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온전한기독인

[제3장] 사회적 책임

새벽지기1 2016. 8. 25. 07:57



나는 우리 모두가 최근 교회 내에 다소 심각한 양극화 현상이 있었음을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일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하고 복음 전도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에 다른 그리스도인들, 특히 에큐메니컬(ecumenical) 운동(종파 및 교파 연합 운동 ‐ 편집자 주)권 내에 있는 이들은 사회·정치적 책임에 치중하여 복음 전도를 단념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그 중 일부는 복음전도를 사회적 책임이라는 견지에서 정의하려고까지 했다. 이것은 처음부터 슬프고도 헛된 논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사회적 책임과 복음 전도적 책임은 상호 분리될 수 없으며, 그러기에 우리는 1974년 개최된 로잔 세계 복음화 대회에서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한동안 잃어버렸던 사회의식을 되찾은 점에 대해 깊이 감사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사회적 태도는 오직 두 가지이다. 하나는 도피이고, 또 하나는 참여이다. 전자는 거부하는 마음으로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이며, 후자는 동정하는 마음으로 세상 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전자는 세상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는 것인데, 결국에 가서는 그 책임은 본디오 빌라도처럼 손을 씻는다고 해서 벗겨지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후자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느라 우리의 손을 더럽히고 아프게 하고 않게 하는 것이다. 전자는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의 괴로움에 찬 울부짖음에 마음을 닫는 것이며, 후자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요동침을 느끼는 것이다.


나는 너무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고 너무도 많은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 무책임한 도피주의자들이었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교회 내에서 지체와 교제하는 것이 바깥세상의 적대적인 환경 가운데서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좋다. 물론 이따금씩 적진을 향해 복음전도를 위한 기습 공격을 감행한다. 그것이 우리의 특기이다. 그러나 그 적대적인 환경으로부터 다시 우리의 기독교적 아성(牙城)으로 철수하여 바깥과 연결된 다리를 끌어 올리고는, 성 안으로 들어오고자 울부짖는 자들의 외침에 귀를 닫아 버린다.


사회 활동을 하는 것은, 예수님이 금방 재림할지도 모르므로 시간 낭비라고 말하는 경향이 예전부터 있었다. 다른 말로, 집에 불이 났는데도 가구를 재배치하고 커튼을 바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조치는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엉터리 신학으로 우리의 양심을 달래 보려고 노력한다. 나는 기도한다. 예나 지금이나 그의 백성들에게 외치는 그 분의 목소리, 그가 행하신 것처럼 잃어버린 외로운 세상에 나아가 그 세상을 섬기라고 부르시는 그 분의 목소리를 우리가 들을 수 있기를‥‥그리하여 그 분처럼 살고 사랑하며 증거하고 섬기며 고난 받고 죽을 수 있기를‥‥ 이것이 선교가 의미하는 바이다.

선교란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섬기도록 비기독교적 세계로 보냄 받은 자들이 인식하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양식이다. 그래도 여러분은 왜? "왜 내가 참여해야 하는가? 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다섯 가지 위대한 성경의 교리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그것 모두를 이론으로는 믿지만, 우리의 도피주의적 신학에 짜 맞추기 위하여 그것을 자르고 깎는 경향이 있다. 나는 여러분이 이 성경적 교리들을 충분하게 이해하기를 간곡히 바란다. 그것들 중에 우리를 확신시키기에 부족한 것은 단 하나도 없으며, 그 다섯 가지로 인해 우리에게는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