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갈색 또는 밤색이 연상된다. 오래 전, 그러니까 20대 나는 밤색 양복을 좋아했다. 콤비도 밤색, 바지도 밤색, 구두도 밤색, 그리고 지금 입는 양복 가운데 밤색이 있고, 바바리 역시 짙은 밤색이다. 어떤 이들은 갈색 또는 밤색이 나에게 어울린다고 한다. 그런가?? 나는 가을을 좋아한다. 상대적으로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겨울도 좋다. 봄도. 특별히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는 낙엽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열매를 맺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열매 맺기 위해선 푸른 잎들이 반드시 갈색으로 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자신이 떨어지거나 색깔이 바래지지 않고선,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자신을 희생해야만 열매가 맺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나는 갈색을 선호한다.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는 또 있다. 단감의 계절이다. 나는 많은 과일들 중 단감을 가장 좋아한다. 그 다음으론 사과다. 미국에선 단감을 먹을 수 없었다. 사과는 마음껏 먹었다. 싸니까... 단감을 좋아하는 이유는 색깔도 색깔이지만 그 맛 때문이다. 크게 달지도 않다. 그렇다고 단 맛이 없지도 않다. 대봉도 있고 반시도 있지만 나는 단단한 단감을 선호한다. 껍질째로 먹기도 하고 한 상자나 두 상자를 구입해서 그냥 하루에서 5개 이상씩 먹는다.
단감을 선호하는 분명한 이유는 그 은은한 맛 때문이다. 나는 같은 밤색이지만 달고 단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단 사탕도 좋아하지 않는다. 은은한 맛을 좋아한다. 음식도 짜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는 맛을 좋아한다. 맛 때문에 먹지 않는 법도 없지만 맛 때문에 먹는 법도 별로 없다. 배고프니까 먹는 것이지 맛 때문에 먹지는 않거나 먹지 않는다. 은은한 맛은 나의 개성을 잘 드러낸다. . . 그래서 나는 가을이 좋다.
신앙생활에서 단감처럼 은은한 맛을 풍기는 것이 기독교인의 참된 성격이라 확신한다. 성령의 역사 중 절제를 잊을 수 없다. 화평 하는 자가 사랑이 없을 수 없고, 양선인 자가 절제하지 않을 수 없고, 충성된 자가 온유하지 않을 수 없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는 반드시 절제와 함께 동행해야 한다. 베드로 역시 믿음에 절제를 더하라고 강력하게 권한다. 절제하지 못하는 신자는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한다고 규정해도 좋을 것이다. 완전한 절제를 의미하진 않는다. 자신의 감정, 오성 및 의지를 더 나아가서 이성까지 그분의 말씀에 굴복시키는 자세가 없다면 과연 신자일까? 종교는 절제 없이 불가능하다.
오늘 나는 무엇을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절제하는지 살피는 것이 좋다. 절제의 온전한 모습은 그리스도시다. 그분의 십자가상에서의 희생과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절제는 놀랍니다. 물론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인성을 가지고 있는 분이시기에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그 절제란 땀이 핏방울이 되기 까기 행했던 것이다.
우리가 그분을 닮아가는 자라면, 신자라면, 당연히 절제적 삶을 살아야 한다. 그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분의 말씀에 따라 자신을 언제든 수정과 보완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 자는 교회를 무너뜨리는 자가 될 것이다. 있는 듯 싶고 없는 듯 싶으나 단 맛을 유지하는 단감처럼 기독교인도 이렇게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