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론

목회론(1) '믿음'

새벽지기1 2016. 7. 1. 13:24

 

믿음


예수를 믿는 자들로서 우리는 모두 믿음의 혈통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는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육체를 따라서나 본성을 따라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난 자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언약이 있습니다. 사도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언하였듯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약속들이 주어졌으니,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3:16, 29)라는 것이 이미 결정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자, 여러분, 우리가 믿음의 혈통에 속해 있고, 언약의 특권들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도 믿음에 속해 있으며, 우리의 삶이 그 시작부터 계속해서 모두 믿음에 속해 있는 것처럼, 우리의 목회 사역도 믿음에 속한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시내산의 율법이 아니라 골고다의 사랑을 전하는 사자들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할 일은 “이것을 행하면 너희가 살리라”라는 명령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받으리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역은 은혜로운 믿음의 사역이지, 사람을 뒤쫓는 것도 아니요 육체적인 계명의 율법을 따르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의 공로를 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설교의 대상은 -물론 설교의 가르침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바로 믿음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죄인들을 믿음으로 인도하기 전에는 우리가 그들에게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자라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설교가 그들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인정할 뿐입니다. 믿음이 우리에게는 씨를 뿌리는 능력이 되며 또한 우리가 뿌리는 씨도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믿음 안에 담겨져 있는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의 이랑 속에서 믿음이 돋아나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이 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수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 삶 전체와 또한 우리의 목회 사역의 모든 일과 얽혀 있는 것이 바로 이 믿음의 교리요 또한 믿음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분명해야 합니다. 이것이 매우 작은 일이지만 이 일에 강건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아브라함처럼 믿음에 강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스데반처럼 믿음이 충만하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의 사역은 특별히 믿음을 요하는 것입니다. 믿음에 실패하면 차라리 사역을 하지 않은 것이 더 낫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우리의 봉사와 함께 가지 않으면 곧 지쳐서 쓰러지고 맙니다. 주를 위한 섬김에서 성공한 모든 예들을 잘 살펴보면, 대부분이 믿음이 그만큼 강건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왜냐하면 “네 믿음대로 될지니라”라는 것이 예외 없는 하나님 나라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쓰임 받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하며, 크게 쓰임을 받으려면 큰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필연적인 법칙인 것입니다.


쓰임을 받는 것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 즉, 진리의 원수들을 상대하여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기 위해서도, 또한 우리의 직분을 둘러싼 갖가지 유혹들을 대적하여 능히 서기 위해서도 믿음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로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풍성한 믿음을 지니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 옛날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믿음을 갖고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서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한 것입니다(히11:33-34).


1. 목사인 우리들에게는 과연 무엇을 믿는 믿음이 절실하게 필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습니다(히11:6). 인격적인 존재이시오 영원토록 동일하신 ‘스스로 있는 자’이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목적과 계획을 지니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엡1:11). 우리는 세상과 그 거민들을 자기들 마음대로 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신 분으로 생각하지 않고 삶의 모든 일들 속에 계속해서 관여하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늘 계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안에와 우리 주위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서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입니다. 또한 모든 일에서 그의 뜻을 견고하게 이루어 가시는, 일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분명히 선한 일뿐 아니라 악하게 보이는 일에서도 자신의 계획을 이루시며, 무한하신 그의 지혜로 택하신 목표를 향하여 모든 일 가운데서 그의 영원한 병거를 몰아가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 하나님께서 자신이 말씀하신 모든 것에 신실하신 것을 믿고, 거짓말을 하시거나 변덕을 부리시는 분이 아니신 것을 믿습니다. 전능하시며 언약을 지키시는 여호와 바로 그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시48:14).


둘째로,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에게 지극하고도 진지하게 초점을 맞춘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신뢰합니다. 영감된 성경의 역사가 그에게 관하여 말씀하는 모든 것을 믿습니다. 그에 관하여나 그의 생애에 관하여 신화를 만들어내지 않고,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체로 사람 가운데 거하셨다는 것을, 또한 성육신하신 하나님께서 골고다의 십자가에 진정으로 속죄를 행하셨다는 것을 틀림없는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동시에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신다”(히7:25)는 것을 믿습니다. 또한 그는 지금도 금촛대 사이를 다니시며 그의 오른 손에 별들을 쥐고 계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참조, 계1:13, 16). 또한 우리는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하늘로 올리신 것과 똑같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때와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합니다(벧후3:12). 그때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며 그 육체들이 무덤에서 일어날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또한 성령님도 똑같이 신뢰합니다.

우리는 그의 신성과 인격성을 어김없이 믿습니다. 과거 오순절 날 사도들에게 행하셨듯이, 지금 이 순간 성령께서 우리를 능력으로 옷 입혀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우리의 설교에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하루에 천 명이 거듭나는 역사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과연 믿으십니까? 우리 모두 그렇게 믿고 있다면 우리는 사도들과 한 무리에 속할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을 믿는 충만한 믿음이 우리에게 있을 때에, 비로소 우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질” 것입니다(엡6:10).


넷째로, 우리는 복음의 교리들을 믿습니다.

우리는 계시된 진리의 확실한 것들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스스로 ‘진보의 사람’이라 자처하는 자들은 복음에 물을 타는 일이 진행됩니다.(목사의 여정을 포도원에서부터 로마까지의 포도주 통의 비유) 조금씩 진리를 포기해 가고 그 빈 자리에 사람의 견해와 사색과 이상들을 가져다 채웁니다. 인간의 지혜의 말과 자기들이 만들어낸 사색들을 갖고서 많은 사람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을 사람들에게 주어야 할 것입니다. 각 사람이 미가야 선지자처럼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왕상22:14)라고 선언하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것을 지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면, 그리고 성경의 영감성을 믿는 것이 미친 짓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세상 끝까지 어리석은 자들로 남아 있기를 택하며 또한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기 위해서 택하신 세상의 어리석은 자들 사이에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참조, 고전1:29).


다섯째로, 우리의 믿음은 복음의 도리들과 복음의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이며, 또한 기도의 능력을 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음성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들으신다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가 무릎을 꿇는 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귀에 우리의 필요를 말씀드리면, 그의 귀가 마음의 느낌으로 이어져서 그의 손이 우리를 위하여 일하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참된 기도는 참된 능력인 것입니다.


여섯째로, 우리가 복음을 전할 우리의 사명을 믿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소명을 받았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은 청중에게 요구하고 명령하며 확신 있는 자답게 나아갈 것입니다. 자기의 존재나 자기의 말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거나 용서를 구하지 않고, 주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담대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이니 말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이 모든 것을 기반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곧 우리가 부족하지만, 양들의 위대하신 목자장께서 우리에게 충족함을 허락하셔서 그것으로 그의 백성들을 먹이게 하신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만유에 충족하신 하나님을 믿으므로, 우리는 우리의 보리떡과 물고기가 늘어날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창고에 그냥 두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밖으로 나가서 그것들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모든 것을 우리 영혼으로부터 쏟아 붓도록 합시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역사가 우리 편에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분별합니다. 우리가 일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도 함께 일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편에 역사하는 힘이 강단에만 한정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주 동안 내내 하나님께서는 보살피심과 고통과 어려움을 통해서, 때로는 기쁨과 위로를 통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우리에게 가르치도록 사명을 주신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준비를 갖추어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또한 어려움이 극복되어 성공을 촉진시킨다는 것을 믿게 해 줍니다. 우리는 어려운 것들이 우리에게 크게 거룩하게 작용하며, 그것들은 그저 더 큰 결과로 향하는 디딤돌로서 우리 앞에 주어지는 것뿐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실패도 믿습니다. 성공이 없는 것이 결국 더 크고 더 고상한 일을 위하여 우리를 준비시켜 준다는 것도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부족한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발판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 안에서 즐거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이 구원을 이루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어리석은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이 그 복음에 대해서 코웃음을 치지만, 우리의 복음이 과연 진리라면 그것이 전면에 드러날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의 사역의 효력은 마치 남태평양의 푸른 바다 속에서 자라는 산호섬보다도 더디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산호초는 자라나고 있고, 그 밑에 깔려 있는 엄청난 기초 위에서 표면을 향하여 자라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고는 영원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뢰 가운데서 기다리며 인내로 우리의 시대를 견딥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일을 따지듯이, 하루하루의 진도로 우리의 일을 따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은 하나님의 일이요 따라서 하나님 자신의 표준으로 따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시간과 창조된 것들과 주의 진리를 거스르는 모든 것들은 반드시 사라질 때가 올 것이지만, 진실하게 전해진 모든 설교와 간절히 드린 모든 기도와 정직하게 행해진 모든 형태의 그리스도인의 섬김은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이루기로 작정하신 그 위대한 구조물 속에 그대로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Ⅱ. 우리의 믿음이 우리 속에서 어떤 일을 행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믿음은 우리 속에서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는 영광스러운 자세를 일구어냅니다.

진정으로 돕는 자들의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기대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믿고, 또한 성령을 믿는 사람은 오직 주님만을 기대어 서 있는 법입니다. 독불장군처럼 홀로 있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그러면서도 스스로 주님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이고, 또한 인간적인 대부분의 도움이 있을 때에도 여전히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는 데에 힘쓰는 것입니다.


둘째로, 참된 믿음은 그 어떠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를 우리에게 줍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 여러분이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전할 사명을 부여받았고 또한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임하여 계시다는 확신을 갖는다면, 마땅히 매우 담대하게 말씀을 전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기에 우리의 소명도 그만큼 존귀하게 여기게 되며, 또한 비겁한 행동으로 그 소명을 더럽히는 일은 감히 하지 않을 것입니다.


셋째로, 참된 믿음은 선한 행실에서도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믿음이 있는 곳에는 얼마 가지 않아서 반드시 풍성한 선행이 함께 있게 되는 법입니다. 복음을 믿는다고 이야기하면서도 그 믿음이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하는 것은 마치 몇 년 전 토스카나의 해변가에서 암초에 걸려 좌초된 배와도 같습니다. 토스카나의 해안 경비병은 정말 애처롭게도 배가 좌초되었다고 상부에 보고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배에 타고 있는 승무원들에게 나의 확성기를 이용하여 가능한 모든 도움을 주었으나, 안타깝게도 이튿날 오전 해변가에 여러 구의 시체가 쓸려나왔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계시며, 그러면서도 더 많은 것을 하려고 힘쓰고 계십니까? 그리스도인이라면 자기가 할 수 있는 이상을 하고 있어야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상태보다도 더 나아가며, 그보다도 더 나아가려고 힘쓰는 것입니다.


넷째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큰 환난을 견디며 자기 부인을 실천하게 할뿐더러, 동시에 여러분의 사역에서 인내하도록 해 줍니다.

온갖 어려움을 견디며 주를 섬기기 위해 열심을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외형적인 성공을 누리지 못해도, 여러분의 사역이 하나님께 아름다운 향기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믿음만이 목회 사역에서 끝까지 인내하도록 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탐나는 보수가 보장되어 있는 그런 직업이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의 마음을 크게 확대시켜 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개방성 내지 포용성).그리고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봉사에 강한 사람들입니다. 또한 믿음은 우리를 새롭게 해 줍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의 온갖 지치고 괴로운 것들을 가볍게 해 줍니다.


Ⅲ. 우리의 믿음이 오늘 아침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그 기초가 확실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에게는 복음의 진리들이야말로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혹시 학식 있는 사람이 성경을 뒤집어엎을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듣더라도, 결코 움츠러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근거가 확실하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으니, 또한 그 믿음이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습니다. “마치 내가 꿈인 것처럼 나를 대하지 말라. 잔뜩 움츠러들어서 숨을 죽여서 메시지를 전하지 말라. 그것을 대적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이니 그것을 담대히 증거하라!”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진리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의 믿음은 우리에게 “내가 너희를 속인 적이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이라도 여러분을 실망시키신 일이 있습니까? 환난의 날에 여러분에게 등을 돌리신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주의 팔에 기대었을 때, 과연 그것으로 충족하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까? 언제나 신실하신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믿음은 “나의 범위를 더 넓혀라. 네 하나님을 훨씬 더 신뢰하라”

우리는 아직 그저 무릎 정도의 깊이 밖에는 믿음 속에 잠기지 못했습니다. 가슴까지 차도록, 아니 그보다 더 깊이 차도록 계속 깊이 들어갑시다. 믿음은 이렇게 소리칩니다. “내 아들아, 내가 너로 하여금 말씀을 더 잘 전하게 할 것이니 나를 신뢰하라. 더 힘써 수고하고, 더 담대하라. 교회의 집회에서 네 스스로 싸우지 말고, 네 하나님께 맡기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 저 입이 더러운 사람에게 나아가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에게 이야기할 합당한 말을 네게 줄 것이니라. 나를 신뢰하고 저 어두운 악의 소굴로 들어가라. 분별을 갖고서, 또한 열정을 갖고서 그리로 들어가라. 지극히 악한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의 구원을 구하라. 네가 하나님을 신뢰하면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넷째로, 믿음은 “나를 먹이라! 나를 먹이라!”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먹고 삽니다. 하나님의 진리로 믿음을 먹이십시오. 모세가 믿음이 있었는지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사십 일을 산 위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다면, 우리가 믿는다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의심한다는 것이 정말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주께서 이 신학교에 믿음을 부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세워지고 부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곧, 반석 위에 세워지고, 또한 은혜 언약의 축복들이 부어지기를 기도합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이제 믿음과 완전히 결속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제 물러서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곧 전진해야만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앞에 온갖 위험 요소들이 놓여 있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계속 전진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발걸음을 돌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근본 도리들을 포기한다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 남겠습니까?


형제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오. 보십시오. 하나님의 천사들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선봉에서 우리를 이끌고 계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46:7).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46:2-3).

아아, 복된 믿음이여! 하나님, 더 큰 믿음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