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오직 예수 (마태복음17:1-8)

새벽지기1 2018. 1. 22. 06:46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마17:8)


오늘 아침은 변화산상에서 된 기록을 읽었습니다. 이 기록을 읽을 때에 몇 가지 주의할 점이 있는 줄 생각합니다. 첫째는 이 변화산상에서 된 일은 그리스도의 본체의 영광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본체의 영광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그 얼굴이 햇빛같이 빛났고 그의 입으셨던 옷도 역시 광채가 나게 된 것입니다.
또한 둘째로는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와 서로 담화를 하셨는데 특별히 누가복음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도의 장차 죽으실 일에 대하여 말씀을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기록을 통해서 어떻게 모세가 하늘 나라에 살아 계시며 엘리야가 지금까지도 살아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을뿐더러 특별히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율법과 예선서의 완성을 의미하는 그 뜻을 여기에서 간취(看取)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모세의 모든 율법, 엘리야의 모든 예언, 그밖에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은 결국 인류의 구원을 위하는 것인데 이 모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이르러서 완성이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와 같은 깊은 뜻을 물론 알지 못하고 그 세 분을 그냥 변화산상에서 모시고 있기를 원해서 이런 말씀을 한 것입니다.『주여 장막 셋을 지어서 하나는 주님께서 계시게 하고, 하나는 모세가 계시게 하고, 하나는 엘리야가 계시게 하면 좋겠습니다.』이런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을 할 때에 돌연히 빛난 구름이 내려 와서 모든 사람을 가리며 그 빛난 구름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이 직접 들린 것입니다.『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들은 저희 말을 들으라.』그리스도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런 말이 들린 때에 제자들은 너무 두렵고 놀라서 땅에 엎드려져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얼마 후에 예수님께서 일어나라고 하실 때에 제자들이 일어나서 눈을 들고 보니 오직 예수 한 분밖에는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아니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는 모세와 엘리야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오직 예수만 바라보라고 하는 뜻인 줄 생각합니다.「오직 예수」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 아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예수만 하나님의 참된 계시자입니다. 히브리서 1장 1절을 보면『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예수는 하나님의 최후의 말씀이올시다. 예수는 하나님께서 최후에 그 자신이 친히 하신 그 말씀이올시다. 자기를 예수를 통하여 친히 나타내셨습니다.
요한 복음 1장 1절에는 이렇게 기록된 것을 여러분께서 기억하실 줄 생각합니다.『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그리고 조금 내려가서 14절에는『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예수 그리스도는 곧 이 말씀이 육신을 입은 분이올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시기를『나는 곧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으리라.』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계속해서 그는 친히 말씀하시기를『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너희가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하느냐?』


오직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얼굴을 통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고, 예수님의 음성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예수님의 성품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고, 예수님의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활을 우리가 친히 목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은 그 자체가 진리요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올시다. 몰론 모세와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들도 여러 모양으로 부분적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주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다 밤하늘에 별과 같습니다. 아침의 햇빛과 같은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후에는 밤의 별들은 나타나지는 아니합니다. 보이지 아니합니다. 오직 예수만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인간의 지혜를 구하려면 세상 사람 가운데 지혜가 많다고 하는 철학자들에게 가서 구하실 것입니다. 혹은 과학적 지식이나 기술을 배우려고 하면 과학자나 기술자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중심에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아시기를 원하십니까? 오직 예수님께 나올 것입니다. 예수만이 하나님의 참된 완전한 계시자입니다.
둘째로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대속(代贖)하신 우리의 구주는 오직 예수뿐입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에 예수를 모든 사람들에게 소개하면서 외친 말씀이 세상 사람들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는 말씀은 장차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세상 사람들의 죄를 십자가에서 대신 지고 고난받으실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시기를『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오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저려 함이니라.』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써 자기의 목숨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고 스스로 증거 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깊은 사실을 로마서에 이런 말로 우리에게 기록하여 주었습니다.『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대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들이 되었느니라.』그는 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속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주는 이는 물론 많습니다. 좋은 도덕적 교화를 우리에게 주는 이도 물론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나 지식이나 철학 사상을 소개하여 주는 이도 물론 많습니다. 아름다운 생활로써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 주는 이도 물론 많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하십시다. 나를 위하여 대신 죽고 나를 죄악 가운데서 건져 주신 이는 오직 예수뿐입니다. 세상의 지식을 구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죄 사함을 받기를 원하고 내 영혼이 구원을 얻기를 원하면 오직 예수, 우리 주님 앞에 나오는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주신 구세주인 것입니다.


셋째로 생각해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현재에도 우리와 동행하시고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현재에도 우리를 도와주시는 이는 오직 예수뿐입니다. 유교에서는 물론 지금까지도 자기의 교주가 되는 공자의 무덤을 자랑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회회교 사람들은 마호멧의 무덤을 물론 자랑합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도 석가의 무덤을 지금까지 자랑합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는 자랑할 무덤은 없습니다. 무덤이 있다고 하지마는 그 무덤은 빈 무덤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분부사시면서 계속해서 하신 말씀이『볼지어다 내가 이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이렇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3장 20절에 보면『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고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우리의 마음 문을 열고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마음속에 오셔서 우리와 같이 계시겠다고 하는 말씀이올시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영적 체험을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이와 같이 말씀했습니다.『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내 자신은 그리스도와 같이 못 박힌 까닭으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실상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속에 살아 계시는 것을 간증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체험을 빌빕보서 4장 13절에는 이와 같이 말씀했습니다.『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할 것이 없다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사람의 체험을 이와 같이 솔직히 고백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사도 바울에게만 사실인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도들의 생활이 그러했습니다. 세기를 통해서 참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 계셔서 그들과 같이 계시고 그들을 도와주신 것입니다. 마치 예수 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일찍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같이 걸어가시듯이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믿는 성도들과 동행하면서 우리 믿는 사람들을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약할 때에는 지금도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가 외로울 때에는 지금도 우리의 친구가 되십니다. 우리가 병날 때에도 우리에게 권능을 베풀어주십니다. 우리가 시험 당할 때에는 우리고 하여금 바른 길을 찾게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슬픈 일을 당할 때에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십니다. 근심과 걱정에 싸일 때가 있지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곧 우리의 마음속에 기쁨 화평으로 대신하여 주는 것입니다. 이 험악한 인생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참된 친구가 되셔서 언제든지 동행하여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밖에는 다른 분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친히 외쳤습니다.『무릇 목마른 자는 네게 와서 마시라.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목마르지 아니할 터이요 그 속에서 생수가 되어 영생토록 솟아나리라.』 이 메마른 광야 길을 걸어가는 모든 인생들에게 계속해서 생명수를 공급하여 주시는 소망은 오직 예수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말씀 더 드린다고 하면 최후의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뿐입니다. 인생의 길이 대체로 외롭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길은 더욱 외롭습니다. 여기에는 친구가 쓸데없습니다. 여기에는 부모가 쓸데없습니다. 이 때에는 세상에서 가지던 모든 소망은 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때에도 오직 우리에게 최후의 소망을 주시는 분은 예수뿐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셨습니다.『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으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있을 곳을 예비하리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에 영접하여 주리라.』
제가 어떤 책을 보니 스위스에 있는 유럽의 제일 높다고 하는 알프스 산 어떤 높은 봉우리에 흰 대리석으로 아름답게 십자가를 해 세웠다고 합니다. 그 대리석 십자가 위에는「오직 예수」란 글자를 새겼다고 합니다. 그 대리석 십자가를 어떻게 세우게 되었느냐? 일찍이 어떤 분이 자기의 가족을 데리고 스위스에 피서를 왔다고 합니다. 어떤 날 그 분이 자기 사랑하는 딸을 데리고 알프스 어떤 높은 봉우리에 등산을 하였습니다. 높은 산꼭대기를 조심조심해서 올라갔지마는 그만 실수해서 그 사랑하는 딸이 발이 미끄러져서 높은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결국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분의 슬픔은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한 여름 서늘한 스위스에서 평안히 지내려고 피서 왔다가 이와 같은 참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분은 돈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돈이 위로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이 분은 지위도 상당한 분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지위도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 때에 그이에게 참된 위로를 주신 분은 예수밖에 없는 것을 그 분이 절실히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리고서는 그 산봉우리 위에 큰 대리석으로 십자가를 세우고 구기가 새기기를「오직 예수」우리에게 최후의 소망과 위로를 주실 분은 오직 예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직 예수만 우리는 의지합니다. 돈을 의지하지 마십시다. 세력을 의지하지 마십시다. 친척도 의지하지 마십시다. 오직 예수만 믿고 의지합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봅시다. 베드로처럼 세상 물결을 바라보지 맙시다. 세상의 어떤 것도 바라보지 맙시다. 예수만 바라봅시다. 세상의 다른 것을 따라가지 맙시다. 오직 예수만 따라가십시다. 이것은 개인에게 있어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국가도 역시 그런 줄 압니다.


우리는 바로 어제 새 공화국의 수립을 기쁜 마음으로 경축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우리가 경축만 한다고 나라가 금방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 흔히 보면 민심은 더욱 해이해지고 사회 질서는 더욱 문란해집니다. 국민의 대부분은 불안과 공포 가운데 싸여서 살고 있습니다. 도처에 분규가 있고, 도처에 사고가 생기고, 무슨 농성 투쟁이니, 데모, 심지어 기차까지 데모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무엇이 또 어느 날 일어나려는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각계 각층에 혼란이 그칠 줄을 모릅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 혼란 가운데 공통되는 것이 한 가지는 있습니다. 그것은 저마다 이 새나라가 되었으니 자기의 권리를 찾자고 하는 사상입니다. 내 권리, 내 이익, 내 그룹을 위해서 투쟁을 합니다. 상이 군인은 상이 군인의 권익을 위해서 흔히 폭력 투쟁을 합니다. 정당은 내 정당, 내 정파를 위해서 흔히 모략 투쟁을 합니다. 국민 전체, 국가 전체의 복리를 위해서 투쟁하는 이는 매우 드뭅니다. 나만 생각합니다.
마음이 좀 변해야 되겠습니다.『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오, 섬기려 오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정신으로 변하여야 새 나라에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밀 알 한 알이 되어서 땅에 떨어지려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이는 아무 것도 될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에 오직 예수만이 우리 나라에도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1960년 10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