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현수:조직신학

신현수 박사의 조식신학 (117)

새벽지기1 2016. 9. 18. 07:39


주 되심의 영성 <하나님 형상>

잠언서가 말하는 웃음은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비웃음이고(잠 1장 26절),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으며’(잠 14장 13절), ‘능력 있는 아내’가 후일에 웃는 것이다(잠 31장 25절). 하나님이 욥에게 하신 말씀에는 웃음이 세 번 언급되어 있다. 그것은 타조와 말 및 악어에 두려움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욥기 39장). 빌닷은 욥에게 하나님이 ‘웃음을 네 입에 채우실’ 것임을 확신시켜 주지만 그것은 거짓된 말이다. 사람은 때때로 전쟁을 하면서도 유머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동정하는 마음이 전혀 없이 비웃는 것이다(대하 30장 10절, 삼하 10장 4-5절).


신약에 보면,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이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하셨다(마 9장 24절). 하지만 예수님이 약속하기를, 우는 사람이 웃게 될 것이고 지금 웃는 사람이 애통할 것이라 하셨다(눅 6장 21, 25절). 야고보는 죄인들에게 비슷한 충고를 하였다(약 4장 8-9절).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때문에 남으로부터 기꺼이 이해받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가 되라고 권면한다. 이것이 십자가의 어리석음이 주는 기쁨과 복을 나누어 받는 길이기 때문이다(고전 1장 21절). 그러나 그것은 값비싼 대가를 치루는 어리석음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기쁨이 넘치는 것이라는 일반적 가정에 비추어 볼 때 예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웃음은 거의 언제나 부정적인 뜻으로 표현된다. 가령, 남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자랑하거나 방해거리를 비웃는 주된 수단이다. 웃음이 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드물다.
문제가 되는 것은 ‘웃음’이 성경에서 ‘복’이나 ‘기쁨’과 구별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유머의 파괴적이고 변명적인 측면을 나타내기 위해 예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복은 성경에서 흔히 나타나는 개념으로 ‘안녕’과 ‘행복’을 뜻한다. 찬양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특성이다. 그리고 감사는 하나님이 하신 놀라운 일을 찬양하는 데에 있다. 기쁨은 웃음보다 훨씬 흔하게 나타나고, 표현에도 제한이 거의 없다. 기쁨은 천사가 하는 특징적 활동으로 보인다.


이처럼 좋은 유머가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죄의 실제적 결과를 심각하게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성경에서 웃음은 흔히 세상 방식으로 묘사되고 있다. 유대인의 유머에서 찾아볼 수 있는 비꼬는 지혜는 값싼 낄낄 웃음에서가 아니라 심원한 풍자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감각은 살아가면서 겪는 비극적 사건과 허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게 하고 그것들을 헤쳐가게 하는 원천이 된다. 유머는 역경을 만나도 웃을 수 있게 하고, 남을 억압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을 비웃게 함으로써 그들이 가진 힘을 무력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은 단지 사람을 들뜨게 하는 행동이 아니라 소수의 적 앞에서 자랑하기를 기뻐하는 것이다.


유머는 어려운 상황에 맞서게 하는 이상의 기능을 한다. 농담을 주고받는 것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고 서로 친목하게 한다. 유머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고, 사물의 균형을 이루게 하며, 화를 참아내게 하고, 자만에 빠지지 않게 한다. 더욱이 유머는 상상을 바꾸게 하고, 사물을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보게 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유머는 공유하는 문화적 기반을 전제하고, 그것을 뛰어넘거나 그것이 갖는 죄의 국면에 도전하는 길을 제공한다. 유머가 갖는 그러한 기능은 예수님이 비유를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야기를 듣자 서서히 당파를 지어 그를 멀리하거나 그의 이야기를 더 이상 듣지 않으려 했다. 이것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보인 특징적인 반응이다. 유머를 통해 대화 이면에 있는 문화적 전제를 바꿈으로써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우선순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예술적 행위에 가깝다.   <계속>

 

출처j...복음신문....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신 현 수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