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데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 시작하여 이스라엘이 역사를 설명합니다. 아담과 하와 그리고 노아와 바벨탑의 사건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함은 바벨탑 사건 이후에 흩어진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한 민족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구속을 말하고자 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흩어진 민족 가운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2절). 그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으로 이동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과 은혜로 그리스도를 준비하셨습니다.
가나안을 아브라함의 씨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받고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약속이 이뤄짐을 바라보면서 확신을 가지고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이후로 아브라함은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첫 사람이 되었습니다(히11:1).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것은 일차적으로 430년 후 모세 시대에 이뤄집니다. 아브라함의 부족이 드디어 히브리 민족이 됩니다. 그러나 아직은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와 같이 되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시대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가시적으로 보여준 사건입니다. 애굽 땅 고센에서 민족으로 준비합니다. 그리고 때가 이르러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하게 합니다. 애굽의 궁정에서 통치자의 지혜를 배우고, 미다안 광야에서 목자의 마음을 배운 모세는 이스라엘을 해방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사람들에게 팽 당하였던 모세를 하나님은 다시 부르시고 보내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40년 광야를 지내게 하십니다.
스데반은 믿음의 역사가 약속의 역사이고, 하나님의 주권의 역사임을 분명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모세의 이야기는 가시적인 첫 성취이자만 완성된 약속이 아닙니다. 모든 역사는 그리스도를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뿌리가 없는 나무가 없듯이 근원이 없는 역사는 없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신앙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변증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말씀에 충만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줍니다. 말씀은 구속의 역사입니다. 문학이야기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그리스도를 준비하기 위하여 기록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스데반 집사님을 통하여 배웁니다.
여기에 사도들의 가르침이 얼마나 충실하였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성령과 지혜에 충만한 집사는 말씀에 충만한 집사를 의민합니다. 사도의 역할이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는 일입니다. 바르게 가르칠 때 교회는 건강하고 성경이 살아움직이는 역사를 봅니다.
오늘도 부족한 믿음을 봅니다. 말씀을 사랑함은 전하고 살아내고 증거하는데서 빛을 봅니다. 더욱 간저하게 주님께 기도합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기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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