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론

목회론(6) '빛, 불, 믿음, 생명, 사랑'

새벽지기1 2016. 7. 1. 13:29

빛, 불, 믿음, 생명, 사랑

 

넬슨 제독은 트라팔가 해전에 임하여 “영국이 기대하는 것은 바로 각 사람이 자기의 임무를 행하는 것입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저도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의 위대하신 주님께서, 그가 다시 오실 때까지 직분을 담당할 그의 종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선하고 충성된 종이 되기를 기대하신다는 사실을 굳이 다시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나아가서 주님의 그 고귀한 부탁을 이루십시오!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속에서 일하셔서 여러분의 주님께 선한 기쁨이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독일의 한 위대한 철학자는 인생이란 모두 꿈에 불과하다고 단언한 바 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인생은 꿈 그 자체로 되어 있는 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무엇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존재도 믿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기가 품고 있는 것도 그저 하나의 생각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목회 사역을 담당한 사람들 중에 과연 그런 철학의 제자들이 틀림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절반쯤 잠들어 있고, 그들의 정신이 꿈속을 헤매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들은 영원한 진리를 마치 일시적인 믿음의 체계로서 이 땅의 다른 모든 비전처럼 사라져갈 것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산다고 하지만 그 자세를 보면, 돈을 벌려는 사람이나 대학에서 학위를 따려는 사람에게서 보이는 열심과 수고조차도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느 목사에 대해서 말하기를, “내가 내 사업을 그 목사처럼 했다면, 석 달 내에 반드시 망하고 말았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스스로 그리스도의 목사들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최상의 부지러함과 열심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니, 정말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사역에 따라 영혼들이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되기도 하고 영원히 구원받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주님의 그 고귀한 피로 값을 치르신 영혼들인데 말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소명의 본질을 이해한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사신이라는 성경의 개념을 제대로 파악한 것 같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꾸벅꾸벅 졸면서 수레를 끄는 사람들처럼, 그들은 스스로 졸린 목소리로 이야기하면서 자기의 팀이 안전하게 집에까지 당도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크로케 게임이나 크리켓 게임을 할 때나, 소풍을 갈 때나, 아니면 바겐세일을 할 때에 가장 활기가 넘치는 목사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진리에 대해서는 졸고 있고, 그림자에 대해서는 깨어 있습니다. 하찮은 일들에 대해서는 진지하고, 엄숙하고도 중대한 사실들에 대해서는 하찮게 여깁니다. 자기들의 일은 잘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형편없이 하는 종들에게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실지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자기의 오락에는 큰 능력을 보이면서도 자기의 본연의 임무에 대해서는 무디고, 자기의 소명 바깥에서는 능동적이며, 자기의 소명에 대해서는 지리멸렬한 사람을 도대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날이 그것을 밝히 드러낼 것입니다. 우리 모두 철저하게 충성을 다하여야겠습니다. 마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전적으로 우리게 달려 있는 것처럼 그렇게 열심히 수고하고, 그러면서도 뒤로 물러서서 영원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이 달려 있다는 영광스러운 사실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지금보다 어떻게 더 복음을 더 많이 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자주 설교하고 있거든요”라고 이야기할 형제분이 있습니까?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자주 설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매 설교마다 복음으로 더 가득 채우십시오.” 주님은 혼인 잔치에서 “항아리를 물로 가득 채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인들은 “아귀까지” 가득 채웠습니다. 여러분, 그 하인들을 닮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설교가 내용으로 가득 차야 하겠고, 건전하고도 은혜로운 복음으로 가득 가득해야 할 것입니다. 교인들에게 풍성한 사상을, 풍성한 성경을, 견고한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점점 더 나은 방식으로 전달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해마다 나아져서 하나님께서 더욱더 영광을 받으시고 죄인들이 구원의 길을 더욱더 쉽게 배우게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목회 사역을 온전케 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여러분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다섯 가지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그 다섯 가지는 바로 빛, 불, 믿음, 생명, 사랑입니다. 그것들의 가치가 측량할 수 없을 정도이니, 손으로 든든히 붙잡아야 할 것이고,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것들을 지니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Ⅰ. 여러분, 빛을 소유하시고 또 나누어주시기를 진정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 빛을 얻어야 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빛이 있더라도 그것을 얻으십시오. 빛은 다 좋은 것이니까요.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교육은 매우 가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게으름을 피우는 형제들이 있다면 이 방면에서도 열심을 내라고 자극을 주고 싶습니다. 저와 친한 로저스 목사님은 이미 팔십이 지나셨는데도 여전히 공부하는 분입니다. 어쩌면 과거 어느 때보다 지금이 공부하는 자세가 더욱 충실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니 젊은 사람이 자신에 대해 만족하고 앉아 있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겠습니까? 우리는 심지어 천국에서도 배우기를 계속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그 끝없는 심연(深淵)속을 더욱더 깊이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 땅에서 완전한 지식을 운운한다는 것은 정말로 잘못된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더 고상한 종류의 빛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여러분,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여러분의 본연의 임무입니다. 성경과 또한 신학을 이해하도록 도움을 주는 책들을 공부하지 않는다면, 다른 것들을 아무리 연구한다 해도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이런 사람은 마치 의사가 되기를 준비하면서 온 시간을 천문학을 연구하는 데에 보내는 어리석은 사람과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연구하고 우리 자신의 마음을 연구해야 합니다. 섭리와 체험의 학교에 학생들로서 앉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체험을 통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지나가기도 합니다. 어느 청교도가 논쟁을 하는 중에 노트에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주여, 빛을 더 비추어 주옵소서! 더 많은 빛을 주옵소서!” 우리는 이 청교도의 기도를 본받아야겠습니다. 그러나 이 빛이 지식의 빛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기쁨과 즐거움의 빛을 구해야겠습니다. 즐겁게 행하는 목회 사역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울한 얼굴이나 애수에 찬 목소리나 지쳐 있는 자세는 교인들에게 결코 좋지 않습니다.

 

여러분, 빛을 풍성하게 받으십시오. 그리고 받은 다음에는 그것을 나누어주십시오. 지식이 없이 그저 진지함만 있으면 된다거나 열심을 내기만 하면 영혼들이 구원을 받게 된다는 식의 생각에 빠지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지성에 진리가 들어와서 양심에 닿음으로써 영혼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복음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떻게 영혼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설교자가 발을 동동 구르며 손으로 내리치고 외치고 간청하며 열정적으로 설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미한 진리의 음성이 지성 속에 들어가야 하고 그리하여 마음에 닿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가르쳐야” 합니다(마28:19-20). 여러분의 편에서 가르침이 없고 또한 그들의 편에서 제자가 되는 일이 없다면, 과연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방도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설교자들은 아는 것은 굉장히 많으면서도 실제로 많이 가르치지를 않습니다. 아주 복잡한 스타일로 말씀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말씀을 듣는 교인들이 마치 어린아이와 같다는 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들 대부분은 하나님의 일들에 대해서는 아직 어린아이의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진리를 받아들이려면 매우 분명하게 전달되어야 하고, 쉽게 지니고 갈 수 있도록, 또한 기억에 오래 남도록 그렇게 포장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 예수님을 왜 믿는지를 아는 신자들로 가득한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성경을 믿으며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아는 사람들로, 은혜의 도리를 믿으며 그 진리들의 함축된 의미들을 아는 사람들로, 자기들이 어디에 있으며 또한 자기들이 누구인지를 알며, 그리하여 빛 가운데 거하며, 그리하여 어둠의 주관자에게 속임을 당할 수 없는 사람들로 교회가 가득해야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목회 사역 가운데 풍성한 가르침이 있도록 하십시오. 설교를 그 내용보다는 말로써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지식과 깨달음으로 언제나 교인들을 먹이십시오. 여러분의 설교가 견고해져서, 굶주린 자들에게 필요한 양식이 되며, 병든 자들에게 치료가 되며, 어둠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빛이 되어야겠습니다.

 

Ⅱ. 여러분의 사역에서 하늘의 불을 많이 모으고 또 사용하기를 부탁드립니다.

 

미지근한 것보다는 차라리 지나치게 뜨거운 것이 사람들에게 훨씬 낫습니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계3:15)라는 말씀은 여전히 그리스도의 말씀이며, 다른 사람들은 물론 설교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무엇보다도 우리의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있어야 합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마치 눈보라 속에 있거나 아니면 얼음 창고 속에 있는 것 같은 설교를 듣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분명하지만 차갑고, 질서정연하지만 영혼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 설교를 들으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말씀을 잘 쪼개고, 준비도 잘된 설교로구나. 하지만 도대체 왜 저런 설교를 하는지 알 수가 없구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곧, 장작은 있는데 그것을 활활 타게 해 줄 불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주 탁월하면서도 속에 마음이 들어 있지 않은 그런 설교는 웨일스에 있는 저 거대한 용광로를 생각나게 해 줍니다. 사용을 하지 않아서 정말 애처로운 처지가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대단한 재능이나 깊은 사상은 없어도 도가니에서 바로 나온 활활 타며 흘러내리는 녹은 금속처럼 타오르는 그런 설교가 더 낫습니다. 사실상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에 설교에서 주가 되는 것은 바로 에너지라는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제단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처럼, 불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복음을 진정 믿기 때문에 말씀하시고, 그 능력을 몸소 느끼기 때문에 말씀하시고, 여러분이 전하는 그 진리의 영향력 아래에서 말씀하시고, 하늘로부터 임하신 성령과 더불어 말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 결과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조심스럽게 기억해 둘 것이 있습니다. 곧, 우리의 불길이 반드시 위로부터 지펴진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불이 지펴지게 해야 합니다. 우리 주 하나님과의 엄숙한 교제 가운데서 나오는 그런 진정한 불이 우리에게서 지펴져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과 제가 그 불을 진정 소유하여 그로 말미암아 완전히 태워져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우리 자신을 드린 존재들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다시 뒤로 물러선단 말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온전한 번제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우리 자신의 존재가 닳아 없어져야만 다른 이들에게서 생명을 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거니와 동시에 영적인 법칙이기도 합니다. 씨앗이 자기를 소모하고 소모하여 스스로 없어지기까지 하여야만 열매가 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패함에게 먹히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집을 향한 열정에게 먹히든지, 우리는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주저할 필요가 하나도 없습니다. 주를 섬기는 일을 위해서 열정적으로 힘을 다해야 할 것이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열정으로 우리의 뇌와 마음과 생명을 다 쏟아야 할 것입니다. 존귀와 영광에 대한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이러한 헌신을 실행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존재들로서 우리는 불꽃처럼 타올라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평생의 사명을 제쳐두고 다른 곳에서 남다른 것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어리석은 짓이요, 결국 황폐함이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오직 하나님만을 위하여 존재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여러분 자신을 굴복시키고, 오직 하나님 안에서 여러분의 부귀와 명예와 여러분의 모든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완전한 헌신의 불길이 여러분들에게 일어나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열기 속에서 마치 녹아서 빛을 내는 은(銀)처럼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Ⅲ.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아니,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믿음이라고 말씀드려야겠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히11:6)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재능으로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는 바가 확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믿음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계시가 전혀 필요 없다고 믿습니다. 다른 빛이 있어야 한다는 사상은 실제로 현재의 빛에 대한 불신앙입니다. 왜냐하면 진리의 빛은 오직 하나밖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경스런 자들이 성경을 왜곡시키고 뒤틀리게 만들어왔지만, 성경은 여전히 무오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바를 겸손히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신앙의 주된 부분인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이 세상에서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경배의 최고의 형태는 바로 우리의 정신적이며 영적인 존재 전체를 계시된 하나님의 뜻 앞에 굴복시키는 것이요, 그의 거룩하신 임재 속에서 우리의 이해력을 무릎 꿇리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은 바로 주 우리 하나님 앞에 엎드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시48:14)고 말씀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옛 복음을 위하여 죽기까지 싸우십시오. 바로 그 복음이 여러분의 생명이니 말입니다. 지식에서 자라가면서 여러분이 어떠한 표현을 사용하든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면에 세우시고, 또한 그 주위에 모여 있는 모든 복된 진리들을 마음을 다하여 견지하시기를 바랍니다.

 

신조(信條)가 확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뿐 아니라 끊임없이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우리에게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자신은 모르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아신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대언자가 계시다”(요일2:1)는 느낌을 갖는 것이야말로, 여러분 자신은 손가락 하나도 들어올리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 속에서 여러분의 모든 일들을 이루신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야말로, 진정 복된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우리 주님께 전적으로 굴복시키며, 하나님의 뜻과 길에 대해 온 마음으로 만족하며, 주님의 임재하심과 능력에 대해 확실히 의지하는 것이야말로 제가 아는 한 천국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복락이요 절대로 빼앗기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기쁨입니다.

 

조지 뮐러(1805-1898)의 말씀을 들을 때면, 단순한 어린아이처럼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그의 모습이 언제나 저에게 큰 충격을 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들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기에는 너무나 위대해져 있습니다! 다른 어느 누구만큼이나 설교도 잘 할 수 있고, 어느 누구만큼이라도 설교문을 잘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실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조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의 능력을 시험해볼 기회밖에는 하나님께로부터 얻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진정한 처지를 증명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무능력을 보게 만드실 것입니다.

 

Ⅳ. 이제 네 번째, 생명입니다.

 

설교자에게는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 속에 생명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 모두 살아 있습니까? 목사로서 과연 진정 살아 있습니까? 어떤 형제들을 보면, 전혀 살아 있는 것 같아 보이지를 않습니다. 머리는 살아 있습니다. 지성이 있고 열심히 공부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냉랭하고, 무감각합니다. 어떤 설교자들은 전혀 기회를 찾지도 않습니다. 그들의 눈에 죽음이 완전히 드리워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혀도 절반쯤은 죽어 있어서, 더듬거리며 말문이 막혀 있습니다. 그들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 시간 잠이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발끝에서부터 머리 꼭대기까지 완전히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머리와 마음이 함께 살아 있고, 혀와 손이 함께 살아 있고, 눈과 귀가 함께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살아 있어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모든 임무들에서 살아 있기를 힘써야 합니다. 순교자 존 브래드퍼드(1510?-1555)는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철저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또한 주께서 그 일에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절대로 그 일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이 원칙을 양심적으로 이행하기를 바랍니다. 죄를 고백하는 데 있어서도, 여러분의 눈물이 주님의 발을 씻었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계속해서 고백하십시오. 죄 사함을 구하는 일에 있어서도, 여러분이 하나님과 화목되었음을 성령께서 증거하시기까지 계속해서 구하십시오. 설교를 준비하는 일에 있어서도, 그 속에서 그리스도와 교제를 나누기까지, 여러분이 전하고자 하는 그 진리의 능력을 여러분 스스로 느끼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시기까지 주님을 바라십시오.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더욱더 풍성한 생명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직분의 모든 의무들에게까지 흘러 넘쳐야 합니다. 기도에서, 찬송에서, 설교에서, 그리고 심지어 예배 후에 나누는 악수와 인사말에서조차도 뜨거운 영적 생명이 드러나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살아 있어서 여러분의 생명을 퍼뜨리시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생명으로 충만해 있기를 바라고, 또한 그 생명이 여러분의 일상적인 대화에서 드러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목사가 선한 교인들에게서 “우리 목사는 강단에서 행한 것을 술집에서 다 뒤집어 버린다네. 설교는 매우 잘 하는데 그의 삶이 그 설교와 전혀 맞지 않는다네”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것은 정말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온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온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다 거룩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일곱 배나 더한 의무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하지 못하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우리 양 떼들에게 선한 모범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살도록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그렇게 되면, 생명이 우리에게서 다른 이들에게로 전해질 것입니다. 영혼을 살리는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바로 그 자신이 살리심을 받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이 집회에서도 생수가 우리 속으로 흘러 들어와서, 다시 우리에게서 수천의 다른 사람들에게로 흘러 들어가 그들이 축복을 누리며, 또한 그것을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이 바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7:3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한 것이라”(요7:39).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가장자리까지 가득 채우시고, 그리하여 흘러넘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우리가 이런 생명을 소유해야 합니다.

 

우리 중에 게으름 피우는 형제가 있어서 모든 일을 천천히 행한다면, 그를 깨워 일으킵시다. 우리 중에 누구라도 자기의 임무를 돈을 받고 억지로 하듯 그렇게 생명이 없는 자세로 행한다면, 그 사람도 깨워 일으킵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주를 섬겨야 합니다. 마음에도 없이 그저 억지로 끌려가는 태도는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죽은 시신을 장사지내십시오! 살아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려면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왕성하고도 강렬한 생명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마22:32).

 

Ⅴ. 마지막으로 제가 말씀드릴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이 풍성해야 합니다. 어떤 설교자들 중에는 천성이 딱딱하고 냉랭하며 거칠고 이기적이어서 설교를 사랑으로 가득 채운다는 것이 매우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개중에는 사랑의 면에서 특별히 결핍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의 말씀처럼, 사람들의 영혼을 위한 “본성적인 보살핌”이 그들에게는 없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만, 특히 사랑하기가 힘든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거룩한 사랑을 드러내는 일이 배나 더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나 울리는 꽹과리 이상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능력입니다. 성령께서는 대부분 우리의 사랑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믿음이 많은 일을 이루지만, 사랑이야말로 믿음이 주님의 이름으로 그 바람을 이루는 실질적인 도구인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일을 사랑하십시오. 여러분 자신의 일에 매혹되지 않는 한, 절대로 설교를 잘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교인들을 사랑하지 않는 한, 절대로 그 어떤 교회에서도 목회를 잘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만,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일을 마음으로 사랑하고 또한 우리가 함께 사역하는 그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별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그 일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그 일에 대한 열광적인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절대로 예외가 없는 철칙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목회 사역을 통해서 영구한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영혼을 향한 열렬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그 어떠한 것으로도 보상할 수가 없습니다. 영혼 구원이 여러분의 열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하여 태어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불철주야 그것에 관심을 두어야 하고, 그것이야말로 여러분의 삶에서 가치 있는 유일한 일이어야 합니다. 마치 스위스의 사냥꾼이 정신없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산양을 좇아가듯이, 그렇게 영혼을 좇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열렬한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오! 우리가 그 사랑이 풍성하신 주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살면서 항상 그의 사랑을 우리 가슴으로 느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으면, 사람이 자기의 일을 포기해버릴 지경에서도 끝까지 인내하며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마음 전체를 주님께 드린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5:14)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일에 대한 사랑과 영혼들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온갖 어려운 시련들을 기쁨으로 견딜 것입니다. 여러분, 사례비가 적다고 해서 목회지를 떠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불쌍한 교인들을 누군가는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때가 어렵다고 해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날마다 나아질 것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필요를 잘 알고 계시니 말입니다.

 

도시에 전염병이 돌아서 사람들이 도피할 때에, 그 도시에 그대로 남아서 병든 자들을 섬긴 분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여러분의 교인들과 더불어 지내십시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박애주의에 충실한 것처럼, 여러분의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십시오. 어떻게 해서든 현재의 고난을 이겨나갈 수 있다면, 목회지를 지키고 교인들을 지키십시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여러분에게 있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우실 것이요, 또한 여러분에게 상급을 베푸실 것입니다.

 

여러분, 동일한 복음을 계속해서 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날마다 더 큰 믿음으로 전하고, 날마다 더 잘 전하시기 바랍니다. 뒤로 물러서지 마십시오. 그리고 작은 곳에 있는 분들은 더 큰 영역을 위하여 스스로 자격을 갖추십시오. 그러나 더 나은 자리를 탐하느라 연구를 게을리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언제라도 길이 열리면 나아갈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직분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직분이 맡겨진다는 것을 확신하기를 바랍니다. 등불을 됫박 속에다 감출 수는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정 유능한 사람을 하찮은 직분에 계속 썩힐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역을 위한 자격, 은혜, 능력, 성실함, 그리고 사랑의 기질 등이 목회자를 결정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종을 그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앉히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행하는 힘든 일에 대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목회사역에서 그저 쉽게쉽게 행하며 시간을 보낸 자들에게는 끔찍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를 위하여 모든 일을 견디는 자들에게는 큰 상급이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새롭게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거룩하게 드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굴복시키는 것,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목표입니다. 주께서 이 산 제물을 받아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