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교리강좌(2)

제8장 중생: 새로운 성향

새벽지기1 2016. 6. 13. 06:11


8 장 중생: 새로운 성향

 

1. 중생 교리의 중요성

 

1) 효력있는 부르심과 중생의 관계

일반적인 부르심을 효력있게 만들기 위해 성령은 정확하게 무엇을 하시는가? 그 답은 중생이다. 어떤 의미에서 중생은 유효한 부르심보다 선행한다. 다시 말해 부르심이 효력 있게 만드는 것은 그들이 중생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2) 오늘날 중생에 대한 이해의 문제점

중생의 교리는 속죄의 교리와 더불어 비교할 바 없이 중요한 교리이다. 중생의 교리를 분명히 하지 않고는 기독교의 교리와 진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교리가 심각하게, 그리고 한탄스러울 정도로 무시되고 있다. 대부분의 찬송집이 성령에 대한 강력한 교리적 찬송을 담고 있지 않다. 중생의 교리는 절대적으로 중추적인 교리이다.

 

2. 중생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1) 중생을 묘사하는 용어들

중생의 씻음”(3:5)

낳다 혹은 다시 낳다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요일2:29,3:9)

낳음이라는 의미를 전달하는 다른 단어들

(1:18)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살리다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2: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2) 중생의 의미

이 용어가 막연하게 또는 일관성 없게 사용되어 큰 혼란이 있어 왔다. 로마 카톨릭 저자의 경우 신자에게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을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중생은 회심과 구별되어야 한다.

회심은 우리가 하는 것인 반면, 중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일이다.

회심은 어느 하나에서 다른 것으로 실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만,

중생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사람들이 회심할 때 혹은 돌아설 때 그들은 자신들이 중생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회심은 중생 이후에 온다. 사람들 안에서 먼저 위대한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그들의 외적인 삶과 생활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씨를 뿌리는 것과 그 씨뿌림의 결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중생은 생명의 씨를 심는 것을 의미하며, 그로 인해 생기는 결과와는 명백하게 구분해야 한다. 발생과 출생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발생은 출생이 있기 오래 전에 일어난다. 발생은 특정한 과정이 진행된 후 실제 출생의 과정으로 귀결된다. 중생은 출생이 아니라 발생이다.

효력있는 부르심은 실제 출생시에 일어나나, 이것은 발생의 과정, 즉 생명의 씨뿌림이 이미 일어났음이 틀림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생은 영혼에 새로운 생명을 심는 것으로 규정한다. 그것이 중생의 본질이다. 중생은 사람 안에 새 생명의 원리가 심어지는 하나님의 행동으로써 그 결과 영혼을 지배하는 성향이 거룩해진다. 그리고 실제 출생은 이 성향이 첫 번째로 발휘되는 증거를 보여준다.

 

3) 중생시에 일어나는 일의 본질

중생은 인간 본성의 실체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생은 실재하는 물질적 실체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다.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변화이다.

중생이 인간 본성 전체가 완전히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중생한다고 해서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중생은 영혼의 기능이나 본질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영혼의 기능은 지성, 기억, 감정, 의지, 양심이다.

중생은 단순히 도덕적 개혁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의 의지가 변화되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스스로를 개혁시켜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중생은 새로운 영적 삶의 원리가 심어지고 영혼을 지배하는 성향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성향의 전체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혼의 기능들 외에 배후에서 그들을 통제하는 무언가가 있으며, 우리는 것을 성향이라고 부른다. 성향은 우리의 행동과 인격을 결정하는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똑같은 재능을 갖고 있을지라도 선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고 악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그 기능들의 배후에 있으면서 그 기능들을 통제하고 사용하는 이 선한 성향이 그로 하여금 자기의 기능들을 선한 방향으로 사용하도록 만든다. 사람들의 기능들과 능력들을 주관하여 한 사람은 예술적이 되게 하고 다른 사람은 과학적이 되게 하는 것이 바로 성향이다.

 

중생은 하나님이 성령 안에서 우리의 근본적 성향을 변화시키시는 것이다.

나의 인격과 행위, 그리고 나의 기능들을 사용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성향 속에 하나님은 거룩한 원리, 새로운 영적 생명의 씨앗을 집어 넣으신다.

중요한 예는 사도 바울의 경우이다. 다소의 사울 시절의 그는 능력이나 이해력, 의지, 기억력에 있어서 탁월하다. 자신의 모든 능력을 사용하여 그는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교회를 핍박하였다. 하지만 잠시 후 그가 전무후무하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보라. 동일한 능력 동일한 재능, 동일한 인격, 모든 것이 그대로였지만 정반대의 뱡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무엇이 변화되었는가? 변한 것은 바울의 영혼의 기능들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똑같은 열정, 똑같은 논리, 똑같은 철저함, 모든 위험을 무릅쓰는 동일한 담대함 등 그는 분명 이전과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전체 방향성, 전체 경향, 전체 사고방식이 변했다. 그는 다른 사람이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는 새로운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것을 이해해야만 중생과 심리학적 변화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중생할 때 그들이 마치 우표처럼 똑같아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심리학 운동의 희생자가 되면 똑같은 사람들이 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구분이다. 중생이 하는 일은 모든 것의 배후에 있으면서 방향과 방식과 방법을 결정하는 근본적인 성향을 다루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중생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성향의 변화임을 깨닫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중생은 우리 안에 있는 성향의 힘 때문에 이러한 변화는 필연적으로 전인격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나의 성향이 바뀔 때 나는 새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처럼 된다. 성향이 변화되었다고 해서 이전보다 더 많은 지성을 갖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똑같은 지성, 똑같은 마음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지배하는 성향이 변화되었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다른 영역에서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며, 그래서 새로운 마음처럼 보인다. 감정면에서도, 의지면에서도 마찬 가지다.

 

중생은 즉각적인 변화라는 것이다.

발생은 그 정의상 언제나 즉각적인 행동이다. 생명의 씨앗이 수태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한 번의 순간적인 행동이다. 중생에는 중간 단계가 없다. 생명은 심어졌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이다. 점진적이지 않다. 중생이 즉각적이라고 할 때 우리의 자각 여부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 자체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각은 분명 시간의 영역에 속해 있는 반면, 생명을 심는 행동은 초시간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즉각적이다.

 

생명의 씨를 심는 발생과 성향의 변화는 잠재의식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우리가 직접 감지할 수 없는 비밀, 측량할 수 없는 작용이다. 중생에 대해 우리가 첫 번째로 알 수 있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근거를 제시해 보겠다. 니고데모에게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다. “니고데모여, 그건 몇 가지 특별한 사항을 변화시키거나 이해하는 문제가 아니다. 변화되어야 하는 것은 너의 삶을 지배하는 성향이다. 너는 거듭나야 한다. 그것은 네가 사용하려 하는 이 모든 기능의 배후에 있는 어떤 것이다.” “바람이 임으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발생한 것을 알아차려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바람을 깊이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결과는 볼 수 있다.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중생은 분명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적 활동으로서 사람은 전적으로 수동적이며 그 어떤 기여도 하지 않는다.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여러분은 스스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났다. 하나님은 이 원리, 영적 생명의 씨를 심으신다. 우리는 스스로 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발생시킬 수 없다. 중생은 전적으로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이 영적 생명의 원리, 성향에 생긴 이런 변화는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그로 인해 완전히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향이 변하기 때문에 전체 사람이 마치 새로운 피조물처럼 되었다. 그들은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이다. 다른 모든 것을 지배하는 이 근본적인 것이 그들 안에서 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능들은 여전히 이전과 같다. 절대로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려 노력하지 말라. 하나님은 당신이 당신답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을 있는 모습대로 만드셨으며, 그 모습 그대로일 때 하나님을 최고로 영화롭게 할 수 있다. 항상 같은 방식으로 말하고 거의 모든 면에서 똑같은 그리스도인들을 주의하라. 그것은 영적이기보다 심리적인 변화일 가능성이 크다. 각 개인이 자기 모습을 간직했기 때문에 수 세기 동안 사도들과 교회에 영광스러운 다양성이 존재했던 것이다. 모두 함께 같은 구세주와 같은 은혜, 같은 중생과 같은 성향의 변화를 증언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들과 재능들과 성벽들과 능력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얼마나 놀라운 구원이며, 얼마나 영광스러운 구속의 방법인가?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 그분께 합당한 구원의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