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교리강좌(2)

제 12 장 회 심

새벽지기1 2016. 6. 18. 06:22


12 장 회 심

 

1. 회심이란 무엇인가?

 

회심은 새로운 본성이 옛 모양의 삶을 그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첫 번째 행위이다. 그것은 중생한 영혼이 무엇인가로부터 무엇인가를 향해 이동하는 첫 번째 행동이다. 회심은 영혼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인식하는 첫 번째 단계이며, 중생을 통해 받은 새 생명이 처음으로 행동하고 나타나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 좋다.

 

회심은 분명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이것을 말해주는 구절이 많이 있다.

18: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육에서 나와야 한다. 육적인 상태에서 돌이켜 다른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회심이 필수적이다. 날 때부터 그리스도인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모두 죄 가운데 태어났고, “죄 중에 잉태되었으며(51:5),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2:3)였다. 우리 모두가 원죄와 원죄책 아래 있기 때문에 회심을 경험해야 한다.

 

회심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회심의 동인은 무엇인가?

회심은 무엇보다도 성령의 사역이며, 성령은 효력 있는 부르심을 통해 그 일을 하신다. 그 부르심은 우리를 다음 단계, 즉 우리의 행동으로 이끈다. 인간의 행동을 처음으로 언급한다. 회심을 무엇이라 정의하든 하나님이 하시는 일 뿐 아니라 사람의 행동도 언급해야 한다.

부르심은 효력있게 임하며, 부르심에 효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 대해 무언가를 한다. 부르심과 반응, 이 두 측면이 회심이다. 중생과 연합에서 우리는 완전히 수동적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마음 속에서 행하시는 성령의 역사이다. 하지만 회심에서 우리는 행동하고 움직인다. 부르심을 받아 행하는 것이다.

 

2. 회심의 특성

 

일시적 회심의 문제

우리 주님은 일시적인 뭔가가 일어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셨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 문제를 다루셨고 사람들을 멀리하시는 것처럼 보였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8:19-20)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13:20-21)

그는 말씀을 즉시 기쁨으로 받는다. 이것이 바로 제가 말한 일시적인 회심의 의미이다. 그는 말씀을 받은 듯이 보인다. 그는 기쁨으로 충만했다. 하지만 그의 안에는 뿌리가 없었고, 그 때문에 결국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것은 우리 주님이 직접 주신 가르침이다. 이렇게 기쁨으로 회심하고서도 생명력 있고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수 있으며, 그 회심은 일시적이었음이 증명된다.

 

8장의 마술사 시몬의 이야기. 13절에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23절에 악독이 가득했으며,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셔서 회개하게 해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이 낫겠다고 베드로는 말한다.

딤전 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아신다. 하나님은 속지 않으신다.

일시적 회심이 진정 무엇인지 성경의 가르침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딤후 2: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6장과 히 10장의 고전적인 본문의 경우

한 번 빛을 받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6:4,6)

이 사람들에게는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 깊이 생각해야 하고, 정의를 내려야 한다. ‘반짝인다고 다 금은 아니기때문이다. 우리 주님과 영감된 사도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겉으로는 회심인 것처럼 보여도 분명히 회심이 아닌 경우가 있다.

 

거짓 회심도 존재한다.

일시적 회심의 경우는 그 회심이 성경의 진리가 전해진 결과 일어난다는 것이다. 거짓 회심의 경우에도 비록 그리스도인의 회심과 극히 유사해 보이긴 하지만, 이것은 진리가 아닌 다른 동인에 의해 발생한 현상이다.

 

오늘날처럼 이 구분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적은 없다. 어떤 사람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나는 한 그것은 틀림없이 참된 회심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자기 인생과 생활방식과 경험에 있어서 커다랗고 심오하고 극적인 변화를 한 삶이라 할지라도 기독교와 아무런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이것이 거짓 회심인 이유는 그들에게 회심의 필수적 요소인 진리와의 관계 맺음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오로지 현상에만 관심이 있고,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삶 전체가 완벽하게 변했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관심이 있다면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은 오직 심리학책을 보는 것뿐이다. 심리학은 요 몇 년간 큰 인기를 끌면서 기독교의 믿음을 아주 강력하게 공격한다. 그래서 제가 이 문제를 이토록 염려하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다 미소를 지을 것이다. ‘우리는 당신에게 심리학적 변화와 경험이 일어났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을 일으키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라고 말하고는 계속해서 기독교 전체를 무시할 것이다.

 

3. 회심의 구성 요소

 

1) 모든 회심이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회심은 잡자기 일어나야 하는가?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한가?

시간의 요소는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2) 회심 사건은 언제나 극적인 것은 아니다.

16장 단 한 장만 읽어 봐도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빌립보 간수의 경우는 극적 요소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루디아의 경우는 극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 극적인 성질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다.

 

3) 회심에 수반되는 감정의 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가장 감정을 잘 드러내는 사람이 언제나 가장 감정을 많이 느끼는 사람은 아니다. 감정은 분명 존재하지만, 특정한 강도나 형태의 감정을 고집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4) 참된 회심은 나이에 관계없이 일어난다.

 

5) 회심을 규격화시키고 일정한 원리를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다.

만일 우리가 다양할 수 있는 문제를 하나의 변하지 않는 원리로 규정하고 그것을 고집한다면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커다란 해를 줄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이 우리의 특정한 기준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회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우리는 성경을 넘어서서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일이 없도록 대단히 주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마음 속에 분명한 정의를 갖고 있는 것이 얼마나 중대하고 필수적인 일이겠는가!

 

6) 회심의 영구적이고 필수적인 요소

그것은 성경에 분명히 나와 있다. 이 사실은 저를 정말로 전율하게 만든다. 성경의 가르침에는 놀라운 일관성이 있다. 모든 교리는 서로 일관성을 유지한다. 우리가 성경의 인도에 자신을 맡긴다면 앞에서 말한 것을 뒤에서 부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제가 정말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교회사 가운데 위대한 부흥이 일어날 때마다 항상 반복되어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다. 어느 세기에 일어나든지 그 일이 하나님의 역사라면 동일한 표식이 있을 것이다. 부흥의 역사를 읽어 보면 언제나 비슷한 특징들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든 부흥은 바로 사도행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신앙의 참된 표식은 언제나 1세기의 신앙이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다! 기준이 되는 형태가 존재한다. 역사는 언제나 부흥에 이러한 위대하고 본질적인 요소들이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 준다.

 

회심한 성도 각 사람의 역사들 역시 그러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언제나 같다.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그들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똑같아야 하며, 언제나 그러했다. 여러분은 초창기와 중세, 종교개혁의 시기, 청교도 시대, 18세기 복음주의자들 등 여러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읽어 보실 수 있다. 그들은 언제나 똑같다. 한 사람을 보면 다른 사람이 생각난다.

 

7) 회심의 유일한 필수 요소는 회개와 믿음이다.

회심에는 두 개의 필수 요소가 있으며, 이들은 복음서, 사도행전, 서신서 등 성경 모든 곳에서 강조된다. 바울은 행 20;21에서 이것을 한 문장으로 말한다.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이것이 회심이다. 회개와 믿음, 즉각적이건 점진적이건 상관 없다. 회개가 있어야 한다. 믿음이 있어야 한다. 둘 중 하나가 없다면 회심이 아니다. 둘 다 필수적이다.

 

8) 회개가 믿음에 선행한다.

믿음이 회개보다 먼저 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 제가 믿음이라고 말할 때는 일반적 의미의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이 사용한 의미 즉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의미한다. 회개하기 위서는 일반적인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에 대해 특정한 일들을 믿지 않으면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며 회개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특별한 의미의 믿음을 의미하고 있다. 그 경우 회개가 믿음보다 먼저이며 바울은 그런 순서로 말한다.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왜 회개가 먼저 와야 하는가? 성경에서는 언제나 회개가 첫 번째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신약의 첫 번째 설교자 세례 요한도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1:4)를 선포했다.

두 번째 설교자 주 예수 그리스도 역시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권하셨다(1:15). 베드로도 오순절날 행한 설교에서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2:37-38).

 

회심의 일차적 요점,

기독교 구원의 첫 번째 사항은 우리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는 것이다. 저는 오늘날의 기독교가 단지 주 예수 그리스도만 다룰 뿐, 그가 우리를 하나님과 화복시키기 위해 그 모든 일을 하셨다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실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신”(고후5:19) 분은 하나님이셨다. 저는 오늘날 복음주의 기독교의 가장 큰 약점은 그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체험에, 행복에, 주관적 상태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모든 영혼의 첫 번째 필요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다. 모든 사람의 잘못된 점은 그들이 하나님과 잘못된 관계에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회개를 먼저 놓아야 한다. 그것이 원래의 문제이며 타락과 원죄의 주된 결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