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겨자씨칼럼 250

이렇게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을 때

이렇게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을 때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인 최승자의 시 ‘삼십세’ 중 한 구절입니다. 서른 살이 지나가면 우리의 삶이 안정될까요. 삶은 서른 살 때에만 서러운 것이 아닙니다. 마흔이 되고 쉰이 되고 칠순이 넘어도 여전히 서럽고 흔들리는 삶을 삽니다. “나는 20대부터 돈이나 가난, 또는 권력, 전쟁에서 비롯된 소유의 결핍보다도 생명의 결핍, 존재의 결여에 대한 틈을 메우기 위해 글을 썼던 것이지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저서 ‘지성에서 영성으로’에서 고백한 내용입니다. 우리는 고희(古稀)가 넘어도 아니 죽을 때까지 ‘존재 앓이’를 합니다. 존재의 고통은 성공 여부와 상관없습니다. 많은 소유를 가지고 있고 성공적인 삶을 살았어도 마찬..

파도를 보지 말고 바람을 보라

파도를 보지 말고 바람을 보라 조선시대 세조 때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관상’이 있습니다. 주인공 송강호는 관상의 대가입니다. 그는 마지막 장면에서 명대사를 읊조립니다. “난 사람의 얼굴을 보았을 뿐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오…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 격이지…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오.” 얼굴이 보여주는 것은 그저 파도에 불과할 뿐, 바람 곧 역사의 큰 기운을 보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인문학은 다른 학문과 달리 비교적 ‘본질’을 보려 합니다. 그러나 한계가 있습니다. 만물의 시작과 끝을 알아야 본질을 보는 것인데 인문학은 이 점에 있어서 그저 추측하거나 애매한 논리로 피합니다.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십니다. 인간과 만물, 선과 악의 뿌리가 모두 성경에 기록돼..

밥상 저주

밥상 저주 ‘바보’는 ‘밥보’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밥만 먹고 사는 사람, 푸른 하늘과 싱그러운 대지 내음도 모르고 그저 밥밖에 모르는 밥보가 바보입니다. 성경을 보면 ‘밥보 바보’가 되게 해달라는 저주의 시가 나옵니다.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롬 11:9∼10) 사도 바울은 다윗의 시 가운데 저주의 내용을 담고 있는 복수의 시를 인용했습니다. 흔히 저주의 시라고 하면 원수를 혼내 달라고 하거나 원수의 일이 잘 안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원수를 향한 다윗의 저주는 달랐습니다. “하나님 원수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마세요. 오직 잘 먹고 잘 사는..

천둥 같은 첫 문자

천둥 같은 첫 문자 소설가의 작품 중 가슴을 쩌렁쩌렁 울리게 하는 천둥 같은 첫 문장이 있습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이상, 날개) “그는 멕시코 만류에서 조그만 돛단배로 혼자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었다. 여든날 하고도 나흘이 지나도록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했다.”(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거북한 꿈에서 깨어나면서, 자신이 침대에서 괴물 같은 벌레로 바뀐 것을 발견했다.”(프란츠 카프카, 변신) 그러나 그 어떤 문장도 창세기 1장 1절에 비할 수는 없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은 천지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이는 천둥 같은 문장이 아니라 천둥까지 만든 첫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선포하신 후 인류와 모든 만물의 역..

보고 싶은 것 너머를 보는 기적

보고 싶은 것 너머를 보는 기적 “같은 꽃을 보더라도 한의사의 눈에는 약재로 요리사의 눈에는 요리 재료로 가수의 눈에는 노래로 화가의 눈에는 그림으로 시인의 눈에는 시로 남자의 눈에는 고백으로 여자의 눈에는 낭만으로.” 이창현 작가의 도서 ‘내 마음 속의 울림’ 중 한 구절입니다. 사람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습니다. 산(山)을 산처럼 보지 않고 물도 물 그대로 보지 않습니다. 사물을 볼 때 정복해야 할 대상, 심지어 돈으로 보기도 합니다. 예배를 드릴 때도 자신이 듣고 싶은 성경 말씀만 취사선택해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마치 변하지 않으려고 갑각류처럼 마음을 무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많은 예배를 드려도 우리의 심령이 변화되지 않는 ..

흰 코끼리의 저주

흰 코끼리의 저주 고대의 태국 왕들은 처벌해야 할 신하에게 흰 코끼리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흰 코끼리는 태국에서 신성시 여기는 동물입니다. 왕으로부터 흰 코끼리를 하사받은 신하는 코끼리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핍니다. 좋은 것을 먹이고 비싼 장신구도 달아주고 병이 생기지 않도록 노심초사했습니다. 결국 흰 코끼리를 받은 신하는 코끼리에 돈과 정열을 다 쓰면서 인생을 탕진하고 맙니다. 그것이 벌이었습니다. 흰 코끼리처럼 좋은 것을 받아도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면 축복이 아닌 저주가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행할 능력이 없는데 ‘희생하라, 섬기라’는 말을 들으면 괴롭습니다. 더군다나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으면 졸도해 버립니다. 우리 인간은 인생이라는 경기에서 스트라이크를 날려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

웨이터의 법칙

웨이터의 법칙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잘 대해주지만 웨이터에게는 거만하게 행동한다면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미국의 경영 및 인사관리에 진리처럼 퍼져 있는 ‘웨이터의 법칙’입니다. 2006년 웨이터의 법칙을 소개한 미국의 일간지 USA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자신과 이해관계가 있거나 가까운 사람에겐 친절하면서도 사회적 약자들에게 거만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결코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과 파트너가 되면 결국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니 파트너로 삼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만나는 식당 종업원과 버스 기사 등은 누군가의 어머니와 아버지입니다. 허드렛일을 하는 그들이 엑스트라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의 가족이고 영웅입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세 명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아브라함은 ..

기도하는 순간 불행은 불행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순간 불행은 불행이 아닙니다 “이야기된 불행은 불행이 아니다. 그러므로 행복이 설 자리가 생긴다.” 이성복 시인의 산문집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의 한 구절입니다. 시인은 불행에 대해 이야기해야 행복이 핀다고 했습니다. 혼자 불행을 짊어지기보다 고통을 털어놓으며 그 불행과 거리를 둘 때 행복이 설 자리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꽃을 그리려면 꽃으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처럼 자신의 불행에 대해 토로할 때 잠시나마 속이 시원해지고 고통을 객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된 아픔은 거리두기가 된 것입니다. 작게나마 행복이 설 자리가 생깁니다. 그러나 이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야기가 그치면 다시 불행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불행은 하나님께 이야기해야 합니..

먼 바다 고등어 값

먼 바다 고등어 값 “고등어 값은 너무 비쌌답니다. 난 이렇게 말했지요. 왜 고등어 값이 쌌다가 비쌌다가 그러지요? 먼 바다에서 온 고등어장수가 내게 말했답니다. 당신 제일 가까운 곳의 사람의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하면서 먼 바다 고등어의 값을 어떻게 셈하겠소?” 시인 곽재구의 시 ‘고등어 장수’의 한 구절입니다. 마지막 문장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지금 내게 가장 가까운 사람을 보듬는 것에도 소홀하면서 먼 바다 고등어의 시세 변동은 무엇이 그리 궁금한지 모르겠습니다. 신약에 ‘고르반’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린 예물’ 또는 ‘하나님께 드림’이란 뜻으로 히브리어 ‘코르반’을 음역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아름다운 헌신입니다. 그런데 이..

목욕탕 주인의 법칙

목욕탕 주인의 법칙 ‘목욕탕 주인의 법칙’이라는 유머가 있습니다. 전국의 목욕탕협회에서 내린 결론이라는데 ‘누구에게나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어느 누구든 ‘때(grime)’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결정적인 ‘때(opportunity)’를 주십니다. 인생 최고의 기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편안해지면 교회에 가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픈 사람이 병 나으면 병원에 가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때 많은 사람이 깨끗해지면 목욕탕에 가겠다고 말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죄 많고 고난이 극심할 때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때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