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조용하여 일하라 (데살로니가 전서4:1-12)

새벽지기1 2018. 1. 12. 07:56


『또 너희에게 명한 것같이 조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살전4:11)

이 한 절 가운데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그 때 교인들에게 세 가지 권면을 하셨습니다. 첫째는 조용하기를 힘쓰라. 둘째는 자기 일을 하라. 셋째는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것은 명령입니다.「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이와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아침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조용하기를 힘쓰라. 시편 46편 10절에『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잔잔한 호수에 달빛이 바로 비칩니다. 고요한 심경,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은 심경에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이런 심경으로써야 하나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엘리야도 호렙산 굴 어귀에 가만히 섰을 때에 적고 고요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모세도 조용히 시내산 기슭에서 양을 칠 때에 불붙는 가시덤불과 하나님의 은근한 부르심을 들은 것입니다.
유대 왕 아하스 때에 이스라엘 왕 버가와 아랍 왕 르신이 연합해서 예루살렘을 크게 침략하였습니다. 이 때에 왕 아하스를 비롯해서 모든 백성들의 마음이 산림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떨며 흔들렸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아하스 왕에게 준 말씀이 이 말씀이올시다.『너는 삼가며 조용 하라.』이사야 30장 15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 늘』하셨습니다.


조용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고 은혜를 받는 중에 능력을 얻습니다. 마음이 들떠 흥분하고 당황한 사람은 아무 것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조용하여야 무엇을 생각할 수 있고 힘을 얻을 수 있고 내 의무가 무엇인가 바로 깨달아서 그것을 꼭 실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조용하기를 힘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3장에 보면 이보다 더 구체적으로 명령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할지어다.』『조용히 일하여 자기의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아마 그 때에 일은 하지 아니하고 돌아다니면서 남의 양식을 먹던 사람들이 있던 모양입니다. 자기의 일은 하지 아니하고 남의 일에 붙어서 남 일하는 덕에 사는 그런 벌레를 기생충이라고 부릅니다. 일하지 아니하고 남에게 붙어서 그저 사는 사람들을 기생 인간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 생활도 나는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남이 일하는 덕에 믿기만 하면, 미안하지마는 기생교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해는 하지 맙시다. 병자들이나 노약(老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육신 노동이나 정신 노동이나를 성경은 엄히 명령합니다. 꼭 일하고 생활하랍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내실 때에는 이 하늘 아래 다른 사람 말고 꼭 내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을 내가 찾아서 반드시 해야 되는 것입니다.


첫 번 권면과 합해서 생각하면 조용하여 일하라고 하는 명령이 됩니다. 그 때 데살로니가 교회 가운데는 일은 하지 아니하고 조용하지도 아니하고 돌아다니면서 일만 만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해서 사도 바울이 일을 돌아다니며 만들지 말고 내 일을 내가 하면서 내 양식을 먹으라고 엄히 경계하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을뿐더러 하는 사람을 비난하며 오히려 방해하는 무리들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무리들은 옛날 데살로니가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나라, 교회에도 있는 것이고 오늘날 한국 교회에도 없이 않아 있는 것입니다. 일은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일을 만들며 일하는 사람을 비난하며 거짓 선전을 일삼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해서 일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고 조용하여 일하라고 하는 말은 일은 하지마는 어떤 때에는 우리가 불평을 하면서 일할 때도 있습니다. 자랑도 하면서 일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태도로 하지 말고 조용히 일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설거지를 하는 것도 좋습니다. 쑹얼쑹얼 하면서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공자(孔子)님 말씀 가운데『인부지이 볼온이면 불역군자호아』(人不知而 不 이면 不亦君子乎아)이런 말씀이 있습니다.『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화내는 마음이 없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냐?』일을 하되 군자의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하라 하는 그 말씀이올시다.


하나님께서는 큰 일을 늘 하시지마는 조용히 하십니다. 아침에는 조용히 햇빛을 주십니다. 저녁에는 조용히 이슬을 내립니다. 그래서 풀이 자라고 꽃이 피고 오곡백화가 열리고 아름답게 익습니다. 큰 일을 하면서도 조용히 하라고 하는 말씀이올시다. 또한 조용히 일하라고 하는 말은 좀 생각하면서 일하라고 하는 그 말입니다. 좀 연구를 해서 창의적으로 창작적으로 좋은 방법으로 최선의 길을 택해서 작년이나 금년이나 똑같이 일하지 말고 좀 더 낫게 일하라는 뜻인 줄 생각합니다. 까치는 천년 전이나 오늘이나 똑같이 집을 짓습니다. 사람은 다릅니다.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지력을 주시고 창조적 능력을 주셨으니 조용히 생각하면서 전보다 더 일을 잘 하라고 하는 뜻입니다.
또한 조용히 일하라는 뜻은 일하기는 하되 피차에 남과 충돌되지 말면서 일하라고 하는 말입니다. 갈기는 소 같아서 밭은 잘 가는데 자꾸 다른 소를 만나면 싸우는 소가 있습니다. 일은 잘하되 다른 사람과 충돌 안 되면서 다른 사람과 협동하면서 일을 잘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합니까? 운동 경기를 할 때에 어떤 팀이 이깁니까? 자기 팀 멤버들끼리 잘 협동해서 일하는 팀이 승리를 합니다. 조용히 잘 협조하면서 일하기를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또 조용히 일하라고 하는 말은 꾸준히 일하라고 하는 말입니다. 얼마 일하다가 마음에 맞지 않으면 집어던지지 말고, 꾸준히 인내를 가지고 농부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듯이 참아가면서 끝까지 일하라고 하는 그 알입니다.


여기 특별히 자기 일을 하라고 권면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시몬을 다시 불러 세우면서 주를 따르라고 말씀하실 때에 시몬이 그 옆에 선 요한 을 가리키면서『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예수님이 곧 하시는 말씀이『그에게 대해서는 내가 할 다른 계획이 있지마는 그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 잇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 네게 제일 중요한 것은 우선 네가 나를 따르는 것이니라.』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믿느니, 그것을 비판하는 것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은「내가」어떻게 믿느냐? 내가 어떻게 주를 따르느냐? 이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책임을 하느냐? 그것을 보는 것보다도「내가」책임을 어떻게 하느냐? 내 직장에서 내 책임을 하느냐? 내 교회에서 내 책임을 하느냐?
옛날이나 오늘이나 형태는 변했지마는 원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나라가 잘 되는 법은 옛날 성현의 말 그대로 지금도『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夫夫 子子)의 원리가 그대로 응용되는 것입니다. 임금은 임금 노릇을 잘하고, 국무총리는 국무총리의 일을 잘하고, 장관들은 장관들의 일을 잘하고, 아버지들은 아버지 노릇을 잘하고, 아들들은 아들 노릇을 잘하고, 각각 자기 직장에서 조용히 일을 바로 하고 창작적으로 할 때에 그 나라는 바로 될 것입니다.
네 일을 힘쓰라고 하는 말은 예수 님의 말씀 가운데 있는 맏아들처럼 하지 마라는 말입니다.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을 불러서 하는 말이,『아들아 오는 포도 원에 가서 일하라!』『예!』대답은 하였으나 가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지 말고『예!』라고 대답하고 책임을 맡았으면,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으면, 부름을 받았으면, 그 책임을 바로 하라는 뜻입니다.


셋째는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특별히 여기에 육체 노동을 의미하는 줄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손으로 목수 일을 하시며 제자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바울도 친히 손으로 장막을 치셨습니다. 이와 같은 모범으로서 육체 노동이 얼마나 신성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실정을 볼 때에 거의 모두가 손으로 할 일입니다. 산에 나무가 없으니 나무를 심어야겠습니다. 손으로 심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천에 모래가 내려와서 덮게 되니 치수(治水)를 해야 되겠습니다. 손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농사도 손으로 할 수밖에 없고 우리의 일용품을 생산하는 모든 것도 우리의 손으로 생산할 수밖에 없고, 도시의 건설을 하는 것도 우리의 손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육체노동을 요구합니다. 사실 정신 노동으로 할 것은 많지 아니합니다. 정신 노동자는 많이 요구되지 아니합니다. 손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 기술이 있는 사람, 숙련한 사람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매우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실직자가 1백 50만이니 2백만이니 하지마는 사실 자기의 기술이 있고 무엇이나 자기 손으로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실직이 없습니다. 대체로 손으로 일할 줄 모르는 사람 가운데 이 실직자가 많은 것입니다. 이런 면을 생각할 때에 우리가 이 앞으로 우리의 아들과 딸들을 어떻게 교육을 시켜야 되겠느냐? 깊이 생각할 것입니다. 오늘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졸업하였다고 하지마는 살림할 줄 무른다는 불평을 많이 듣습니다. 일을 배워야 합니다. 일할 수 있는 손으로 일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몇 일 전에 신물을 보니까 원남동에 84세 된 노인이 그 동리에서「빗자루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지셨다고 합니다. 이 할아버지는 과거 5, 60년 동안 새벽 일찍 일어나서 근방에 다니면서 길을 깨끗이 쓸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 경찰서에서 특별히 감사장을 올린 일이 이지 아니합니까? 우리 한국의 할아버지들이 다 이렇게「빗자루 할아버지」가 되었다고 하면, 우리 나라가 얼마나 더 깨끗해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빗자루 할머니가 되면 뭐 틀린 것 있습니까? 손으로 일하기를 우리가 힘써야 되겠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보니까 어떤 잘 믿는 이가 풍을 맞아서 신체 하부를 전혀 쓰지 못하는데 그 윗도리는 쓸 수 있으니까 드러누워서 조금도 놀지 아니하고 그물을 뜨는 그 광경을 본 생각이 지금까지 기억됩니다.『네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의 실정을 보면 제일 많은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싸움과 데모입니다. 국회에서도 싸우고 학교에서도 싸우고 은행에서도 싸우고 공장에서도 싸우고 예배당 안에서도 싸웁니다. 또 데모, 심지어 양 마담들이 데모를 한다, 사창들이 데모를 한다. 병원의 환자가 데모를 한다. 전라도에서는 성경학교 학생들이 선교사들한테 가서 데모를 했다. 이러다가는 데모로 이루어진 제2공화국이 데모로 망할까 두렵습니다. 이와 같이 함부로 하는 데모는 대의를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희생하면서 한 지나간 4월 혁명에 대한 모독입니다. 생명을 바친 그들의 영령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싸움과 이 데모, 우리 사회에서 어서 그치지 아니하면 우리 나라가 바로 건설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 제일 시급한 것도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질서 유지요, 둘째는 건설입니다. 국민마다 조용한 정신을 가지면 자연히 질서가 회복될 것입니다. 누구나 자기 신분에서 자기 일을 바로 하면 자연히 건설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싸움을 그만 두고 데모도 그만두고, 학생은 학교서 공부할 것이요, 직공은 공장에서 일할 것이요, 공무원은 그 관청에서 책임을 다 할 것이요, 누구든지 지기 직장에서 조용히 일해야 질서도 회복되고 건설도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사정도 질서의 회복이 꼭 필요하고 건설을 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하려고 하면 조용히 자기의 책임을 바로 하는 일군이 요구됩니다.
지금은 가을입니다. 추수할 때가 가까워 왔습니다. 신령한 밭은 이미 곡식이 누르렀습니다. 아니 이미 희어졌습니다. 일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교역자는 교역자로서, 장로들은 장로로서, 집사들은 집사로서, 내 자리에서 각각 자기의 책임을 조용히 바로 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 교우들 가운데 열심히 일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어떤 분은 한 가정을 구원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그 집을 도와주고 애쓰는 정경을 볼 때에 참 눈물이 납니다. 이와 같은 교우들을 본받아서 우리 하나 하나가 조용히 일해야 될 것입니다.
국가 부흥의 비결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조용히 일하는 것입니다.
교회 부흥의 비결도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조용히 일하는 것입니다.
(1960년 9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