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김남준목사

패역을 고친 자의 새로운 삶 / 김남준 목사

새벽지기1 2016. 5. 16. 07:39


패역을 고친 자의 새로운 삶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찌라 내가 저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호14:8)

들어가는 말


본문의 앞부분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그렇게 가지가 퍼지는 것처럼 감람나무처럼 존귀하게 되고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이 감화력이 있는 삶을 살 때 그 그늘 아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돌아오게 된 그들을 하나님께서 백합화 꽃과 같이 아름답게 피어나게 하시고 그리고 그 명성을 레바논으로부터 수입해 들여오는 포도주와 같이 길이 빛나게 하신다는 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불행하고 고통 하는 사람들을 건지는 거룩한 일들을 우리를 통해서 이루십니다. 우리의 패역을 온전히 고칠 때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였던, 받았던 그 수많은 질문가운데 하나가 무엇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많은데 세상이 왜 이렇게 어둡고, 하나님을 믿고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왜 세상이 이렇게 사랑이 없고, 강포와 음란과 더러운 죄들이 이렇게 가득한 세상이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여기서 정답이 나오는 겁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땅을 고치는 것은 인해전술로 고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그 패역을 온전히 고쳐서 정말 하나님의 사랑을 한없이 받는 그러한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이 세상을 고치는 강력한 변화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고쳐지기 위해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세상을 고통하는 세상으로 만드는 궁극적인 원인이 무엇인가 보아야 합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에 마음속에 있는 패역입니다.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그런데 오늘 8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에브라임은 말하기를 나와 우상이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앞 부분이 작은 글자로 되어 있습니다. 성경 히브리 원문에는 안 나오지만 이렇게 해야지 뜻이 통하지 않겠느냐 하는 성경을 번역한 사람의 의견입니다. 그런데 이건 크게 두 가지 생각으로 갈립니다. 하나는 이 성경이 번역하고 있는 것처럼 에브라임이라는 말을 주어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패역을 고친 다음에는 이제 우상을 그렇게 섬기고 우상과 함께 살아온 삶을 다 청산하고 이제는 하나님께로만 돌아간다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에브라임이라는 말은 호칭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에브라임이여" 이렇게 말하고 그 다음에 "내가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가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에브라임이여 내가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패역을 고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더 이상 패역으로 돌아가지 않는 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쐐기를 박듯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에브라임이여 너희는 기억하라 나와 우상은 관계가 없단다"라는 당연한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지 못하면서 산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돌려야할 경배와 사랑과 아름다운 충성, 이런 것들을 우상에게 돌리면서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패역을 다 고친 후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상기하라 나 여호와 하나님은 우상과는 관계가 없단다. 그러니까 이제 너희가 나에게로부터 패역을 고침 받고 나의 진실한 사랑을 물 붓듯 부음을 받게되었으니 이제는 너희는 나와 관계 있는 일을 행하면서 사는 것이 옳지 않느냐"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옛날에 패역을 고치기 전에 이렇게 우상을 섬기면서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이전에 무엇을 사랑하며 살았습니까? 구약적인 의미에서의 우상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속의 우상은 우리에게 얼마든지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 말고 사랑하는 것은 우상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은 우상입니다. 직장이 우상이 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직장에 피해를 안 주는 범위 내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돈이 우상이 되고 나면 돈버는 데 지장이 없는 한도 내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항상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것들이 있으면 바로 그 범위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엇갈리는 논쟁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 끊임없이 오가던 논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나를 버렸다. 너희는 나 대신 우상을 택했다."는 것이고 그럴 때 이 사람들은 항상 하는 반론은 "우리가 언제 주님을 버렸습니까? 우리가 언제 주님 앞에 제사하지 않고 절기를 지키지 않은 적이 있습니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너는 나보다 우상을 더 사랑하구나 너는 나를 버렸구나"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이렇게 대드는 것입니다. "제가 언제 주님을 버렸습니까? 제가 십일조를 떼먹었습니까? 주일 헌금을 안 했습니까? 그렇다고 제가 주일을 빠졌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것이 있는 신앙생활, 어떤 범위 내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은 하나님을 안 믿는 것으로 보십니다. 어떤 범위 내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 이것을 하나님께서 매우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우상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내가 너희의 패역을 고쳤으니 내가 우상과 관계가 없는 것처럼 너희도 이제 우상과 관계없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은 인간의 패역이라고 하는 것은 홍역과 같이 일생에 한번 경험하면 면역이 생기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패역을 고쳐서 우리를 정말 새 사람 만들어 놓아도 또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것이 있고 거기에 매달려서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 똑바로 하지 않으면 다시 우리의 영혼이 곪고 덧나기 시작하면서 깊은 질병에 빠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의 말씀이 우리를 붙들고 있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다시 패역이라는 질병에 걸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삶은 하나님이외의 것들을 과도히 사랑하고 주님보다 더 사랑할 때 그 사랑의 통로를 타고 우리에게 패역이라는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균들이 집단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패역으로부터 고침을 받은 사람들은 정말 우상을 떠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만 사랑하는 길이 여러분들의 영혼과 마음을 지키는 가장 안전한 길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여야 합니다.

은혜의 능력


이스라엘을 보면 우상과 결별할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성경을 읽는 우리의 판단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우상을 끔찍이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우상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우상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그들이 자기의 힘으로 하나님을 붙들며 사는 사람들이었다면 벌써 하나님과 관계없는 사람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우상을 섬기고 극도로 타락한 길로 걸어가도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을 붙잡은 손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손에서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상과 결별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그들의 손에 우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그것을 붙잡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처럼 강하게 붙잡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랑의 비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뜨거운 사랑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붙들기 위해 쫓아가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붙들기 위해서 쫓아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고치고 너희들이 나로 말미암아 고침을 받으면 그렇게 숙명적일 수밖에 없었던 우상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부터 너희가 끊어지고 나만 성결하게 사랑하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끊을 수 없었던 이 세상을 향한 그 뜨거운 사랑들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런 놀라운 능력으로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패역을 고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나오는 사람들에게는 어마어마하게 역사합니다.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끊을 수 없는 과거와 단절하게끔 만들어 줍니다. 꿀처럼 달콤하고 도저히 죽기 전에는 결별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습관, 옛 타락한 방식과 더불어 결별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은혜의 놀라운 능력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전에는 세상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얼마든지 버리면서 비참한 삶을 살았지만 은혜의 능력이 우리의 패역을 끊고 나면 우리는 세상을 자랑하는 대신에 하나님을 자랑하는 사람들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성을 높이는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와 옛 습관, 패역한 옛 생활을 무시할 필요는 없지만 또한 동시에 두려워 할 필요도 없습니다. 문제는 얼마나 커다란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에 붙잡혀서 우리가 변화 받는 삶을 사느냐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능력을 사모하면서 동시에 그렇게 주님만을 사랑하는 삶을 살 때 더 이상 패역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는 신앙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돌아보아"


그러면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저희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저희에게 잣나무와 같이 되리니 저희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의 가슴을 깊이 찌르는 말씀이 '돌아보아' 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돌아본다는 말은 애정을 가지고, 깊은 사랑을 가지고 세세하게 살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패역을 고치고 당신에게로 돌아와서 그런 하나님의 참 사랑을 깨닫고 사랑 안에 거하며 살 때에 하나님이 어떠한 마음으로 그 백성을 돌아보시는지를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와서 지속적으로 패역을 고쳐야 합니다. 고치는 것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릅니다. 은혜 받았어도 옛 삶과 결별 할 때는 고통이 찾아옵니다. 사랑하는 것을 버릴 때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이 있습니다. 때로는 그 통증이 너무 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뻐하십시오. 그 때 하나님은 그렇게 패역을 고치고 우상과 관계를 끊고 살아가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자와 자비를 가지고 돌아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끊고 옛 패역한 삶을 돌이킬 때 고통이 있지만 그렇게 고통을 머금고 하나님 앞에 결단하고 나면 다음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믿음과 담대함이 우리에게 밀려오게 됩니다.


죄와 더불어 싸우면서 흘리는 피는 죄를 짓기 위해서 피 흘리는 것보다 말할 수 없이 값지고 고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그런 사람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깊이 찾아 오셔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보여주시고 고통을 능가하는 위로와 축복을 부어 주십니다. 그렇게 부어주시니까 간증이 생깁니다. "하나님 제가 이번에는 한번 더 고치겠습니다. 주님 더 고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그런 사람을 귀하게 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사람을 모든 사람이 시기 날 정도로 존귀하게 들어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께로 피하는 자들에게 피난처가 되시고 당신에게 도망하는 자들에게 도피성이 되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돌보심을 입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열매를 얻으리라"


이제 마지막으로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들에게 푸른 잣나무가 될 것이요 그들이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잣나무는 굉장히 큽니다. 우리 나라의 잣나무하고는 어떻게 다른지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 책들을 보면 이 나무는 굉장히 큰 것으로 묘사가 됩니다. 그리고 나무가 쭉 뻗어서 그늘을 만들어 주는데 그 그늘이 사람들에게 쉴 곳을 제공해준다고 쓰여져 있습니다.
잣나무 밑은 참 좋습니다. 잣나무 밑에는 벌레가 없습니다. 신기합니다. 소나무 밑에 앉아 있으면 온갖 벌레들이 바지 속으로 다 기어올라오는데 잣나무 밑에 가서 앉아 있으면 없습니다. 그리고 나무가 쭉 뻗어서 올라갑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그런 나무의 그늘이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패역을 고친 사람들에게 피난처가 되십니다. 피난처가 되실 뿐만 아니라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라고 말씀합니다. 히브리 성경에는 "너희가 내 안에서 열매를 얻으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열매는 잣나무로 비유되는 하나님에게서 직접 내려지는 열매를 의미할 수도 있고 혹은 하나님께서 그 나무 아래로 피하는 우리들에게 힘을 주어서 우리의 삶을 통해서 맺혀지는 열매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든지 그것은 대동소이할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피하고 이렇게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많은 열매를 맺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80년 후에 우리는 아무도 이렇게 함께 마주 앉아서 예배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갈 곳으로 갈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 앞에 살다가 잠시 지나가는 인생인데 이 세상에서 무엇을 남기고 가야되지 않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가끔 이런 묘사가 나옵니다. "아끼는 사람이 없이 죽었더라" 그러니까 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죽고 세상을 떠나가도 나를 통해서 이루신 하나님의 일 때문에 내 인생을 돌아보는 사람들마다 내 인생과 함께 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런 삶이 되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은 잠시 세상에 살면서도 영원을 향해 살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열매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관심은 이 세상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 것인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그것으로 너희가 내 제자인줄을 알리라"

맺음말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다시 한번 기회를 제공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패역을 고치고, 패역을 고치고 나면 하나님이 어떤 축복을 주실 것이며, 그런 축복을 주고 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가 우상과 단절된 삶을 살게 하시고 그렇게 살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돌보셔서 마지막에는 어떻게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인가를 우리에게 모두 보여 주셨습니다.
살아가면서 하나님 앞에 큰 기쁨과 영광을 돌려드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너 같은 인생이 이런 놀라운 삶을 살수가 있었느냐 물으시면 그 때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패역을 고치시고 우리에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이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되었사오니 우리의 삶의 열매를 통해서 주님 홀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불붙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자 IV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