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현수:조직신학

신현수 박사의 조식신학 (119)

새벽지기1 2016. 10. 5. 07:37


주 되심의 영성 <하나님 형상>

한 걸음 나아가, 사람은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가고 행하며 성령이 나누어주시는 은사에 따라 그리스도의 몸을 섬긴다(고전 12장 11절).  성령 하나님은 각 사람을 거룩하게 하셔서 이 땅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최종적 완성에 이르게 한다. 각 사람은 성령 하나님이 새로운 생명을 주시고, 거룩함과 선함에서 자라나게 하시며,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하고, 새로운 창조에서 자신의 기업을 누리게 하시는 대상이다. 따라서 각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무한한 가치가 있고 매우 존엄한 존재다(롬 8장 1-27절).


요약하건대,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죄 때문에 잃어버린 하나님 형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하시는 특별한 사역을 구체화한다는 점에서 존엄한 존재다.


그러면 사람이 갖는 존엄성이 오늘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가?
가장 먼저 그것은 자유다. 자유는 두 가지 주된 측면이 있다. 하나는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이고 다른 하나는 무엇을 위한 자유이다. 자유라고 하면 흔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의 개념에는 명확한 내용이 전혀 없다. 성경은 오히려 사람의 존재와 사람의 자유가 사람이 지음 받은 목적 곧 하나님 형상을 가진 존재로 살아가는 것에 의해 결정된다고 가르친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에 관해 말한다면, 사람다운 삶을 방해하는 악습, 숨 막히는 경제 제도, 조종하려고 하는 가족, 무력하게 하는 배경 및 심리적 문제 등은 오늘날 사람들이 벗어나도록 안간 힘을 써야 하는 대표적인 감옥의 형태다. 하지만 성경은 이러한 속박의 근원이 사람이 집단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르게 된 죄의 상태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가르친다. 기독교 신앙에 비추어 볼 때, 죄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유가 목적하는 최우선적인 중심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죄의 속박에서 풀려나기까지 사람은 죄가 일으키는 치명적인 결과에서 벗어날 수 없고,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마련된 놀랄만한 삶을 살 수 없다( 고전 2장 9-10절).
예수님이 가르치시기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장 31-32절). 유대인이 이 사실을 논박하자,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 8장 34, 36절).


율법은 선한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품위 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죄의 상태에 있는 사람은 율법을 자신의 운명과 다른 사람의 삶을 통제하려고 하는 일련의 규칙과 규정으로 바꾸어 버린다. 죄는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하나님께 냉담한 태도를 갖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죄는 사람이 저지르는 악의 뿌리다. 죄는 사람을 억압하기 위해 율법을 활용한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은 하나님과 갖는 관계에 저주를 불러오고(갈 3장 10-12절), 죽음을 초래하며(롬 5장 13-14절), 사탄에게 믿는 사람을 제압하는 능력을 준다(계 12장 10절).


무엇보다,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킨다(롬 1장 18절). 사람이 하나님과 갖는 관계가 자유에서 소외로 전락하듯이, 이웃과 다른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자유가 억압으로 바뀌게 된다. 구속은 자유를 나타내는 은유다. 구속자는 억압받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 그들을 속박과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그들을 품을 수 있는 권리와 열망을 가진 소유자에게로 돌아가게 한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죄와 죽음의 사슬, 율법의 저주, 악마 및 하나님의 진노 등에서 우리를 구속하신 분으로 나타낸다(딛 2장 14절, 갈 3장 13절, 히 2장 14-15절, 요 3장 36절).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