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십자가에 달린 자(7)(막15:30)

새벽지기1 2024. 3. 29. 06:58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막15:30)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말이 저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군요. 이 말이 예수님을 향한 조롱이라는 사실은 앞에서 누누이 밝혔습니다. 그런데 조롱만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말은 예수님이 공생애 초기에 마귀에서 받은 세 가지 유혹과 비슷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당시에는 돌을 떡으로 만들라, 성전에서 뛰어내리라, 마귀에게 절하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을만한 유혹들입니다. 이제 공생애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마귀가 유혹합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메시야의 능력을 보이라. 

 

<희랍인 조르바>의 저자 니코스카잔차키스가 쓴 <예수의 최후의 유혹>은 예수님을 순전히 인간적인 차원에서 접근한 소설입니다.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 마르다와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던 어느 날 베드로를 비롯해서 몇몇 제자들이 문을 박차고 들어옵니다. 그들은 예수의 멱살을 잡아 밀치고 쓰러뜨립니다. 땅에 쓰러진 예수의 머리를 발로 짓밟으면서 따집니다. 당신이 십자가에서 도망치는 바람에 제자들이 세상에서 실패했다고 말입니다. 머리에 심한 통증을 느끼면서 예수는 “아니다. 나는 십자가에서 도망치지 않았다.”고 외칩니다. 비몽사몽간에 다시 의식을 차리고 보니 그는 여전히 십자가 위에 달려 있었습니다. 소설의 모든 내용은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의식을 잃었을 때 스쳐지나간 장면들이었습니다. 한 순간일지라도 예수님 역시 십자가를 피하고 보통 사람들의 삶을 살고 싶어 했을지 모른다는 작가의 상상력이 이 소설에 녹아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정신이 혼미해지는 순간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사람들의 모욕하는 소리를 어떻게 들었을까요? 환청이라고 생각하셨을까요? 내려가고 싶다는 욕망을 감추기 힘들었을까요? 그는 지금 아무 말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