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잃은 보배를 찾자 (누가복음15:1-10)

새벽지기1 2018. 1. 17. 07:12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눅15:8-9)

오늘 아침 읽은 누가복음 15장에는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비유 셋이 있습니다. 첫째는 잃은 양의 비유, 둘째는 잃은 돈의 비유, 셋째는 잃은 아들의 비유올시다.
이 세 개의 비유는 공통된 점이 있습니다. 공통된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신다고 하는 진리올시다. 스스로 의롭다 하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죄인을 사랑하신다는 그 사실이올시다.
둘째로는 하나님이 모든 죄인을 잃은 자로 보시고 그들을 찾으신다고 하는 진리입니다. 죄인을 반역자나 범법자로 보는 것보다도 잃은 자로 보시고 잃은 자를 찾으시기를 힘쓴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다른 종교는 사람이 그의 신을 찾는 종교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이 잃은 사람을 찾는 종교인 것입니다.
셋째는 인간의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노력이나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라고 하는 기독교의 중심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이상 몇 가지는 다 기독교의 본질적인 중심의 사상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중심 한 신본주의(神本主義)의 종교인 것입니다. 그렇지마는 이 세 가지 비유를 생각할 때에는 이 세 가지가 각각 조금씩 다른 면이 없이 않아 있습니다. 사실 똑같은 것만 가르친다고 하면 세 가지로 비유할 것이 있겠습니까? 이 세 가지 비유가 공통적인 중심 되는 지리를 가르치는 동시에 각각 다른 면이 있습니다. 가령 잃은 양의 비유로 말하면 인간을 구원하시는 역사에 있어서 특별히 성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목자가 잃은 양을 찾기 위해서 산과 들에 헤매는 모습은 꼭 예수님께서 잃은 죄인을 찾기 위해서 하늘 나라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거치른 세상에 오시고 죄인과 세리의 친구가 되시고 마지막에 십자가에 달리시는 여실한 모습을 이 비유 가운데서 특별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둘째로 잃은 돈의 비유에서는 특별히 성신님께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곧 교회를 통해서 역사 하시는 모든 그 활동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셋째로 탕자의 비유 혹은 잃은 아들의 비유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으시는 잃은 죄인들, 성신님께서 또한 찾으시는 잃은 죄인들이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될 때에, 아버지께서는 그들을 기다리고 계시다가 기뻐서 영접하시는 특별히 상위일체 가운데 성부의 기뻐하시는 그 모습, 즐거워 환영하시는 그 모습을 이 비유 가운데서 우리는 찾아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세 비유를 다 생각할 수는 없고 이 시간에는 특별히 둘째 비유, 잃은 돈을 찾는 이 비유를 중심해서 생각함으로 하나님께서 오늘 아침 우리에게 각각 말씀하여 주시고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어떤 여자입니다. 아마 가난한 여자 같습니다. 드라크마 열 닢이 있습니다. 어려운 말 내어버리고 전의 변역대로 은전 열 닢을 아주 귀하게 간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 아침 다시 세어 보니까 그 가운데 한 닢이 없어졌습니다. 이 여자는 크게 놀랐습니다. 사방을 살펴도 보이지 아니합니다. 그러니까 불을 켜고 방을 쓸면서 이 잃은 은전 닢을 찾을 때까지 힘을 써서 결국은 찾고야 말았습니다. 이 은전을 찾게 되니까 이 여자는 너무 기뻐서 인근의 사람들까지 청해서 같이 즐거워하였다는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보면 인간의 영혼을 은전에 비유해서 가르치셨습니다. 은은 옛날에는 황제의 화상이 박히어 있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영혼을 이 귀한 은전에 비교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의 영혼 가운데는 심령 위에 천지의 주재가 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 박히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심령이야말로 얼마나 귀한 보배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하늘의 별이 귀하다. 바다의 진주가 귀하다. 여러 가지 귀한 물건을 많이 말합니다. 그러나 이 우주에 제일 귀한 것은 인간의 영혼이올시다. 예수님께서는 한 생명이 온 천하보다도 더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물주의적 인간관과 기독교적 인간관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심령이야말로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십니다. 이것이 성경의 교훈이요,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인간에 대하여 가르쳐 주시는 진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귀한 은전이 잃어버림을 당하였습니다. 이렇듯 귀한 보배가 어두운 구석 티끌 가운데 묻혔습니다. 옥이 진토에 버림을 당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와 같이 귀한 인간의 영혼이 잃어버림을 당하였습니다. 티끌 가운데 쌓인 영혼이 많습니다. 무지한 사상의 티끌 정욕의 티끌, 물욕의 티끌, 허영의 티끌 오만과 시기의 티끌 음란과 부정의 티끌 권세욕의 티끌, 이와 같은 부정의 티끌 가운데 그만 잃어버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은전이 아무리 귀하지마는 이렇게 잃어버린 바 되었으니 그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옥(玉)석(石)의 분간이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이 아무리 귀하지마는 이렇게 죄악에 묻히고 말았으니 인간의 본래의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흐리어지고 말았습니다. 쓸데없게 되었습니다. 무용의 장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귀하게 역할 할 이 귀한 영혼이 아무 소용이 없는 존재로 변하고 말게 되었습니다. 그저 무감각인 대로 그저 무의식 상태로 티끌 에 쌓였습니다. 날이 갈수록 더 더러워집니다. 날이 갈수록 더 더러운 것이 더 묻습니다. 사면으로 녹이 습니다. 그 영혼이 점점 썩어지는 자리에 들어갑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아프면서도 아픈 줄 모르는 중한 환자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전신을 잃고도 정신을 잃은 줄 모르는 정신병자처럼, 자기가 말할 수 없는 죄악에 빠져 있으면서도 죄악에 빠져 있는 것을 알 수 없는 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럼으로써 성경에 기록한 대로 배로 하나님을 감고 부끄러움으로 영광을 삼는 사람이 되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말대로 죄와 허물로 그 영혼이 아주 죽은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그 귀한 보배, 이 우주에 제일 값 가는 인간의 심령이 이와 같이 가련한 자리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아주 잃어졌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이런 참혹한 형편이 타락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더 찾아볼 수 없는 불쌍한 영혼이 되고만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잃어진 영혼이 오늘날 우리 가정에, 우리 사회에, 우리 민족 가운데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 이와 같이 잃어진 은전이 무슨 소망이 있을까요? 그저 보기에는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소망이 한 가지는 있습니다. 그것은 은전이 이렇게 잃어버림을 당하였지마는 이 은전의 주인이 있습니다. 이 은전의 주인 되는 여자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이와 같은 쓸데없는 심령은 잊어버리지마는 이 은전의 주인 되시는 이 여자는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이 은전을 생각했습니다.『아, 이것 하나 없어졌다. 어딜 갔을까?『안타까워합니다.』내가 아무래도 이것을 찾아야지.』찾기를 시작합니다.


여러분, 이미 말씀하였지마는 여기 여자는 성신께서 같이 일하시는 하나님의 교회를 가르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가운데는 성신께서 계셔서 성신의 역사를 하시는 기관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성신의 시대입니다. 이와 같이 잃어버리고 버림받은 영혼에 한 가지 소망은 이 영혼의 주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역혼의 주인 되시는 성신이 계십니다. 이 영혼의 주인 되시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이 여자는 이 잃어버린 돈을 찾기 위해서 일하던 다른 것을 다 그만 두고 잃어버린 돈을 찾기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여자니까 살림하는 여자인지라 여러 가지 바쁜 일도 많은 줄 압니다. 옷을 만들 일도 있겠고, 밥을 지을 일도 있겠고, 거리에 나가는 일도 있겠고, 여러 가지 할 일이 많지마는 이 잃은 돈을 발견하기 위해서 이 여자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이 잃은 돈만 생각하고 다른 것은 다 제쳐놓고 찾기를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성신 받은 하나님의 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할 일이 많은 줄 압니다. 자선 사업도 귀한 일입니다. 교육사업도 귀한 일입니다. 사회 개량사업도 귀한 일입니다. 여러 가지로 정치에 참여해서 나라를 세우는 것도 바로 하려고 하는 것도 귀합니다. 그러나 성신 받은 교회의 진정한 모습은 먼저 잃은 돈을 찾기 위해서 힘쓸 것입니다. 이 잃은 인간의 심령, 잃은 보배를 찾기 위해서 힘쓸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보세요. 이 여자가 다른 일 다 제쳐놓고 이 잃은 돈을 찾기 위해서 힘을 씁니다. 여기 성경에 보니 등불을 켰다고 그랬습니다. 옛날 유대 사람의 집은 창이 많이 못해서 아마 어두웠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사람의 집도 새로 짓는 집은 문을 많이 내서 밝지마는 촌으로 가든지, 옛날 지은 집을 보면 낮에도 어두워서 불을 켜지 아니하면 구석에는 잘 보이지 아니합니다. 아마 이 여자가 그런 집에 살던 모양입니다. 그래서는 등불을 켜고 구석구석 다니면서 비추어 보면서 이 잃은 돈을 찾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이 등불을 켠다고 하는 말은 무슨 말인지 압니까? 이 여자가 교회라고 하면 이 여자의 등불은 무엇을 가리켰는지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산 위에 세운 성이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등경(燈鏡) 위에 두나니 이것은 온 집안을 비추이기 위함이라.』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성신께서 우리를 구원해서 우리 심령에 불을 붙여서 우리로 하여금 빛을 삼은 것은 무슨 목적인지 압니까? 잃은 보배를 찾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빛을 삼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기의 등불은 우리 영락교회 하면 영락교회에서 참으로 은혜 받은 여러분 하나 하나를 가리켜서 등불에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 등불은 오늘날의 전등을 가리킨 것은 아닙니다. 옛날 기름 방 등에 켜던 조그마한 등불입니다. 아무리 우리의 등불이 적지마는 내가 내 빛을 발한다고 하면 내 근방은 비칠 수가 있습니다.
잃은 보배를 찾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 교회의 교인 하나 하나가 참 빛이 되어서 자기 있는 곳에서 빛을 비추어서 자기 주위의 어두운 곳을 밝혀야 잃은 보배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보세요. 이렇게 등불을 켤뿐더러 이 여자가 방을 쓸었다고 그랬습니다. 방을 정돈하며 더럽고 어지러운 것을 쓸어내며 방을 깨끗이 했습니다. 이렇게 해야 물론 잃은 돈을 찾을 수 있지 아니합니까? 이 방을 쓴다고 하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교회를 깨끗하게 한다고 하는 말인 줄 압니다. 교회가 깨끗해야, 교회가 성결해야, 교회가 화평해야, 교회가 정돈되어야, 잃은 보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너무 어지럽고 너무 깨끗지 못해서 잃은 돈을 찾기는커녕 찾았던 돈도 잃을까 두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신의 빗자루로써 우리 한국교회를 좀더 철저히 쓸어서 한국교회를 좀 깨끗케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 하나 하나가 등불이 되어서 빛을 비추어야 잃은 보배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가정이 깨끗해야 잃은 보배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가 얼마나 전 주의를 집중해서 이 돈을 찾았나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여자는 그 머리에 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저 염염 자자해서 잃은 돈만 생각합니다. 이 여자의 눈을 상상해 보세요. 이 여자의 눈은 다른 것을 보지 아니합니다. 그저 이편보고 어디 잃은 돈이 없는가? 그 눈은 온전히 잃은 돈을 찾기 위해서 사용이 됩니다. 그 여자의 왼 손을 보세요. 왼 손에는 등불을 켜 가지고 다닙니다. 바른 손을 보세요, 바른 손에는 빗자루를 들고 방을 쓰는 줄 압니다. 발로 돌아다니고 손으로 쓸고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하고, 모든 것을 이 잃은 보배를 찾는 데 집중합니다. 이것도 성신이 충만한 교회의 모습인 줄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에 여러 직분들이 있습니다. 이것도 그 직분들의 여러 가지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마는 여러 직분들의 가장 첫째 되는 책임, 그들의 전 정력을 모을 데가 어디입니까? 잃은 보배를 찾는데 모아야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주일학교가 있습니다. 영아부, 유치부, 초등부, 학생부, 청장년부, 여러 주일학교 각 부가 있습니다. 주일학교에서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지마는 주일학교에서 모든 주의를 집중해야 될 일이 무엇입니까? 잃은 보배인 인간의 심령을 찾는 데 마땅히 집중해야 됩니다.
우리 교회에 남녀 전도회가 있고, 청장년 면려회(勉勵會)가 있고, 학생회 면려회가 있고, 그 밖에 여러 작은 단체들이 있습니다. 이 단체들이 할 것이 많습니다. 하지마는 이 모든 단체가 제일 먼저 힘쓰고 집중할 데가 어딥니까? 잃은 보배를 찾는데 집중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물론 고아원, 경로원, 모자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가 있습니다. 이런 자선사업 기관, 교육사업 기관 같은 것도 대단히 필요합니다. 여러 가지 다 해야 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기관들도 무엇보다도 총력을 집중할 데가 어디입니까? 잃은 보배를 찾지 못하면 기독교 자선사업기관에서 무엇을 합니까? 잃은 보배를 찾을 수 없다고 하면 기독교 교육 기관이 많은 돈을 써서 학교를 설립하고 유지해 무엇을 합니까?
이 여자의 전 정신 모든 정력을 다 잃은 돈을 찾는데 집중시켰습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직분, 모든 단체, 성가대, 주일학교, 면려회 자선사업 기관, 학교 할 것 없이 그 근본 목적은 무엇에 있는고 하니 금은보다도 귀한 잃은 인간의 심령을 찾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보지 찾도록 힘을 썼습니다. 얼마 찾다가 아무리 해도 보이지 아니하니까『못 찾겠군!』그만 두지 않았습니다. 찾기까지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기간이 얼마 걸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방을 몇 번이나 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촛불을 몇 번이나 켰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찾기까지 꾸준히 낙심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찾았습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 속담에『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하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족, 여러분의 친구, 여러분의 이웃 가운데 잃은 심령이 있어서 그를 구원하기 위해서 아마 힘쓰는 분들이 더러 계신 줄 압니다. 여러분, 몇 번이나 권해 보았습니까? 그들을 위해서 몇 번이나 간절히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습니까? 몇 번이나 간절히 그를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힘을 썼습니까? 이 여자를 보세요. 찾도록 찾기까지 힘을 썼습니다.
함경도서 오신 교우들 많이 계신데 좀 미안하지마는 전에 어떤 사람들이 팔도 사람들의 성격을 이야기하다가 함경도 사람들의 성격을 평한 것을 보면 이전투구(泥田鬪狗)라는 말로 비평했습니다. 무슨 뜻인고 하니『진흙 밭에 개 싸움하는 것 같다.』는 말입니다. 그 말을 얼른 들을 때에 함경도 사람을 욕하는 말이라고 들을 수 있지마는 절대로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욕하는 말이 아니고 칭찬하는 말인 줄 생각합니다. 진흙 밭에서 개 싸움하는 것을 보면 그저 이놈들이 둘이 싸움 붙은 다음에는 도무지 멎지 않습니다. 그저 그냥 싸움만 계속합니다. 아마 대부분의 함경도 사람의 성격이 한 가지 무엇을 시작하면 중간에 놓지 아니하고 그냥 끝까지 하는 그 성질이 있는 모양입니다.
한편 우리가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말은 그대로 풀면 머리는 용인데 꼬리는 뱀이란 말입니다. 처음에는 엄청나게 일을 벌여놓아 성한 것 같으나 끝은 흐지부지 얼버무린 부진한 현상을 뜻합니다. 시작은 좋게 나왔다가 그 다음에 사그라집니다. 이 여자는 그런 성격이 아닙니다. 찾도록 노력했습니다.


여러분, 석수가 큰 바위를 깨뜨리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석수가 큰 바위를 터뜨려 깨려고 할 때에, 맨 처음에 쇠못을 하나 대고 방망이로 첫 번 땅 때리고 나서 보아야 아무 틈나는 것이 없습니다. 두 번 때려도 마찬가지로 아무 틈나는 것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 같아서는 못하겠다며 그만 둘 것입니다. 그러나 석수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 번 때리고, 두 번 때리고, 세 번 때리고, 네 번 때리고, 마지막에는 금날 때까지 때립니다. 마지막에는 큰 바위가 깨뜨려지고 맙니다.
이 여자가 이와 같은 주의를 가지고 잃은 돈을 찾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 보배로운 잃어진 인간의 심령을 찾으려고 하면 이와 같은 정신이 필요합니다. 얼마 애쓰다가 그만 두지 말고, 조금 힘쓰다가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계속해서 힘쓸 것입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가 15년 동안을 낙심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기도하고 권면하는 가운데 마지막에 자기 아들이 회개하지 않았습니까? 모니카는 이 은전을 찾은 것입니다.
이 은전을 찾으니 이 여자가 제일 먼저 무엇을 했겠습니까? 여기 자세히는 없지마는 은전을 찾고 보니 처음에는 빛이 번쩍번쩍 났었는데 지금은 형편없게 되었습니다. 먼지가 묻고 농이 쓸고 더러워졌습니다. 그래서 아마 제일 먼저 손수건 같은 것으로 빡빡 닦아서 반들반들하게 빛냈습니다. 그리고 보니 황제의 화상이 환하게 빛이 나타납니다.
마찬가지로 성신께서 이와 같이 잃은 보배인 인간의 심령을 찾은 다음에는 제일 먼저 하는 것이 그 심령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닦아주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다스 온전히 보일 수 있도록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해 주십니다.
그리고는 이 여자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보통 소흘히 간수할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주머니에 싸고 잘 간수해서 다시 잃어버리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신께서 인간의 심령을 구원하신 다음에도 온전히 하나님의 품속에, 하나님의 동산에 영원히 간수할 겁니다. 그 앞으로는 항상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의 대상이 되어 귀하게 쓰여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은전을 찾을 때에 이 여자가 얼마나 기뻐하였습니까? 우리 교회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가운데 기쁨이 많지마는 제일 큰 기쁨은 잃은 보배인 인간의 심령을 도로 찾을 때에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잃은 보배를 많이 찾지 않으니까, 자주 찾지 못하니까, 기쁨이 적으니까 어떤 교회서는 싸움만 합니다. 좀더 전 정력을 전도에 집중해서 많은 생명을 구원하는데 힘을 썼던들 한국교회가 이와 같이 쓸데없는 일로 싸움하니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렇게 잃은 보배를 찾을 때에 하늘에 있는 천사까지도 기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 여자가 은전을 찾기 위하여 등불을 가지고 땅을 쓸고 사방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이 여자가 혼자서 일한 줄로 알지 마세요. 하늘의 천사들이 이 여자가 활동하는 상황을 구경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영락교회에서 복음을 전도하기 위하여 이런 방면, 저런 방면에 힘쓰는 것을 우리만 아는 줄 알지 마세요. 하늘에 있는 모든 천군 천사들과 먼저 하늘에 간 천만성도들이 우리 영락교회에서 일하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귀한 잃은 보배를 찾을 때에는 우리 마음속에만 기쁨이 있는 줄 압니까? 하늘 나라에 큰 기쁨이 있고 천사들이 할렐루야 찬송을 부르고 천만 성도들이 화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느 때에 이러한 보배를 찾지 아니하리오마는 이 가을철은 일하는 때요 특별히 잃은 보배를 찾아야 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주일학교도 진흥기간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오는 주일을 특별히 간증 주일로 지키는 목적도 여기에 있습니다. 잃은 보배를 찾기 위하여 이와 같은 주일로 특별히 지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잃은 보배가 없습니까? 여러분의 친척 가운데 잃은 보배가 없습니까? 여러분의 이웃 가운데 잃은 보배가 없습니까? 성신께서 여러분을 통해 역사 하셔서 이 기쁜 계절에 잃은 모든 보배를 찾아서 하나님의 곡간에 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잃은 보배를 찾읍시다. (1960년 9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