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라은성목사

언어와 교리

새벽지기1 2016. 7. 14. 15:09


우리말에 ‘아’와 ‘어’의 차이는 크다고 한다. 문자적 의미보단 말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합니다. 말만 잘하면 공짜라는 말도 하곤 한다. 또 눈(snow)과 눈(eye)은 같은 단어지만 발음과 억양에 따라 의미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말(horse)과 말(speak)은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글로 써서 분명하게 문맥에서 나타내지 않으면, 말을 할 때 문맥을 듣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언어는 사상의 전달 체제이다. 어떤 언어를 채택하며, 어떤 말투를 사용하는지는 그 사람의 사상을 대변한다. 단문을 사용하는 자는 그만큼 단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문을 사용하는 자는 그만큼 사고의 폭이 넓다거나 복잡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린 아이들이 사용하는 단어는 불과 200 단어도 되지 않는다. 일상적으로 5,000단어를 사용하는 자는 드물다. 더욱이 10,000단어를 사용하는 자는 식자들에게만 해당되지 거의 대부분은 5,000단어 이하를 사용한다.


몇 단어로만 표현하는 언어 전달에 무슨 문제가 발생할 것인지는 쉽게 진단할 수 있다. 여행을 다닐 때 언어가 소통한다고 하지만 몇몇 단어를 사용해도 가능하다. 하지만 몇몇 단어를 사용하므로 나타나는 부조리는 많다.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지도 못하고 전달하지도 못할 것이다. 몇 단어로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몇 단어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을까?


우리가 교회에서 교리 공부를 한다거나 성경 공부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몇몇 단어만 알아서 구원의 진리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정확하게 아는 것은 아니다. 구원이 단순하다고 하여 삶도 단순하다고 말하지 못한다. 복잡한 삶이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 또는 뜻을 반영하며 살기 위해선 복잡한 교리 체제를 터득해야 한다. 그래야 복잡한 일들 가운데 그분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고 적용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구원은 단순하기에 단순한 진리를 알고 살겠다는 주장은 어리석은 자의 말이다. 겉으로 단순하다고 천명하지만 실제로는 단순하지 않다. 아니 편하게 살겠다는 것을 말할 뿐이다. 아니 게으르다는 말이 더 적당한 표현일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원하는 것을 말하고, 원하는 것을 행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것을 숨긴 채로 단순한 것을 원한다고 말한다.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진정으로 단순한 것을 원한다면 배워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기 위해 배움이 요구된다. 바꾸어 말하면, 어떤 것에 대한 정의를 정확하게 내려야 한다. 내리지 못하는 것은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는 훈련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교리를 배우는 것은 복잡한 일들을 단순화하기 위해 요구된다.
몇몇 단어만 알아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없는 것처럼 몇몇 진리만을 알아서 복잡한 인생의 삶에서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그리스도는 “내게 와서 배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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