 받아서 살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연결되고 우리들과 연결이 되어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생명수를 내가 받고 생명 양식을 내가 받아서 우리의 영혼이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은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 성신의 지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당할 때 어느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뜻인가에 대해 작정하기 어려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우리가 고요히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지도를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만 내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욕과 악한 마귀를 이기고, 세상의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기도를 게을리 하는 것은 결국은 내가 스스로 깨어 있다고 하지마는 조는 까닭입니다.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우리가 사실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양해하고 삽니까? 우리의 원수가 얼마나 많으며, 우리의 원수가 얼마나 자지 않고 일한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삽니까? 우리가 사실 이 세계 정세를 그대로 목도하고 삽니까? 물론 우리가 신문지를 통해서 압니다. 대체로 압니다.


우리가 신문지를 볼 때에 주의할 일이 몇 가지가 있는 줄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세계 평화가 있다고 하지마는 사실 세계 평화는 아직 없습니다. 우리 한국은 휴전뿐입니다. 온 세계가 냉전은 그대로 계속됩니다. 그런데 금년에 들어서 냉전의 형편이 어떻게 되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며 신물을 보십니까? 중앙 아메리카에 작은 나라 하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가 작지마는 위치로 보아서 대단히 중요한 자리에 있습니다. 그 나라는 금년 중에 지금 현상으로 보아서는 우리 자유 진영에서 아주 떠났습니다. 공산 진영이 아주 되고만 모양입니다. 쿠바라고 하는 나라가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동남아에서도 이상이 생깁니다. 동남아 반도에 아주 중요한 지위에 있는 라오스라고 하는 나라는 얼마 전에 군대 가운데 젊은 장교 몇 사람이 붉은 사상을 가지고 혁명을 일으킨 이후에 혼란에 빠지게 되었고, 지금 중립 정부가 섰다고 하지마는 이 앞으로 상태가 어떻게 될는지 우리가 크게 염려되는 바입니다.
지금 신문지상을 통해서 아프리카 콩고가 얼마나 혼란하여지고, 그 일 때문에 유엔이 몇 번 모이고, 그 일 때문에 세계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 배후에 적색 마수가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콩고뿐인 줄 압니까? 온 아프리카 전역을 통해서 이와 같은 마수가 움직이고 있어서 이 앞으로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들의 동향을 우리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보지 아니하면 아니 될 줄 압니다.


우리 한국과 가장 인접한 관계가 있는 일본은 어떻습니까? 지난여름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한국에 와서는 기쁘게 환영을 받았는데 왜 일본에는 오지 못했습니까? 그렇게 안 될 줄 믿지마는 만일 일본이 잘못된 길로 오도가 되어서 가령 중립 노선을 걷는다고 하면 그 영향이 우리 남한에 어떻게 되겠는가? 만일 그렇게 된다고 하면 미국의 군사 기지를 허락하지 않게 될 터이니 남한 방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겠느냐? 일본의 동향이 어떻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 남한과 절대의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흐루시초프는 자기 자신이 유엔 총회에 나타나서 그 오만한 태도와 난폭한 행동을 자행하다가 결국은 망신만 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돌아간 후에 어떤 폭언을 한 것은 여러분이 기억하실 줄 압니다. 유엔이 중공을 승인하지 않으며 가입시키지 아니하니 이제 극동의 위기가 조성될 것이라 오해하지 맙시다. 물론 자유와 정의가 최후의 승리를 얻습니다. 천리요, 그건 사실이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자유가 이깁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제2차 대전의 경험을 우리는 잊지 아니합니다. 6·25때도 그 사람들이 서울에 먼저 들어왔습니다. 최후의 승리는 의심이 없다고 하지마는 만일 이 앞으로 세계 위기가 반드시 오고 그렇게 될 때에 이 악한 세력이 일시라도 세계의 많은 부분을 점령한다고 하면, 그 때에 자유 국민과 우리 기독교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이런 모든 정세를 실지로 깨닫고 국가나 교회를 위해서 일한다고 하는 사람이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됩니다.
이번 목사 수양회 할 때에 피얼스 박사가 오셔서, 보통 신문에 나타나지 아니하는 사실, 특별히 쿠바에서 된 일을 우리에게 말해 준 적이 있습니다. 서인도 제도에 중국 사람이 상당히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쿠바에도 중국 사람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과히 많지 않았는데 특히 1948년 이후로 중공군이 중국 전토(全土)를 점령하면서부터 중국 본토의 피난민들이 쿠바에 와서 사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는 믿는 사람의 수가 많다고 합니다. 자연히 그럴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 쿠바가 중공을 승인합니다. 특별히 중공에서 사람을 데려다가 쿠바를 전폭적으로 적화 계획을 한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이 와서는 미리 다 조사해서 누가 카스트로 정부를 지지하며 반대하는지 조사하는데, 제일 먼저 중국 사람부터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국 사람 가운데 이 적색 정부를 지지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모두 색출해서 중국 본토로 보내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중국 본토에서 피난해 갔던 사람들이, 특별히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쿠바의 신자들이 밤낮 자지 않고, 눈물로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대는 언제, 어느 곳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직면하고 이것을 분명히 깨닫고, 깨어서 여기에 대비하면서 살아가야 될 것입니다. 깬 사람은 잠꼬대하는 법이 없습니다. 꿈속에서 잠깐 있는 일, 적은 일 때문에 싸움하지 않습니다. 큰 원수가 있는데 작은 원수를 맺지 않습니다. 깬 사람은 기도합니다.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내 가정을 위해서, 내 영혼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기도합니까? 혼자만 기도할 것이 아닙니다. 모여서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구역에는 구역끼리 모여서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가정에서는 가족끼리 모여서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제일 기도하기 좋은 시간은 새벽입니다. 새벽 기도회에 여러분 가운데 몇 분이나 나오십니까? 새벽 기도회에 참여 못하는 것은 늦잠 때문에 못합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깨어서 기도합시다.
깨어 있는 사람은 자기의 책임을 합니다. 자기의 책임을 우선 감당합니다. 말일 우리가 다 깨었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남한에 복음을 전파하는 문을 크게 열어 놓았을 때에, 무엇보다도 이 기회를 이용해서 한 마음 한 뜻으로 복음을 전파합시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때를 당해서 자기 말고 깨라고 간절히 권면하고 격려합니다. 여러분 다 깨어 있습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집에 귀한 아들이 하나 있는데 다른 것은 다 좋아요. 그런데 이 사람의 나쁜 버릇은 늦잠 자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일어나라 해도, 안 일어나고 늦잠을 잡니다. 그래서 한 번은 너무 답답해서 그 이웃에 가서, 좀 불량한 사람이 그 동리에 있는데 그 사람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그거 제가 내일 아침에 깨워 드리지요.』『그렇게 하겠나』『그렇게 하겠습니다.』『그럼, 그렇게 해보게.』
그 이튿날 아침에도 해가 중 낮이 되었는데 안 일어납니다. 그 불량한 사람이 왔습니다.『일어났습니까?』『아직 안 일어났어.』그거 내 깨우리다. 물통 하나 있습니까? 물통을 가지고 우물에 나가더니 찬물을 가득 받아 가지고 들어 와서 문을 활짝 열더니 다짜고짜로 찬물을 얼굴에 쫙 끼얹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곤하게 잠자던 사람이 후닥닥 일어나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여러 번 권면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파수꾼을 통해서 우리 믿는 사람에게도 격려하고 안 믿는 사람에게도 경고하며, 여러 번 경고합니다. 깨어서 기도하면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아니하면 저는 무서워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통을 들고 와서 전부 물을 끼얹을지 누가 압니까? 그런데 그 물통은 공산당일지 어떻게 압니까?『개어 있어 기도하라.』
(1960년 10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