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야고보서를 가리켜 ‘지푸라기 서신(the letter of straw)고 했다. ’오직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한 바울 서신들에 비해,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야고보서에는 은혜의 복음이 잘 들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야고보서는 지푸라기 서신이 맞다.
바울의 서신들은 대체적으로 신약 교회라는 건물의 머릿돌을 놓은 기초 작업에 집중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집 기초만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건물의 기초가 놓였다면 당연히 그 위에 기둥들을 세우고 또한 벽을 세우고 지붕을 얹어야한다. 아무리 기초가 튼튼하고 기둥과 벽이 있다 해도, 만일 지붕이 없다면 그 집이 어떻게 될까? 비유적이지만 지금 우리 교회들이 꼭 이러하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의 절대 복음,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라는 불변의 복음의 기초위에 한국 교회가 세워졌다. 하지만 오늘 날 한국교회는 전체적으로 볼 때, 더 이상 교회의 기초를 놓는데 주역하고 있지 않다.
오늘날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오는 비난들을 피할 수 없는 자리에 와 있다. 아니, 때로는 교회가 세상보다 더 세상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받는 비난과 수치가 너무 클 때도 많다. 마치 집으로 치면 기초도 있고 벽도 있는데 지붕이 없는 것처럼, 온갖 비바람에 무방비로 열려 있는 것과 같지 않은가?
흥미롭게도, 신약성경은 복음서와 바울 서신의 뒤를 이어, 공동 서신을 배치해 두고 있다. 마치 바울 서신의 역할이 다하면 이제 공동서신이 그 맡은 역할을 위해 등장한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공동서신에까지 이르고 있을까? 지푸라기(지붕)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기초만 튼튼하면 우리집, 우리의 교회는 완성된 것일까? 정말 지붕이 없어도 될까?(채영삼 ‘지붕 없는 교회’ 서론)
☀공동서신의 하나인 본서신은 기독교 교리를 집대성한 바울 서신들과는 달리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이신득의(以信得義) 사상에 기초하여 구원받은 자의 행위(삶) 곧, 믿음의 실천적 측면을 강조한 서신이다. 그래서 일면으로 산상수훈의 교훈이 자주 소개되고 일면으로 구약성경 중 지혜문학의 대표격인 잠언의 여러 교훈들이 자주 등장한다. 또 믿음이 있다 하면서도 행함이 없는 자들을 향한 준엄한 경고와 질책도 자주 눈에 띈다. 이런 점에서 본서신은 로마서의 핵심인 믿음의 본질을 행위라는 또 다른 측면에서 강조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야고보서와 복음
야고보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나 부활의 의미에 대한 엄숙한 선포나 장황한 설명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예수’라는 이름이 직접 언급하는 경우도 드물거니와, 예수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는 경우에도 그의 죽으심이나 불활 사건에 관련된 내용보다는, 주로 산상 수훈에서 가르치신 말씀들이 대부분이다. 야고보서의 구원의 기초가 되는 부분 보다는 그 기초위에 든든한 집을 세울 수 잇는 말씀에 더 관심을 보이는 셈이다.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이런 여러 가지 가르침에 대한 해설서처럼 느껴졌다.
▶제목
헬라어 바티칸 사본은 본서신을 ‘이아코부 에피스톨레’로 부른다. 이는 ‘야고보의 서신’(Epistle of James)이란 뜻이다. 영어성경 흠정역(KJV)은 ‘The General Epistle of James’(야고보의 일반서신)로 부른다. ‘야고보서’는 본서저자인 야고보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참고로 ‘일반서신’(General Epistle)이란 ‘공동서신’으로도 표현되는데, 바울 서신과 같이 서신의 대상이 특정 교회나 특정인이 아니라 보편적인 대상에게 보내진 서신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런 경우 통상적으로 서신의 명칭(제목)은 수신자가 아니라 발신자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다.(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기록 장소와 시기
본서신이 기록될 당시에는 큰 환난이나 대박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약 1:2-12; 5:10-11). 그때는 아마 네로 시대(A.D. 54-68년경)였을 것이다. 또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로마서의 중심 사상을 오해하고 행함이 없는 삶을 사는 자들에게 믿음의 행위를 강조하기 위해 기록되었음을 감안한다면 틀림없이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이후(A.D. 57년경)의 시기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의 동생 야고보가 A.D. 62년경 대제사장 아나누스에게 순교당했다면(Josephus) 본서신의 기록 연대는 A.D. 62년 이전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야고보는 아마 예수님의 승천 이후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으로 지내며 줄곧 예루살렘에 머물다 그곳에서 순교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본다면 본서신은 A.D. 60-62년경 예루살렘에서 기록 되었을 것이다.
☀야고보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
야고보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많은 박해 가운데,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동족들로부터 많은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박해를 피하여 이방 땅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성도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방 지역이라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방 땅은 항시 로마 황제 숭배가 성행하는 곳으로 늘 배교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게다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바울의 이신칭의 사상은 자칫 오해를 불러 일으켜 믿음만 강조될 뿐 믿음에 걸맞는 삶은 외면당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야고보는 본서신을 통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의 은총을 입은 자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를 가르친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그 믿음은 행위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믿음과 행위의 상관 관계를 보여 주는 본서신은 행함 없는 거짓 믿음이 범람하는 이 세대의 성도들이 다시 한번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는 훌륭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야고보서의 배경과 무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이 강림한 후 마가의 다락방은 사도와 성도들의 집회처가 되었고, 이곳은 예루살렘 교회로 발전하였다. 그후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 사마리아를 비롯한 이스라엘 전 지역의 복음화와 세계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본서신은 예루살렘 교회를 섬기며 예루살렘 교회를 지도하던 야고보가 이스라엘과 로마 제국 전역에 흩어져 살던 모든 유대 성도들에게 바른 신앙과 삶을 가르치기 위해 기록하였다.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교훈과 적용
◦‘지푸라기 서신’?!
종교개혁가 루터는 야고보서를 가리켜 ‘지푸라기 서신(the letter of straw)’이라고 했다.
’오직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한 바울 서신들에 비해,
야고보서는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야고보서의 성경적 위치’와 함께 생각해야 한다.
신약성경은 복음서, 바울 서신서, 공동 서신서 순으로 되어 있다.
야고보서는 일반서신에 속한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복음서는 ‘복음의 내용’이다.
반면 바울 서신서의 핵심은 ‘이신득의(以信得義)’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그런 의미에서 바울 서신은 ‘복음의 기초’다.
그런데 야고보서는 ‘행위(삶)’를 강조한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7)”
언뜻 보면 바울서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듯이 보인다.
야고보서만 읽으면 충분이 그런 오해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보는 학자도 있다.
<신약성경은 복음서와 바울 서신의 뒤를 이어, 공동 서신을 배치해 두고 있다.
마치 바울 서신의 역할이 다하면 공동서신이 그 역할을 위해 등장하듯이 말이다>
즉, 바울의 서신들은 신약 교회라는 건물의 머릿돌을 놓은 기초 작업이었다면,
공동서신의 하나인 야고보서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이신득의(以信得義) 사상에 기초하여
구원받은 자의 행위(삶) 곧, 믿음의 실천적 측면을 강조한 서신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복음서는 복음의 내용이며,
바울 서신은 그 복음이라는 집의 기초이고,
야고보서는 그 집(복음)의 지붕(지푸라기)라는 관점이다.
세상에 기초 없는 집이 없는 것처럼, 지붕 없는 집도 없다.
혹시 우리는 기초와 기둥(이신득의)이 있기 때문에
지푸라기(지붕)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이는 오늘 날 ‘오직 믿음’만 강조하는 교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종은 아닐까?
야고보서는 우리에게 믿음이 기초를 세웠으면, 이제 지붕을 올리라고 명령하신다.
야고보는 이것을 한 마디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약2:2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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