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론

목회론(4) '이 시대의 악을 이기는 법'

새벽지기1 2016. 7. 1. 13:27


이 시대의 악을 이기는 법


세상의 일들이 변하고, 우리의 눈에 비치는 상황들이 선한 쪽으로든 악한 쪽으로든 바뀝니다. 따라서 오늘날 시대에 그 나름대로의 위험과 유혹거리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저는 우리가 지금까지 싸워본 것보다 훨씬 더 처절한 싸움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싸움에 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을 여러분 각자에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1:9). 우리의 신뢰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가 그 자신의 대의(大義)에 궁극적인 승리를 가져다주실 것입니다.


이 시대의 악 가운데 첫째로, 우리는 미신이 다시 기승을 부리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당시 주변에 있는 교회들은 로마교회의 의식주의(儀式主義:ritualism)의 힘과 결연한 의지를 보이며 로마교회의 모든 교리들을 다 전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최악의 현상은 제도권 교회 내에서 성례지상주의(sacramentalism)가 성장하고 있는데, 이것이 나무에 기생하는 버섯 같은 것이 아니라 나무의 원 가지에 속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공동기도서(the Book of Common Prayer) 전체를 그 자연적인 의미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저 평생에 한 번 읽을까 말까 하는 정도의 것들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들과 괴리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의식주의와 허례의식에 물들어 있어 그저 자세와 치장, 예복 등 온갖 쓰레기 같은 것들만 믿는 무리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 미신은 인간의 마음에 본래부터 있는 우상숭배와 잘 들어맞아서 그것들을 동경하게 되고, 따라서 눈에 보이는 사제와 외형적인 상징물들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즉 이 미신은 외형적인 예배를 제시하고 사람들을 위하여 신앙의 행위를 해 주는 사제를 공급해 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지 않아도 무방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들은 참된 중생이 없이 사람을 위로해 주고, 그리스도의 의에 자기 자신을 굴복시키지 않았는데도 사람에게 헛된 소망을 주어 들뜨게 만드는 것입니다.


두 번째 악도 이와 똑같이 끔찍한데, 곧 가득한 불신앙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비국교도 교회들 속에 들어오고 있고, 그 교회들의 강단에 올라서고 있으며, 스스로도 교양과 지식을 갖추고 있다고 여기는 교인들에게서 지도자로 인정받는 이들의 증언을 왜곡시키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신학은 불변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마치 바람처럼 변덕이 심하여 견고한 가르침을 경멸하고 ‘발전’이 그들의 표어였습니다.

그들이 의도하는 ‘발전’이란 과연 무슨 의미입니까? 진리로부터 벗어나는 발전일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곧 사실상 거꾸로 퇴보하는 것이지요. 그들은 더 높은 사상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밑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들의 발전은 우리가 바라는 참된 곳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나아오는 것입니다. 이 발전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설교는 처음에는 사람들의 매력을 끌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잘못된 것은 전혀 따지지 않고 진기한 면을 지닌 사람에게 무조건 매혹되니까요. 하지만 조금만 지나보면, 사람을 계속 유지할 만한 생명력도 능력도 없는 것이 드러나고 맙니다.

 

그리고 소위 과학의 발견들이 속속 이루어지고 있어 우리 조상들의 케케묵은 믿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스스로 입증하지도 못할 것들을 대담하게 주장하고, 무턱대고 믿을 것을 요구합니다. 여러분과 제가 우리의 성경을 제쳐두고, 소위 과학자들의 항상 변하는 가르침에 따라 우리의 믿음을 형성시켜야 한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과학적인 불신앙이든 다른 유의 불신앙이든 담대히 맞서 싸워야 하고, 또한 주의 이름으로 그것과 맞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또 하나의 악이 있는데, 이는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나 매우 언짢은 것입니다. 곧, 분열의 정신이 하나님의 교회에 퍼져가고 있고, 그것이 이곳저곳에서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불화를 조장하는 것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어떤 사람이 회심하게 되면, 자기가 가장 동의하는 교회에 소속되어 그 교회와 연관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곳에 나가기를 원치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회와 아무런 관련이 없이 행하는 그리스도인의 수고는 마치 추수할 곡식을 저장해 놓을 창고가 없이 씨를 뿌리고 거두는 것과도 같습니다. 물론 그 수고들이 유익하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불완전한 것입니다.


정말 진지하게 주목해야 할 네 번째 악은 이 나라에 악행이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두 가지 형태로 자라고 있는데, 그 하나는, 그리스도인이라 고백하는 자들 중에서 세상적인 사고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사치에 탐닉하고 있고, 화려한 습관과 복장과 연회 등에 빠져서 자기들이 청지기들로 맡고 있는 물질들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풍성하게 드린다면, 그 사람이 다른 면에서 풍성하게 소비하는 것을 금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라 여깁니다. 우리는 이처럼 자라나는 악에 대해서 사려 깊고 지혜로우면서도 단호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교회들에서 모든 경건한 자세들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이것 이외에, 술 취함이라는 국민적인 죄악이 이 나라에 계속 증가하고 있는 끔찍한 상황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술값에 들어가는 비용을 보십시오! 그 정도의 비용이 매년 소비되고 있다면, 그것은 정말 술 취함과 범죄, 방탕과 사망의 기록을 끔찍하게 만들어 놓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늘어가는 술 소비의 주원인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제가 보기에는 식품점에서 술을 팔도록 허용한 법령이야말로 현대의 법에서 가장 악법 가운데 하나라고 여겨집니다. 제가 아는 지식으로는, 독주를 아주 손쉽게 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제도 때문에 여자들 사이에 술에 취하는 죄악이 몇몇 경우들에서 나타났고, 또한 어떤 경우들에는 권장되기도 했습니다. 여자들 가운데서 술에 취하는 빈도가 잦다는 것은 곧 술에 취하는 암적인 죄악이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간다는 증거인 것이다.


술 취함 때문에 생겨나는 범죄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빈곤이 생겨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라 전체가 주 앞에서 악취를 풍기고 있고, 이 술 취함의 죄로 더러워져 있습니다. 이 악을 제거하는 일에 그리스도인들이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그 일을 하겠습니까? 목사들이 이를 치료하는 데에 그들의 역량을 최고로 기울이지 않는다면, 세상은 불신앙과 기타 악들에 대해서 외치는 그들의 부르짖음이 매우 진실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늑대를 대항하여 외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사자를 대항하여 싸울 수가 있겠습니까?


이런 것들이 현 시대의 악한 현상들입니다. 그러면 이제 치유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이러한 미신과 불신앙과 분열 현상과 또한 증가일로(增加一路)에 있는 세상적인 사고와 술 취함을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저에게는 오직 한 가지 치유책밖에는 없습니다. 곧, 우리 주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몸의 여러 가지 질병들에 대해서 오로지 한 가지 치유책을 제시하는 것은 사실 돌팔이 의사나 하는 짓입니다. 하지만 영혼의 문제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은 인간의 갖가지 악들이 아무리 서로 다를지라도 그 모든 악들을 다 처리할 만큼 복합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모든 악들에 대처하기 위해서 우리는 오직 살아 있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에서 복음이 충실히 받아들여진다면, 그 복음이 모든 노예 제도와 모든 전쟁을 사라지게 할 것이며, 모든 술 취함과 사회적인 악들을 다 제거할 것입니다. 사실 복음으로 제거되지 못할 도덕적인 저줏거리란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복음의 정신은 우리 이웃의 복지와 관계되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주목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사회의 개혁을 촉진시키게 되고, 그리하여 민족들을 치유하는 나무 잎사귀들이 그 유익한 목적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고수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이야말로 한 가지 보편적이고 결코 실패가 없는 치유책을 강구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의 도리를 전하십시오. 여러분에 대해서 무어라고 하든 단호하고도 확고하게 복음을 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나팔처럼 성경의 진리를 명확하게 선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거기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동시에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배우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들과 동료 교인들이 복음의 증거에 화합하고 또한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마음을 다하게 되도록 그렇게 교회에서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우선, 우리는 복음의 지식에서 자라야 합니다. 복음의 전체를 파악하고 잘 이해해서 전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사소한 것이라 생각하는 문제도 결코 사소한 것으로 여기지 말고, 주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20)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가르치신 대로의 복음 그 전체를 전하시고, 그 외에 다른 어떠한 것도 전하지 마십시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영감된 말씀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도록 열심히 찾고 연구해야 합니다. 그 고귀한 복음이 마치 동굴과도 같아서 성령의 횃불을 들고서 들어가야 그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십니까?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을 이끄사 연구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그 은밀한 깊은 것들을 더 분명하게 보게 해 주실 것입니다.


복음을 잘 전하기 위해서는, 복음에 대한 실질적인 지식에 정통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그런 지식이 있어야 하고, 보통 하는 말처럼 우리의 손가락 끝에까지도 그런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보화들을 나누어주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풍부해야 합니다.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잘 교육받은 서기관들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점을 잘 명심하도록 합시다. 여러분 중에 누구라도 사사로이 행하는 연구와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과 말씀을 깊이 살피는 일을 그저 가볍게 처리해온 분이 계시다면,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미 손에 쥐고 있는 것으로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겠지만, 그것들은 금방 소모되거나 곰팡이가 피어 못쓰게 되고 말 것이니 말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새로운 만나를 모아들이십시오. 날마다 하늘에서 내리는 새로운 만나를 거두어 들이십시오. 만나가 떨어지는 곳에 가지 못할 경우에는 형제의 바구니에서 얻어서 공급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칙은 각 사람마다 자기 스스로 직접 만나를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원하시면 책들에서 빌려오기도 하십시오. 하지만 책을 전해서는 안 됩니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내적인 지식을 많이 얻고, 그 다음 그것을 여러분의 교인들에게 쏟아내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더 깊게, 그리고 더 체험적으로 복음을 대면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체험을 통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면 과연 복음 진리를 알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종들이 그렇게도 많은 시련을 겪게 되는 것이 바로 체험을 통해서 많은 진리들을 진정으로 배우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요? 맑은 날씨에 많은 것을 배우겠습니까? 비바람이 치는 때에 가장 많은 유익을 얻지 않습니까? 병들었을 때에나 가까운 사람을 여의었을 때에 혹은 심령이 침체에 빠졌을 때에야말로, 고요함과 기쁨 속에서는 절대로 배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까? 우리는 기쁨을 통해서는 물론 슬픔을 통해서도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몸소 시험하여 확증한 자로서 그 말씀을 다루는 목사는 교인들이 곧바로 알아봅니다. 심지어 회심하지 않은 자들이라도 그 영혼의 의사의 손길을 감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들에 대해서 직접적인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부패함을 실질적으로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안타까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그 영광스런 능력과 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풍성함에 대해서도 우리 심령 속에서 계속해서 더 절실하게 깨달아 가야 합니다. 능력으로 설교하려면, 그리하여 이 시대의 악한 것들을 대처하려면,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그저 오스트레일리아의 황야에 사는 벌거벗은 사람들에게만 관계되는 그런 것으로 제시한다면,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리가 없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복음을 계속해서 순전하게 유지해 가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음의 지극히 간단한 초보적인 도리들을 자주, 매우 자주, 가르쳐야 합니다. 영국에 그렇게도 많은 설교가 있었지만, 수많은 대중들이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을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어린아이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의 기초를 배워야 할 사람들입니다. 영혼 구원에 가장 관련이 깊은 그런 주제들을,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유익이 되는 그런 주제들을, 중점적으로 가르치십시오. 언제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긴밀하게 전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과 또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는 도리를 계속해서 지적하십시오. 이것들을 올바로 전할 때에 언제나 하나님의 인정하심이 함께 할 것입니다. 모든 진리 하나하나가 다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하나를 정당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진리들을 제쳐두고 부차적인 진리에 치중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영혼들이 구원받게 해야 합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야말로 수백 가지의 고귀한 사색이나 가르침보다도 무한히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들을 가르치느라 수백 번의 주일을 허비하는 것보다도,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 무한히 더 고귀한 것입니다.

저 유명한 베르나르(Bernard:1090-1153)에 대해서 한 가지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그가 어느 날 어느 교회에서 놀라운 언변과 시적인 언어로 멋지게 설교했답니다. 모든 교인들이 거기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런데 설교가 끝나자, 베르나르는 근심스런 표정을 지으며 교회당을 나가버렸습니다. 그는 황야로 들어가 홀로 밤을 지새우며 금식하며 자기의 슬픔을 달랬습니다. 그 이튿날, 설교 시간에 그는 다시 강단에 올라가 그저 평범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 전날 그의 설교를 들은 귀족들은 그 이튿날의 설교가 아주 초라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비천한 백성들은 그의 말을 이해하였고 거기에 잠겼습니다. 비판하는 자들이 형편없는 설교라고 비난했지만, 그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고 교회당 밖을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즐거운 마음으로 빵을 먹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가서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말하기를, “어제는 내가 베르나르를 전했으나,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라고 했답니다. 여러분, 교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면 여러분의 마음이 기쁠 것입니다. 누가 눈살을 찌푸리든, 여러분은 편안히 잠자리에 들 것입니다. 여러분의 주님이 여러분을 인정하셨을 것이니 말입니다.


복음에 충실하십시오. 더욱더, 더욱더 복음을 충실하게 지켜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십시오. 다른 어떠한 것도 말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전하십시오. 교인들에게 그리스도로 가득 채워 주십시오. 몇몇 사람들이 복음에 질려서 역겨운 지경이라고 불평을 해도 전혀 개의치 마십시오.

복음에 대한 설교와 복음이 행하는 일에 대한 설교들을 지금까지 수없이 들어보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이 아무것도 보탠 것이 없는 상태에서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이 이룬 일과 복음이 장차 이룰 일에 대해서 놀라운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정말 굉장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복음에 대해서 설교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는 복음 그 자체를 설교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죄를 깨닫는 일에 대해서 묘사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서 즉시 죄를 깨닫는 일을 일구어 내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믿음에 이어 생기는 평안을 묘사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사람이 믿어야 할 진리 그 자체를 증거하여 그들로 하여금 여러분이 묘사하는 그 평안을 실제로 누리도록 만드시기 바랍니다. ‘말만 하는’ 설교는 적어야 하고, ‘행하는’ 설교가 더 많아져야 합니다. 사람들의 영혼과 안타까운 마음으로 씨름하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 우리는 더욱더 단순하고도 명확하게 전하도록 항상 힘써야 할 것입니다. 어느 유명한 설교자는 화려하고도 위엄 있는 언어를 구사하고 세련된 문장을 구사하여 때때로 젊은이들이 그 스타일에 매료되거나 거기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보이는데, 여러분은 이런 것을 언제나 혐오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멸망으로 향하는 죄인들에게는 시나 고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 바로 여러분의 임무입니다. 그 점을 명심하기를 바랍니다. 병사가 싸움에도 이길 수 있고 동시에 아름답게 노래도 할 수 있다면, 노래를 부르도록 하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노래를 하다가 원수들에 대한 공격을 놓치는 일이 발생하면, 노래는 즉시 중단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젊은 군사 여러분, 노래를 던져버리고 말안장에 올라타십시오! 강단을 여러분의 군마(軍馬)로 여기시고, 싸움에 몰입하여 용맹스럽게 좌우를 내리치십시오. 그리하면 돌아올 때에 뒤늦게 온갖 화려한 행렬을 이끌고 나갔다가 그저 수치스럽게 돌아온 영웅보다 대장께 더 큰 존귀를 얻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지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곧, 복음이 이 시대의 악을 대적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강단에서 내려와 있을 때의 우리의 삶이 복음을 모범으로 보여 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형제들 중에는 그들의 자기 부인과 자기 희생의 삶을 통해서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 주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한 형제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년 수입이 이십 파운드밖에 안 되는 직분이지만, 저는 그것을 위해 저의 직장을 버렸습니다. 그 직분이 제가 더 폭넓게 유익을 끼칠 수 있는 자리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른 사람이 세워놓은 기초 위에 집을 짓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새로운 영역을 정복해나가겠습니다”.

이 얼마나 귀한 각오인지요!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 찬양합니다. 여러분에게 열심이 있고, 가난을 이기는 끈기가 있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으니 말입니다. 주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분들에게서 사도들과 순교자들의 정신이 나타난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마음이 기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온갖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그것에 대해 하나도 자랑하지 않으며, 누구도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데도 묵묵히 그 일을 감당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그 일을 계속하십시오. 필요 이상으로 고난을 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그러나 여러분의 고난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기쁨으로 고난을 당하시기 바랍니다. 정복하기 위해서 몇몇의 희생이 없을 수가 없을 경우라도, 한순간도 머뭇거리지 말고 기꺼이 자신을 희생시키십시다. 성벽 바깥 도랑을 죽은 시체들로 가득 채우지 않고서는 도저히 성을 정복할 수가 없다면, 우리가 그 도랑으로 뛰어듭시다. 가난이나 조롱이나 힘든 수고가 있더라도 절대로 움츠러들지 맙시다. 성채 꼭대기에 그 옛 깃발이 올라가야 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류가 발로 짓밟혀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합시다. 그것은 여러분이 정말 열심히 섬겨 마땅한 대의(大義)입니다. 하루에 천 번 피를 흘려 순교한다 할지라도, 여러분이 섬겨 마땅한 대의인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대의요, 그리스도의 대의요, 인류의 대의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전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이 이 멸망을 향해 가는 세상을 구원하도록 돕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여러분으로 하여금 그 복음의 정신으로 살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반드시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복음으로 가득 차도록 힘쓰십시다. 언제나 제 스스로 발견하는 일입니다만, 제가 성경 본문 속에 누워서 그것으로 흠뻑 젖어 있을 때에 가장 좋은 설교를 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본문을 얻고, 그 의미와 의의를 찾습니다. 그리고 그 본문으로 목욕을 한 후에, 그 속에 누워서 그 본문에 저를 흠뻑 적시도록 합니다. 그렇게 하면 본문이 저를 부드럽게 하고 견고하게도 하고, 여하튼 그 본문이 제게 해야 할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다음에 그 본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본문의 정신이 여러분을 가득 채우게 되면, 어떤 특정한 단어나 문구의 미세한 의미에 대해 개의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생각들이 떠오를 것이고, 자기들에게 맞는 옷을 스스로 찾게 될 것입니다. 본문의 향기에 흠뻑 젖어드십시오. 그러면 그 향기가 여러분에게서 풍겨나게 될 것이고 사방으로 퍼져갈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가리켜서 기름부음(unction)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과의 교제 속에서 사는 형제의 말씀을 듣기를 정말 사모하지 않습니까? 단 몇 분만이라도 그런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그가 섬기는 주님처럼 그의 길에서 향기가 나기 때문입니다.


진리 안에 거하십시오. 그리고 진리가 여러분 속에 거하도록 하십시오. 진리의 정신과 영향력으로 세례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 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복음을 믿지 않으시면 그것을 설교하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은 근본적인 자질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믿더라도, 마치 양초 심지가 기름을 흠뻑 빨아들이는 것처럼 여러분이 복음에 흠뻑 젖기 전에는 복음을 전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복음에 흠뻑 젖어들어야만 복음의 불을 밝히고 빛을 드러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복음은 그저 믿음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그것이 저의 존재와 뒤엉켜서 저의 의식의 일부가 되었고, 저의 생각의 일부가 되었고, 그래서 절대로 제게서 떼어낼 수가 없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옛날 정통 신앙고백을 믿는 믿음은 제게 있어서는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계속해서 제시되는 온갖 새로운 견해들을 세세히 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청을 거절합니다. 그런 견해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것들 속에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거나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이는 것을 찾을 수가 없고, 그저 인간 본성을 높이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온갖 형식들이 그 간교한 재주로 나의 믿음을 공격한다 해도, 나는 그것들을 허무요 거짓말이라 부를 것이요, 복음으로 내 마음을 온전히 묶으리로다

 

복음의 진리들이 이미 우리의 삶이 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체험이 그 진리들을 우리의 존재와 하나로 묶어 놓았기를 소망합니다. 고난 가운데서 스스로 낮아지십시오. 그러면 오로지 은혜로운 진리들로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간절히 부탁하거니와 그 옛 복음을 붙잡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영혼이 그것을 가득 채워지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그 복음의 불길에 휩싸이게 되기를 바랍니다. 심지가 기름으로 흠뻑 젖게 되면, 불을 붙일 수 있습니다. 하늘로서 임하는 불이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합니다. 소멸하는 불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 속에서 불길을 일으키시기를 바랍니다. 그 옛날 호렙 산의 가시덤불에 불이 붙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다른 모든 조건이 동등할 경우, 하나님의 불을 가장 많이 지니고 있는 사람이 가장 많은 일을 할 것입니다. 그 불이라 불리는 것은 미묘하고도 신비하기 그지없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을 지닌 힘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모든 힘의 원동력이 되는 힘인 것 같습니다. 태양에서 나오는 빛과 열기가 모든 힘의 근원이니 말입니다.


여러분, 온갖 악들이 널려 있습니다. 그것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악들을 제거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책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욱더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에 힘써야겠습니다. 어디에서나 그리스도를 전합시다. 할 수 있으면 책도 쓰시고, 능력이 닿는 대로 무엇이든 합시다. 그러나 다른 어떤 일을 다 하지 못하더라도, 오직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마귀는 복음 전하는 일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설교만큼 그를 두렵게 만드는 것이 없습니다. 설교야말로 우리의 위대한 무기입니다. 그러니 그 무기를 끊임없이 사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설교야말로 주님이 쓰시는 대포입니다. 옛 바벨론의 성벽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강력한 무기인 것입니다.

여러분, 설교에 충실하십시오. 그 일을 계속하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설교할 수 없을 때까지, 설교하고, 설교하고, 설교하고, 설교하고 설교하십시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우리가 하늘로 올라가 거기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며, 천사들에게 구속의 사랑의 그 신비한 것들을 알게 할 때가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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