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라은성목사

완전 범죄란 없다!

새벽지기1 2016. 7. 12. 08:25


미국에 사는 동안 가끔 베스트바이(Best Buy)에 가서 전자 물건을 구입하곤 했다. 여기는 한국 같으면 하이마트와 같은 장소다. 어느 날 쇼핑을 한 후 나와서 주차장에 있는 나의 차를 보았는데 누군가 흠을 내고 갔다. 화가 났지만 주차장엔 한국처럼 CCTV가 없었기에 불평할 수 없어 기분이 상한 채로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요즘은 차마다 블랙박스가 있어 시비가 붙었을 때 언쟁보다 사실을 두고 말한다. 변명할 필요도 없다. 영상으로 모든 것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경찰이 왔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설명하기보다 동영상을 보여주면 된다. 핑계나 변명도 필요 없다. 동영상이 모든 것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안전 카메라이다.


범죄에는 완전범죄가 없다고들 한다. 언젠가 범죄자들은 검거된다고 한다. 세상엔 어두운 밤이나 밝은 낮이라도 범죄를 과감하게 또 뻔뻔스럽게 범하곤 한다. 과거에는 신고나 실마리를 보고 범죄자들을 색출해 냈지만 요즘은 CCTV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곳곳마다 CCTV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행동의 제약을 받지만 그것 때문에 범죄들이 줄어든다면 그 부자연스러운 것을 참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의 경건한 자들은 성경이란 CCTV를 갖고 산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심정에 새겨진 하나님의 율법이 우리의 울타리와 CCTV 역할을 한다. 그 율법이 우리 양심을 누르기도 하지만 자유롭게 만들기도 한다. 율법은 기독교인의 삶의 지침이기도 하지만 안내자이기도 하다. 그 율법을 통해 경건한 자의 삶을 살필 수 있다.


경건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대를 늘 의식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타락성을 여전히 갖고 있기에 죄들을 짓는데 훨씬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그분의 심판이 우리를 기다리고 범죄한 자들에 대해 하나도 남김없이 심판하신다는 확신이 없다면 경건한 자들은 세상에 치우쳐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바르게 살아가는 힘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그분의 심판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경건하게 살기란 어렵다.


행한 대로 갚으신다는 표현은 행위의 구원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행위로 구원의 성취가 이뤄진다는 의미도 아니다. 행위로 구원받는 믿음이 증거되기 때문이다. 행위로 나타나지 않는 믿음이 있을까? 없다. 있을 수 없다. 믿음은 신뢰이기에 행위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어떤 이들은 핑계 대기를 연약한 믿음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이론적으론 인정한다. 하지만 믿음을 진정으로 가졌다면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면서 바르게 살려는 의지를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범죄를 위하고, 탐욕스런 자신의 의지를 포장하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우리는 심판대 앞에 설 것이다. 이 사실을 신뢰하기에 경건한 자들은 바르게 살고자 하는 심정을 갖고 경건하게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 그렇지 않다면 바르게 살아가는 생활이 힘들고 외롭고 어려울 것이다. 그분이 반드시 우리를 심판하심에 대해 감사와 찬양을 돌린다.

'좋은 말씀 > 라은성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언어와 교리  (0) 2016.07.14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  (0) 2016.07.13
후진은 없다!  (0) 2016.07.11
준법정신  (0) 2016.07.10
한 길 인간의 마음  (0) 2016.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