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정희교수

둘레길 달맞이

새벽지기1 2015. 10. 3. 05:27

처음 계획은 첫날 주천면 육모정 제 1코스, 이튿날은 가장 아름답다는 3코스 인월, 금계구간이었다. 그러나 전폭적인 계획수정을 했다. 지리산으로 오는 동안 검색을 해 보니 3코스에 있는대정리 '길섶'산방에서 구절초 축제가 오늘 있다는 것.

구절초 축제를 구경가려면 매동마을로 해서 올라가야 했지만 가는 길목에서 마주친 달오름마을에서 운봉길로 오르는 2코스도 궁금했다. 욕심이라 생각하면서도 마을 뒷길로 해서 운봉길을 올랐다. 둘레길은 인간적이다. 천왕봉의 지리산은 장엄하지만 여기 운봉으로 가는 지리산은 소박하고 정겹다.

다시 3코스로 차를 돌려 올라가려니 길이 없다. 걸어 올라가려면 40여분이 필요한데 음악회는 5시부터다. 예기치 않은 상황이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조금 서 있으니 트럭 한 대가 온다.

눈치를 보니 산중턱에서 보내온 특별마차이다. 십여 명이 순식간에 올라탔다. 허어! 2미터도 안돼 보이는 산길을 잘도 올라간다. 교행도 되지 않는 좁은 길, 내심 마음 졸였지만 산중턱에 올라서니 갑자기 널따란 평지에 구절초가 지천이다.

무명가수 한분이 벌써 노래를 하고 있고 백여 명의 관객들이 구절초 잔디밭 여기저기 앉아있다. 문화가 종교를 대신하는 세상이 온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리산 둘레길 산자락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찌 알고 왔을까. 산속의 침묵하던 것들이 우르르 일어서고 저물녘 하늘 높이 퍼져 오르는 노래는 시가 되었다. 가요란 것이 이다지도 다정하더란 말인가.

생각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둘레둘레 산길과 들길과 물길을 순례길로 만든 서명숙씨. 에피쿠로스는 직진하는 원자들이 이탈하여 수많은 원자들과의 충돌과 마주침으로 세계가 생겨났다고말하였던가. 타성에서 벗어나게 해준 삶의 클리나멘, 서명숙씨의 새로운 발상은 대한민국의 여행문화에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오늘도 여행지에서 낯선 그들을 만났다. '나'라는 존재가 '너'라는 타자를 통해 '나'를 들여다본다. 너를 만나기 위해 내가 거기 가지 않았다면 어찌 내 존재의 변이를 경험할 수 있겠는가. 생의 기쁨은 예기치 않는 순간에 온다. 카메라를 꺼냈다. '결정적 순간'이다. 사진의 본질 또한 '순간'의 포착에 있지 않은가. 다시는 오지 않을 그 순간을 위해 셔터를 눌렀다. 이정희 사진평론가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Copyright(c) daejon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