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재욱목사 236

작은 감사

작은 감사 나무가 모여 숲이 되고 미소가 모여 웃음이 되듯이 작은 감사가 모이면 큰 감사와 기적을 불러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작고 사소한 모든 것에서 감사 제목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돌아보면 오늘도 감사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승강기 문이 닫히는 순간 열림 버튼을 눌러 열어준 사람, 늘 웃으면서 일하는 사람, 굵은 땀방울을 흘리면서도 인사하며 소포를 건네주는 택배 아저씨, 떨어진 물건을 집어 주는 사람, 아메리카노를 내밀며 건강한 미소까지 덤으로 준 카페 아르바이트 학생…. “감사합니다”라는 말에는 ‘고맙습니다’와 ‘당신 덕입니다’가 반반씩 섞여 있습니다. 감사함이 사라지고 당연함이 자리 잡을 때 몰락이 시작됩니다. 감사 없는 성공은 교만을 낳고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 됩니다. 낟알이 모여..

적게 할 것과 많이 할 것

적게 할 것과 많이 할 것 적게 할 것과 많이 할 것이 있습니다. 말은 적게 하고 기도는 많이 해야 합니다. TV는 적게 보고 책은 많이 읽어야 합니다. 불평은 적게 하고 감사는 많이 해야 합니다. 대접받는 것은 적게 하고 다른 사람을 많이 섬겨야 합니다. 검색은 적게 하고 사색은 많이 해야 합니다. 비판은 적게 하고 다른 사람을 세우는 것은 많이 할수록 좋습니다.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 그러면 존경받는 사람이 된다”는 영국 속담이 있습니다. 말을 적게 하고 지갑을 많이 여는 사람은 멘토일 가능성이 크고, 지갑을 적게 열고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꼰대일 가능성이 큽니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입니다. 이를 신앙에 적용해 최소의 헌신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려고 해선 안 ..

추상명사

추상명사 영국문화원에서 창립 70주년 기념으로 비영어권 102개국 4만명에게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를 골라 달라고 했습니다. 1위 어머니(mother) 2위 열정(passion) 3위 미소(smile)로 나왔습니다. 이 밖에 사랑(love) 영원(eternity) 환상(fantasy) 목적(destiny) 자유(freedom) 등의 단어가 꼽혔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한 단어 중 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단어가 추상명사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돈 땅 자동차보다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합니다. 멋진 집보다 아름다운 가정, 좋은 침대보다 달콤한 잠, 맛있는 음식보다 활기찬 식욕이 더 소중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보이지 않는 천국을 바라보기에 참 복된..

설교를 잘하는 목사

설교를 잘하는 목사 구멍가게 주인이 고객들에게 A교회에 부임한 목회자를 칭찬했습니다. “목사님은 설교를 참 잘하십니다.” 한 고객이 물었습니다. 설교를 들어보셨습니까.” “아니요.” “그런데 어떻게 설교를 잘하는지 아시나요.” 주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이 새로 오신 후부터 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외상값을 잘 갚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빵 가게를 운영하는 한 집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구운 빵은 크기가 작아 고객들로부터 원성을 샀습니다. 그의 별명은 ‘대포 집사’였습니다. 대표 기도를 할 때 대포같이 큰 소리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날도 힘차게 기도했는데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느껴 목회자에게 상담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저를 싫어할까요.” 목회자는 진지하게 권면했습니..

오아시스

오아시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숨어 있기 때문이야.” 생텍쥐페리의 책 ‘어린 왕자’의 한 구절입니다. 황량하고 삭막한 세상일지라도 오아시스가 있기에 아름답습니다. 사막을 사는 사람 중에는 그저 사막을 사는 사람이 있고, 사막 속에 샘을 발견하고 오아시스의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편이 다섯 명이나 있었던 사마리아의 수가성 여인은 사막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목마른 이 여인에게 예수님은 생명의 샘물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사막 인생에서 오아시스 인생으로 바뀝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오아시스가 곳곳에 ..

맑은 눈초리

맑은 눈초리 “너무 맑은 눈초리다 온갖 죄는 드러날 듯 부끄러워 나는 숨고 싶어.” 허영자 시인의 시 ‘하늘’입니다. 가을 하늘 저 맑은 눈초리가 우릴 정죄하는 눈초리라면 우리 몸은 가눌 길이 없습니다. 가을 하늘보다 맑은 주님의 눈초리는 정죄가 아닌 한없는 사랑의 눈길입니다. 베드로는 스승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흔히 베드로가 닭 우는 소리에 예수님이 생각나 통곡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눅 22:61~62) 닭의 울음이 아닙니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이것이 회복의 시작이었습니다. 배반한 베드로를 바라보시던 예수님의 눈초리는 한..

흘림이 있는 사람

흘림이 있는 사람 “걱정하지 말게, 거미여. 나는 게을러서 집 안 청소를 잘 안 하니까.” 일본의 전통 하이쿠 시인 고바야시 이사의 시입니다. 게으른 시인 덕에 거미가 살았습니다. 동양화의 여백처럼 넉넉한 틈이 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그 틈으로 나도 들어가고 그도 들어와 100개의 감춰진 뜻을 찾아내고 다정한 낙서도 하고 더 많은 이야기와 여운, 느낌표를 채울 수 있는 사람. 적당히 비어 있어 말을 걸 수 있고 터를 잡을 수 있는 사람. 빽빽하지 않고 긴 빈칸이 있는 한 줄의 편지처럼 울림을 주는 사람. 미완성의 웃음을 가진 사람. 추수할 때도 나그네를 위해 모퉁이는 남겨 두고, 알곡 꾸러미도 대충 흘리는 사람. 그런 사람의 여백으로 들어가 쉬고 싶습니다. 불쌍한 여인 룻은 누군가 흘려준 이삭을 줍다가 ..

홍해 도하, 요단강 도하

홍해 도하, 요단강 도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해 두 개의 큰물을 건넜습니다. 홍해와 요단강입니다. 홍해를 건너면서 애굽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요단강이 갈라지면서 비로소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모세는 홍해를 건널 때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 14:13) 그러나 요단강을 건널 땐 제사장이 먼저 요단강 물에 발을 담그라고 했습니다.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수 3:8) 하나님은 홍해가 갈라진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가게 하..

'때문에'에서 '덕분에'로

'때문에'에서 '덕분에'로 보름달 ‘때문에’ 울부짖는 늑대가 되는 사람이 있고, 보름달 ‘덕분에’ 시인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만난 사람 때문에 망했다는 사람이 있고, 내가 만난 사람 덕분에 승리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난 때문에 폐인이 되는 사람이 있고, 고난 덕분에 본질을 알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약점 때문에 열등감에 휩싸이는 사람이 있고, 약점 덕분에 겸손을 배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핍하기 때문에 주저앉는 사람이 있고, 결핍 덕분에 기도하며 날아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할수록 때문에라고 불평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할수록 덕분에라며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했던 아담은 하와 덕분에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며 행복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선악과를 먹은 아..

소통과 소탕

소통과 소탕 소통하지 않고 소탕하려 할 때, 인간관계는 무너져 갑니다. 소통은 대화하겠다는 의지이고, 소탕은 누르겠다는 의지입니다. 소통은 져도 된다는 겸손이고, 소탕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독단입니다. 소통은 넓은 길로 인도하지만 소탕은 막다른 길로 몰아갑니다. 소통은 나도 보이고 너도 보이는 세계지만 소탕은 나만 보이고 너는 안 보이는 세계입니다. 소통은 내 탓이라는 반성이자 나도 변하겠다는 마음이고, 소탕은 네 탓이라는 지적이자 너만 변해야 한다는 아집입니다. 소통은 같이 살자는 상생이고, 소탕은 나만 살자는 독선입니다. 소통은 공감의 비타민을, 소탕은 불통의 독약을 줍니다. 소통은 흐르는 물같이 생명을 살리고 소탕은 고인 물같이 생명을 죽입니다. 소통은 낮아지려는 섬김이고, 소탕은 높아지려는 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