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정희교수

[한밭춘추] 사진과 음악이 공명하는 시간

새벽지기1 2015. 10. 23. 15:47

이 작은 공간에 음악이 들어서니 모든 것이 살아난다.

음악이 들어서는 순간 공간이 변한다.

오늘은 사진을 보며 텔레만의 비올라 협주곡을 듣는다.

보조악기로 쓰이던 비올라를 주인공으로 사용한 아주 편안한 곡이다.

 

내가 처음 텔레만을 만난 것은 문화평론가 김갑수씨가 쓴 '텔레만을 듣는 새벽에'서였다.

책이 이어주는 우연한 마주침.

김갑수씨 덕분에 텔레만의 음악을 만나고 텔레만 덕분에 비올라의 따뜻한 음색을 만났다.

텔레만은 독학으로 음악의 세계를 열어간 사람이었다.

법학을 공부하던 젊은 날, 헨델을 만나면서 자신 안의 끓어오르는 음악적 열정을 견딜 수 없어 음악의 길을 갔다.

그는 자신이 접속한 곳마다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음악양식을 그의 음악 속으로 끌어올리고 결합시켜

바로크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갔다.

사진가들 중에는 텔레만처럼 독학을 하거나 다른 전공을 하다가 사진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이 많다.

아마도 김아타가 그랬던 것 같다.

김아타는 기계공학을 전공하다가 독학으로 사진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2000년대 해외를 오가면서 유명해진 사진가로 한국사진 중에 최고의 가격으로 자리매김한 사진가이다.

그는 사진가라기보다 철학자 같다.

그의 'on Air Project'는 단순한 풍경사진이 아니다.

그는 뉴욕, 프라하, 베를린, 파리, 베이징, 상하이 등 세계의 대표적인 대도시 중심가에 카메라를 세우고

8시간 동안 셔터를 열어 사진을 찍었다.

8시간의 흐름 속에서 도시의 움직이는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먼저처럼 뿌옇게 흔적만 남아있다.

'온 에어 프로젝트'중 '인달라(Indala)시리즈'는 세계적인 대도시 뉴욕, 워싱턴, 모스크바, 델리, 도쿄 등 세계 12개 도시를 1만 컷씩 촬영해 하나의 이미지로 중첩시킨 사진들이다.

화려했던 도시는 사라지고 다만 잿빛 이미지만 남아있다.

우리의 욕망이란 얼마나 허망한가.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허망함에 웃었고, 또한 그 장엄함에 울었다.

1826년경 니엡스는 인류최초의 이미지를 찍었다.

자신의 집 3층 창문에서 8시간 촬영한 끝에 최초의 사진을 찍었던 니엡스.

그는 사진을 통해서 성공과 명성을 욕망했다.

19세기의 자본과 기술의 힘을 얻어 탄생한 사진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꿈과 바람을 충족시켜주는 욕망의 창이었다.

그러나 이제 사진은 표현예술가로서의 위치를 넘어 철학자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정희 사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