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론

목회론(2) '앞으로!'

새벽지기1 2016. 7. 1. 13:25


앞으로!


오늘 아침 드릴 말씀의 요지는 하나님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라”(출14:15). ‘앞으로’ 이것이 계속해서 여러분에게 쟁쟁하게 울리도록 하십시오. 뒤로 물러가는 것은 곧 멸망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제 쓰임받는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전진합시다. 우리에게 놓은 유일한 길은 이랑의 저 끄트머리까지 계속해서 밭을 갈아 가는 것이요, 주께서 우리를 집으로 부리시기까지 절대로 밭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버림받은 자들이 아닌 이상 우리는 평생을 주를 섬기는 일을 위하여 자신을 드린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표시가 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종들로서, 그의 표시를 우리의 몸에 지니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존재를 섬길 자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군병들이 된 것입니다. 오로지 앞으로 전진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그 외에는 달리 길이 없습니다. 함께 군사 된 여러분, 우리는 숫자가 적습니다. 우리 앞에는 처절한 전투가 놓여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 각자가 최선을 다하여 싸움에 임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여러분 자신의 능력에 있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겠고, 은사와 은혜에서 자라야 하겠고, 하나님의 일을 위한 강건함과 또한 예수님의 형상을 닮는 일에 있어서도 자라야 하겠습니다.


Ⅰ. 우리가 정신적인 능력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최악의 상태로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절대로 합당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최선의 상태를 드려도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의 게으름으로 인하여 흠이 있고, 점이 있는 상태를 하나님께 드린단 말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가능한 최고의 상태로 우리를 올려놓아야 합니다. 우선 지식을 모아들여서 곳간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분별력을 발휘하여 곡식더미를 타작으로 쳐서 가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타작이 된 알곡을 견고한 노력으로 창고에 쌓아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정보를 얻기에, 특별히 성경에 관한 정보를 얻기에 힘써야 합니다.

여전히 우리의 주요 관심사는 성경을 연구하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장장이의 주요 업무는 말굽을 제작하는 것인데, 황금으로 허리띠를 만들어 천사에게 채워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말굽을 만들어 말에다 끼워주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대장장이로서는 실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탁월한 시를 짓는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성도들에게 위로를 주고 죄인들에게 죄를 깨닫게 해 주는 효과를 내는 건전하고 설득력 있는 설교를 하지 못한다면, 시를 짓는 능력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연구하십시오. 얻을 수 있는 도움은 모조리 동원하여 철저하게 연구하십시오. 이전보다는 지금 일반 그리스도인들이 접할 수 있는 보조 수단의 폭이 매우 넓어졌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니 청중들보다 앞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훨씬 더 훌륭한 성경 학도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모든 지식에 관심을 기울이십시오.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야로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신학에 대해서도 올바른 지식을 지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한 도리들을 철저하게 습득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성경을 강해하는 일에 탁월한 능력을 지니도록 합시다. 저는 성경을 강해하는 설교만큼 오래 가고, 또한 교회를 세우는 데에 확실한 역할을 하는 것이 없다고 확신합니다. 여러분의 목회 사역이 오랜 세월 동안 유익을 끼치려면 반드시 성경 강해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여러분 스스로 말씀을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또한 사람들이 말씀으로 세워질 수 있도록 그 말씀을 강해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에 정통한 사람들이 되십시오.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글은 정말로 친숙하게 접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라”(참조, 골3:16).

그 이외에 다른 분야에 대한 지식도 소홀히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자연을 통해서, 혹은 과학자의 일기를 읽거나 여행가의 항해 일지를 읽어도 거기서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오래된 식물도감이나 연금술 교범도, 마치 삼손의 죽은 사자처럼 여러분에게 꿀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자연의 역사와 식물학이 많은 유익을 줍니다. 지질학 혹은 역사는 굉장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세계의 각 부분이 다 고귀한 가르침을 주는 것입니다.

시간과 기회와 능력이 닿는 대로 모든 지식을 습득하십시오. 너무 지나치게 높은 수준을 갖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에 지식을 습득하는 일에 주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은혜가 충만하면 학식이 있다 해도 우쭐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지식을 습득하여 그것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이런저런 것들을 서로 분별하기를 항상 배워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는 이 점을 더욱더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기한 것들을 좇아가고, 새로운 것마다 매력을 느낍니다. 그러니 진리와 거짓을 판단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곁길로 가지 않을 것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옛 가르침을 그대로 고수합니다. 마치 바위에 딱 달라붙어 있는 따개비들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옛날의 오류들을 고수하는 것밖에 아무것도 아닐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여야 할 것입니다(참조, 살전5:21). 선명한 눈을 주셔서 진리를 바로 보고 또한 그 의미들을 분별하게 해 달라고 주님께 구하면서, 동시에 자기의 능력을 끊임없이 사용함으로써 정확한 판단을 지니게 된 사람은 과연 하나님의 백성들의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모든 목사들이 다 그런 자격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아무것이나 진지하게 가져다주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뻔뻔스럽게도 겉으로 신실한 것처럼 꾸미고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영적인 돌팔이 의사가 주는 이런저런 약을 그냥 그대로 삼켜버립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라”(고전14:20)고 했습니다. 저도 똑같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믿으라고 하면서 어떤 내용이 주어질 때마다 항상 그것이 진리인지 시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께서 선과 악을 분별할 능력을 주시기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양 떼들에게 독이 든 풀들을 먹이는 일이 없게 되고, 그들을 안전한 초장으로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그 배운 바를 그대로 유지하고 견고히 붙잡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스스로 바람개비인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견고히 붙잡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실, 그들에게는 그렇게 붙잡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제는 믿었으나, 오늘은 믿지 않습니다. 내일에 가서도 믿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늘 변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달이 계속 변하듯 그들의 믿음도 계속해서 변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확실하게 가졌으면, 그것을 확실하게 붙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진리를 받아들일 자세를 갖추십시오. 단, 그것이 과연 진리라면 말입니다.

그러나 태양보다도 더 나은 빛이 발견되었다는 식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데에는 매우 조심하셔야 합니다. 신문팔이 소년들이 날마다 새로운 석간 신문을 뿌리고 다니듯이, 새로운 진리를 거리에 뿌리고 다니는 사람들은 전혀 무가치한 사람들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오늘날 ‘현대 사상’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영혼에게 말할 수 없는 악을 끼치고 있습니다. 무수한 영혼들이 정죄를 받고 있는데도, 이 사람들은 계속해서 이론들을 만들어내는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지옥이 그 문을 활짝 열어서 무수한 사람들을 삼키고 있는데도, 구원의 소식을 전하여야 할 사람들이 ‘새로운 노선의 사상을 추구하는 데’에 여념이 없습니다. 제발, 사람들이 어떻게 구원받는지를 알고서 그 일을 붙잡읍시다. 온 나라가 기근으로 죽어가고 있는 때에, 빵을 굽는 합당한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계속 왈가왈부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끔찍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제는 우리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이미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사직을 그만두어야 할 것입니다.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딤후3:7)라는 말씀은 최악의 사람들의 모토인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의 모델이 되어야겠습니까?

여러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만, 알기에 힘쓰십시오. 그리고 알고나서는 분별하기에 힘쓰시고, 또한 좋은 것을 취하시기를 바랍니다. 진리를 알아야 하고, 그것을 깨달아야 하고, 그것을 견고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을 섬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Ⅱ. 설교에 필요한 요건들에 있어서도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원대한 디자인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어떠한 것도 하찮은 것일 수가 없습니다. 조그만 못 하나가 없어도 말은 발굽을 잃게 되고, 전쟁에 나갈 수가 없게 되고 맙니다. 발굽은 땅을 딛는 쇠로 된 하찮은 기구에 불과하지만 아무리 말이 목을 우레로 무장하고 있다 할지라도 발굽이 없으면 그 모든 것이 소용이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성품이나 영성에 있어서는 문제가 없어도 정신적으로나 언변에 있어서 실패해 버리면, 영적인 유익을 끼치는 면에서 돌이킬 수 없이 망해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 모두 어떤 설교자가 하는 것과 똑같이 설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설교를 도저히 참기 어려울 정도로 못하는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분들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든지, 아니면 잠을 자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잠을 자게 만드는 효과에 있어서는 그들의 설교가 어떠한 수면제에도 뒤지지 않습니다. 그 어떠한 사람도 무한한 인내의 은사를 받지 않은 이상 그들의 설교를 끝까지 들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설교의 은사가 없는 것이 분명한데도 자기의 소명을 잘못 깨닫고서 목사가 된 분들을 모두들 주변에서 보아오셨을 것입니다. 혹시 다른 사람이 여러분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일이 없는지 확실히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설교의 능력에서도 전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또한 명확한 스타일을 배양하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게 납득시키지 못하면, 그것은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자기 자신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교인이 설교자의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탓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설교자를 탓해야 합니다. 설교자의 임무는 문제를 명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니 말입니다. 여하튼, 명확하게 말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가르치는 진리들을 듣는 이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설교에 생수가 있다면, 매우 깊으면서도 진리의 빛이 그것을 명확하게 드러나게 해 줄 것입니다.


또한 명확한 스타일과 더불어 설교의 힘을 배양해야 합니다. 청중에게 힘을 발휘하여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말을 크게 하면 그렇게 되는 것처럼 상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내용의 탁월함을 통해서 힘을 주어야겠습니다. 우리가 설교 속에 던져 넣는 영적인 에너지를 통해서 청중을 설득하여야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의 말이 자연스럽고도 살아 있는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전문적인 연설가들이 쓰는 트릭과 의도적인 효과나 절정 혹은 미리 계산해 놓은 중지, 극적인 효과 같은 것은 이미 버렸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 땅에는 그런 식으로 인위적으로 화려한 것을 추구하는 설교자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머지않아서 그런 설교자들이 멸종된 짐승들처럼 사라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살아 있고, 자연스러우며, 단순한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기를 배우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스타일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스타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것들 중에서도 설득력을 배양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사람들에게 크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그보다 더 큰 재능들이 있으면서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능력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것 같고, 그들을 사로잡지 못하며, 그들로 하여금 느끼도록 만들지를 못하는 것 같습니다. 설교를 하는 중에 마치 듣는 이들을 하나씩 단추 구멍 속으로 집어넣는 듯 진리를 그들의 영혼 속에 곧바로 집어넣는 설교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저 대충 얼버무리고 전반적으로 냉랭하여, 듣는 이들이 그 설교자가 마치 먼 나라에 사는 사람이어서 청중들의 일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그런 설교자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을 설득하는 능력을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주님을 자주 뵈오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옛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군병이 다리우스 왕을 죽이려 하자, 어린 시절부터 벙어리였던 그의 아들이 깜짝 놀라며 갑자기, ‘저분이 왕이시라는 것을 아지 못하느냐?’라고 소리쳤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랑이 극진하여 맺혀 있던 혀가 풀렸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본다면, 우리의 혀도 그렇게 풀려서 진지한 설교가 나오게 될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의 두려우심을 안다면, 그로 인하여 사람들을 설득하도록 자극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을 설득하여 예수님께로 나아가게 하는 분들을 주의 깊게 살피고 그들의 비결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도 그와 동일한 능력을 얻기까지 절대로 쉬지 마십시오. 그들이 매우 단순하고 꾸밈이 없어 보이는데도 그들이 진정 쓰임을 받는 것이 드러나면, 여러분 스스로 ‘저것이 내게도 적용되리라’고 이야기하십시오. 그러나 반대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설교자의 설교를 들으나 자세히 살펴본 결과 그의 사역으로 인하여 영혼이 회심하여 구원받는 역사가 없다면, 여러분 스스로 이렇게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 ‘나 스스로 우대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진정 쓰임 받기를 원하니, 이 스타일을 본받아서는 안 되겠구나.’


그러므로 여러분의 설교가 명확함과 힘과 자연스러움과 설득력에 있어서 언제나 진보하여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 스스로 청중에게 잘맞는 그런 설교 스타일을 익히도록 힘쓰십시오. 많은 것이 거기에 달려 있습니다. 지식 수준이 높은 교인들에게 설교하면서 과일 행상을 하는 사람들에게 말할 때 쓰는 언어를 사용하는 설교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 어리석은 자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반대로, 탄광촌의 광부들에게 말씀을 전하면서 전문적인 신학 용어를 사용하고 응접실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처럼 바보 같은 짓이 없을 것입니다. 휫필드(1714-1770)는 설교의 가장 큰 대가처럼, 사람의 계층에 따라서 그들의 처지에 맞도록 말씀을 전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말의 힘에 있어서 절대로 남에게 뒤지지 맙시다. 우리의 혀는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여 사용하라고 우리에게 주신 검입니다. 이 검을 예리하게 갈아야겠습니다. 말의 힘을 배양하여, 언어의 땅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뒤지기 때문에 이런 권면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상당한 은사가 있는 것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은사를 완전하게 만드는 데에 전력을 기울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Ⅲ. 우리는 도덕적인 면에서도 더욱 진실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목회를 위하여 최고의 자질을 얻기를 바랍니다. 정신적인 자질과 설교의 자질을 얻었다 할지라도, 높은 도덕적인 자질을 소유하지 못하면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우리의 모든 감정과 습관을 합당하게 절제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지도자들이 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 탐닉이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니 이 들릴라의 손에 망하는 일이 없도록 두려움으로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자기가 중요한 존재라는 모든 생각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며, 외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하지 말지니라”(잠27:2). 또한 우리의 격한 감정들을 잘 제어해야 합니다. 감정은 모가 난 연장이어서 그것을 다루다가 다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급하게 끓어오르기를 잘하는 분이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무에게도 유익이 되지 못하고 오직 마귀만 좋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경박스러워지는 성향을 정복하여야 합니다. 거룩한 쾌활함은 덕스러운 것이지만, 전반적인 가벼움은 악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한낱 직업꾼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진지한 사람들에게 주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동시에 우리는 편협스러운 고집과 비슷한 모든 것을 피해야 할 것입니다. 이 외에도 사소한 잘못이 실패의 근원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의하십시오. 여러분을 더 많이 쓰임받도록 만들어 주는 것은 그 어떠한 것도 사소한 것으로 여기지 마십시오. 그리고 잘못된 것들을 제거하는 것과 더불어, 특정한 도덕적인 기능들과 습관들을 배양해야 합니다. 심령의 순전함이 없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지 못합니다.


또한 용기라는 위대한 도덕적 특징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말하는 용기란 올바른 일을 조용히 행하고 말하며, 아무도 좋은 말을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모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항상 곧게 나아가는 진정한 용기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엇에도 굴하지 않는 인내, 끈질긴 열정과 신성한 끈기, 자기 부인, 거룩한 부드러움, 강인한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한 가지 능력에 뛰어나십시오. 즉, 부르심을 받은 그 사명에 온 힘을 집중시킬 수 있는 능력에 뛰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모으고, 여러분의 모든 기능들을 집합시키고,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키고, 여러분의 역량을 결집시키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존재 전체를 예수 그리스도께 포로가 되게 하시고, 여러분을 위해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그분의 사랑스런 발 앞에 모든 것을 다 내어놓으시기를 바랍니다.


Ⅳ. 이 모든 것보다도, 우리는 영적인 자질에 있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성령께서 친히 우리 속에서 역사하셔야 할 은혜들입니다. 확신하건대,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심이 되는 문제입니다. 다른 것들도 소중합니다만, 이것이야말로 가장 귀중한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나 그리스도 바깥에 있는 사람이나 가리지 말고, 사람을 알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최상의 상태를 살피시고, 사람의 최악의 상태를 살피십시오. 그 사람의 구조나 그 사람의 비밀이나 그 사람의 감정들을 알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자격 요건 가운데서도 다른 모든 것들보다 우선되는 것은, 인간의 모든 질병들의 확실한 치료가 되시는 그분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아십시오. 그의 발 아래 앉으십시오. 그의 본성과 그의 사역과 그의 고난과 그의 영광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그의 임재 속에서 즐거워하며, 날마다 그와 함께 교제를 나누십시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야말로 모든 학문 가운데서도 최고의 것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안에 거하십시오. 가끔씩 그에게 나아가지 말고, 그 안에 거주하십시오. 예수님이 비치지 않는 곳에서는 영혼이 병들어 있는 법입니다. 주의 빛 가운데 다시 들어가면, 주님을 섬기는 일에 왕성한 힘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우리의 모든 생각과 탐구의 위대한 대상으로 삼는다면, 우리의 탐구에는 한계가 없고, 우리의 생각의 방향에도 편협함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지식의 결과로서 우리는 강한 사람들이 되어야 할뿐더러, 또한 우리 주님을 닮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게 되면, 우리의 목회 사역에 놀라운 기름 부음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정신적인 자격 요건에서 부족하다 할지라도, 설교의 능력에 있어서 매우 부족한 상태라 할지라도, 거룩에 의지하십시오. 거룩한 삶이야말로 그 자체가 놀라운 능력으로서 갖가지 모자란 부분들을 채워줄 것입니다. 사실상 거룩이야말로 최고의 사람이 행할 수 있는 최고의 설교인 것입니다.


Ⅴ. 실질적인 사역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말보다는 우리가 행한 일들이 결국 우리의 진면목을 드러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사실이 있다면 우리는 별을 쳐다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힘써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하십시오. 계획은 그만 마치고 무언가 일을 해야 할 때입니다. 간절히 바라거니와 여러분 모두 행동의 사람들이 되십시오.


Ⅵ. 여러분의 활동 범위를 선택하는 문제에서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이방 세계의 무수한 사람들을 위하여 기꺼이 헌신할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선봉에 설 담대한 심령들이 없습니까?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