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특강

지성, 이성, 영성(3) - 지성을 넘어서

새벽지기1 2017. 6. 20. 14:36


지성을 넘어서

아마 어떤 분은 마음 속으로 이미 내가 강조하고 있는 지성의 한계를 계산하고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말하고 있는 그 지성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근대주의의 그 지성이야말로 세계사를 질곡으로 끌어들인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기독교 신앙은 그런 지성을 경계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옳습니다. "아는 것은 힘이다"라는 베이컨의 경구는 이미 그 천박한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낸 바 있습니다. 그런 지성의 축적으로 이룩한 현대의 삶이 비록 외양으로는 풍요를 구가하지만 그 질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궁핍하다는 점에서 지성은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가 있어도 어떤 범주를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지성에서 인간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지성의 양면을 보아야 합니다. 한 면은 말 그대로 우리로 하여금 어떤 사실을 알게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일종의 계몽의 역할이 기대됩니다.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한 사람보다는 대학을 나온 사람이 세상에 대한 정보를 좀더 많이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교회에서도 보면 지성을 갖춘 사람과는 최소한 대화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 면은 지식 자체만으로는 궁극적인 가치를 생산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참으로 까다로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설명해봅시다. 인간은 지성을 통해서 어떤 사실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학의 함수관계나 기업의 매카니즘이나 법의 운용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머리가 좋은 사람은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고, 사법고시에 합격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능력은 지성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지적인 수준이 높을 수 있다는 나쁠 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지성은 그것만으로 끝납니다. 좀더 가치 있는 차원으로 올라가지는 못합니다. 예를 들을까요? 우리의 현대사에서 가장 비민주적인 <유신헌법>을 만든 사람은 그 당시에 가장 지성적인 집단에 속한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법의 원리만 알았지 그것이 어떻게 인간을 위한 것으로 사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습니다. 또는 알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안일을 위해서 유신헌법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런 이들은 우리 주변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성이 늘 이렇게 불의하게 사용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지성은 보다 창조적으로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이 많습니다만, 그것 자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그 답은 이성입니다. 지성과 이성을 이렇게 구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자신이 없습니다. 나는 전문적인 언어학자나 인문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확답을 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전문가들이 볼 때 잘못된 관계설정이라 하더라도 내 나름대로 규정해보려고 합니다. 지성은 단순한 정보에 불과하지만 이성은 그 정보를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판단하는 기능입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성은 단순한 이라고 한다면 이성은 그것의 목적을 분명히 인식하는 앎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성이 훨씬 근원적인 앎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의학공부를 할 수 있는 능력은 지성이지만 그 의술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이성입니다. 변호사나 판사는 법에 대한 앎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반드시 이성적인 것은 아닙니다. 의술과 법이 나쁘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성은 있는데 이성은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성적인 사람은 비록 지성적이지 않드라도 지성적이면서 이성적이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바람직하고 의미있게 살아갑니다. 이런 점에서 아는 것은 많지만 이성적이지 못한 대학교수보다는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인간이 자연의 일부인 것을 명확하게 알고 분수에 맞도록 성실하게 사는 농부가 훨씬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사이비 지성이 아주 많습니다. 이 세상은 일단 접어두고 교회 세계만 보더라도 단순한 지성에만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하자면 수십년 동안 교회에 다니면서 성서와 교회 질서에 대한 정보에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빠삭한 사람들이면서 정작 비이성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그들은 이것 저것 아는 것은 많았지만 예수와 진리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노예라고 했으며 장님이라고 했습니다. 참 이상하죠? 자기는 본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눈이 멀었으며, 자기는 자유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노예라는 사실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