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라은성목사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

새벽지기1 2016. 7. 13. 12:27


방학을 맞이하면 원하는 대로 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릴 때 학교 방학 중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방학 숙제였다. 언젠가 할 것이라고 했지만 하려고 하면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숙제 없는 방학을 원했던 적이 있었다. 방학 숙제 중 하나가 일기를 쓰는 것이었다. 반복되는 하루 생활을 기록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잠자고, 밥 먹고, 놀고, 다시 잠자는 일상적인 일들을 적는다는 것이 지겨웠다. 글을 써야하는 이유도 잘 몰랐다. 작문 시간만 되면 지겨웠고 흥미도 잃어버렸다. 왜 글을 써야하지?


이제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위치에 이르렀다. 하나님께 감사한다. 대학원까지 한국에서 학업에 임했지만 글 쓰는 법을 배운 것은 대학교 시절이었다. 그것도 논문을 쓰기 위해 배웠던 것이다. 어떻게 글을 써야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정말 글 쓰는 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힘썼던 그 교수님을 잊지 못한다.


그렇다고 글을 원하는 대로 잘 썼다고 말할 수 없었다. 미국으로 유학생활을 행하면서 첫 번째 신학석사학위를 받을 때 영어로 논문을 쓰는 것은 너무나 힘든 작업이었다. 그래서 두 번째 신학석사학위를 받을 때는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논문을 썼다. 이어서 박사학위 논문을 쉽게 쓸 수 있었다.


글을 쓰는 일은 단순히 글 쓰는 재능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은 기술이나 재능이 아니다. 언 듯 보면, 그렇게 보이기에 나는 글을 못 쓰겠어! 핑계를 대곤 한다. 그것은 재능이라 포장했을 뿐 실제는 자신을 정리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상황이 불안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을 정리하는 시간이 일기를 쓰는 시간이다. 글을 쓰는 시간이다. 일 년 후, 이 년 후, 10년 후에도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될는지 정리할 수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 오늘의 생각이 10년 후에도 달라진다면 글을 쓸 수 없다. 변화될 것을 글로 남길 이유가 없기 때문이고 자신도 없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것은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정리하지 못한 것의 문제이다.


자신을 되돌아본다. 20년 전의 모습이 달라졌다고 안타까워하지 말고 정신 상태는 어떠했고, 의식은 어떠했는지 살펴야 한다. 바르게 살려고 했던 젊은 시절, 어린 시절에 생각을 지워버리지 않고 현재도 여전히 진행형으로 삼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글을 쓸 수 있다. 사진을 찍자고 할 때도 더 나은 모습으로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여행을 가서 사진을 굳이 찍으려고 하는 이유도 다시 오지 못할 곳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사진을 찍으려고 할 때에도 다시 만나지 못하고, 변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담아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기독교인인 우리는 자신을 늘 점검한다. 오늘의 생각이 내일의 생각과 다르지 않기를 바라야 한다. 오늘의 모습이 더 나은 내일이 되고자 하는 노력에 힘써야 한다. 이런 모습은 기도로 잘 드러난다. 기도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자신을 반추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점검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다.

'좋은 말씀 > 라은성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통과 불통  (0) 2016.07.16
언어와 교리  (0) 2016.07.14
완전 범죄란 없다!  (0) 2016.07.12
후진은 없다!  (0) 2016.07.11
준법정신  (0) 2016.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