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정희교수

[한밭춘추] 사진이 인문학을 만났을때

새벽지기1 2015. 10. 10. 09:53

시민대학 3학기 마지막 날,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과 오지 여행사진작가 '박하선'의 작품을 나누었다. 알랭 드 보통이라면 한국인들이 매우 사랑하는 작가이다. 10월에 열리는 청주 비엔날레에도 특별강연자로 온다. 강연 제목도 '예술이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이다. 마지막 수업이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인 만큼 그가 얘기하는 여행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 사진아카데미에 생소한 '포토에세이'라는 분야를 가지고 과목을 개설했을 때 몇몇 분들은 의구심을 내비쳤다. 사진에 인문학을 접목한다는 뜻은 좋지만 누가 과연 그런 것을 들으러 오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사진을 하다가 소재나 주제선정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사진블러그를 운영하며 글을 쓰고 싶은 분들이 일부러 찾아오기도 하지만 사진출사반이나 메커니즘반이 마감된 탓에 어쩔 수 없이 오는 사람들도 일단 강의를 접하면 생각이 바뀐다. 사진을 찍든 글을 쓰든 삶의 폭이 일상적일 때 새로운 자극이 생기지 않는다. 제살 파먹기로는 사진도 글도 나오지 않는다.

여행사진작가 박하선씨도 처음엔 그냥 사진이 좋아 사진을 찍었다. 항해사였던 그는 사진이 좋아 오지여행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오지로 다니면서 고행하는 수도승들을 만나고 죽음의 골짜기에서 천장을 찍고, 고인돌유적지와 발해성터를 돌아다니면서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게 되었다. 그러한 성찰이 우리 민족의 역사로 이어져 요즈음엔 우리 고대사를 찍고 있다. 사유가 깊어지는 만큼 사진의 영역이 깊어진다.

사진을 몇 년을 해도 여전히 출사포인트만 찾거나 감성사진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 필요없는 것은 없다. 그러나 사진과 더불어 풍부하고도 내밀한 기쁨을 누리고 싶다면 예술과 문학과 철학의 세계에 발을 담그어 보기를 권한다. 사진이 훨씬 풍부해진다. 많은 분들이 수업 중에 소개한 책들을 산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소설이지만 부분부분이 철학적 에세이다. 대학과 세상이 가르쳐주지 않는 소중한 것들이 인문학에 있다. 사진은 삶을 찍는 일이다. 우리 삶은 직설화법이 아니다. 매우 디테일하고 은유적이다. 하루를 생각해 봐도 한 장의 사진처럼 쨍하게 내놓을 수 없다. 그래서 좋은 사진을 위해 인문학의 바다에 들어서는 것이다. 이정희 사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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