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리민수목사

사명을 회복하라! (학1:1-15)

새벽지기1 2019. 9. 25. 07:12


사명을 회복하라!

(1:1-15)


본문

1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3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4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9.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10.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11.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

12.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모든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들었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13.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니라

14.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

15.그 때는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이십사일이었더라

 

서론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긴 방학도 끝나고 그 끝없이 우리를 괴롭혔던 폭염도 물러갔습니다.

벌써 개강이네요.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가지요?

수여대는 이미 어제부터 개강을 했습니다.

오늘 말씀의 본문은 학개서입니다.

학개서는 성전 재건의 사명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재건 중 현지 방백들의 방해로 사역에 길이 막히자 이를 핑계로 <무려 14년 동안 사명을 망각한 백성들을 깨우는 책>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사명을 회복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본론

 

그러면 하나님께서 학개서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첫째,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과 7절에 반복되는 단어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5)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7)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무엇을 살피고 돌아보라는 것일까요?

먼저 학개서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때는 BC53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해는 바벨론 제국이 느브갓네살 왕의 아들 벨사살 왕이 페르시아왕 고레스(다리오)에 의해 멸망당한 해를 말합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페르시아 왕 고레스에게 나타나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 재건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고레스는 이런 조서를 내립니다.(1:3)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고 모든 준비를 마친 다음해 BC538년 스룹바벨을 총독으로, 여호수아를 대제사장으로 임명 예루살렘을 향한 장도에 오릅니다. 이때 귀환한 백성은 성전재건을 위해 42,360, 노비가 7,337, 노래하는 남녀가 200명등 약 5만 명(2:64)입니다.

그리고 2년간 성전 재건을 위한 기초공사를 했습니다. 그해가 BC536입니다.

하지만 성전 재건을 명했던 고레스가 죽고 새로운 왕이 등극하자마자 성전재건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그 지역 방백 르흠과 심새가 정치적 음모를 꾸며 방해한 것입니다.

그 후 성전 재건 명령을 받고 예루살렘에 귀환한 백성들은 성전 재건의 사명을 잊은 채 뿔뿔이 흩어져 각자 제 살길을 도모합니다. 그렇게 해서 흘러간 시간이 무려 14! 그리고 어느 날 하나님께서 학개선지자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보내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여기서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BC52061일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학개를 통해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주신 메시지가 바로 학개서입니다.

학개서는 바로 <사명>을 망각한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아직도 성전을 재건하지 않고 있을까요?

그 이유가 바로 2절에 나와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성전 재건 할 때가 안됐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핑계는 태초부터 시작된 인간의 못된 유전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먹지 말라는 에덴 동산의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명령을 어긴 아담과 하와 부부를 찾아 오셨습니다.

죄를 추궁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집요하게 자기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아담은 하와 때문에 먹었다고 하고 하와는 뱀의 유혹에 못이겨 먹었다고 했습니다.

핑계의 늘 그럴 듯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변명도 그랬습니다.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여러분! 잠언에 게으른 자의 핑계에 대하여 아주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26:13)”

그렇습니다. 주로 핑계는 게으른 자의 변명입니다.

이렇게 변명만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엄히 책망하셨습니다.(4)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이 말씀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번역하면

내 성전은 황폐한 채로 있는데 너희는 호화 주택에 살고 있느냐?” 이런 뜻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해 보면 이런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무너졌는데 너는 그렇게 평안 할 수 있느냐?”

캠퍼스에 저렇게 죽은 영혼들이 많은데 그렇게 무덤덤하냐?”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헐벗고 굶주리는데 너는 호가호식해도 되느냐?”

이런 의미입니다.

 

이 당시 상황을 보면 하나님께서 BC536년 페르시아왕 고레스 때 명령을 받고 귀환해서 성전 재건을 시작했지만 고레스가 죽은 후 다음 왕인 아닥사스다 왕이 등극하자마자 성전재건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14년이 지난 아직까지 성전건축을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핑계였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학개선지자가 성전재건을 명령했을 때에도 상황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주시는 첫 번째 메시지는 우리의 행위를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짧게는 지난 방학의 삶을!

길게는 지난 인생을 말입니다.

여러분은 지난 2개월의 방학동안 어떻게 보냈습니까?

여러분! 경기에서 Half time은 후반전의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 시간입니다.

하지만 하프타임이 경기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방학은 영적 Half time이었습니다.

영적 Half time이 중요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적 반추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떤 일을 되돌아보고 음미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10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행했던 조상들의 불행한 전철을 밟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자신이 행한 일들을 되돌아보고 반성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을 고칩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피터 드러커는 '피드백이 없는 사람은 짐승과 같다!'고 했습니다.

영적 Half time이 중요한 또 한가지 이유는 영적 재충전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어떻게 영적 재충전이 되셨습니까?

방학을 의미 있고 알차게 보낸 사람!

방학을 허송세월 한 사람!

이 둘 중 어느 쪽인가요?

바라건데 핑계와 변명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의 사명에 이끌려 예수의 충성된 제자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학개서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둘째,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7-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한 마디로 14년간 중단되었던 성전 재건을 다시 시행하라는 것입니다.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성전 재건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페르시아 왕 고레스에게 명령하여 복귀시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난 14년 동안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면서 성전재건의 사명을 망각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학개선지자를 통해 그들을 각성시키신 것입니다.

저는 흑인으로서 세계적인 방송인인 오프라 윈프리가 했던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녀는 그의 책 이것이 사명이다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첫째, 남보다 더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남보다 아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

아파 본 사람만이 아픔을 겪는 사람에게 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남보다 설레는 꿈이 있다면 그것은 망상이 아니라 사명이다.

그 꿈을 이룸으로써 사회와 이웃을 위하여 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남보다 부담 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명이다.

해야 할 사명을 다하지 못해서 오는 부담 때문에 그것을 피하지 말고,

기꺼이 그 부담을 사명으로 여기고 감당해야 한다.

아미 이 이야기는 그동안 몇 번 언급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저는 특히 남보다 부담 되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명이라는

이 네 번째 말이 특별히 가슴에 와 닿습니다.

요즘 우리나라가 일본과의 관계가 아주 좋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이런 이웃을 주셨는지 때로는 속이 상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미숙한 외교를 펼치고 있는 정부에 대해 화가 나기도 합니다. 특히, 화가 나는 이유는 일본에 나가 있는 동역자들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귀한 두 분 선교사님도 계시고 경기대 11학번 이아름 자매도 지금 일본에 있습니다. 한일관계가 좋아야 그 분들의 삶과 사역도 평안할텐데 요즘 얼마나 불안할까 생각하면 마음이 무척 아픕니다.

지금 일본에 선교사로 계신 한 선배님이 과거 일본 선교사로 나가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본은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에게 영적으로 사마리아와 같다.

일본은 우리에게 뼈아픈 역사를 안겨 주었다.

하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이 일본의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고 깨워주어야 한다.

우리에게 일본은 미움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

그 분은 이런 사명으로 일본 영혼들을 품고 선교사로 나갔습니다.

지금부터 130여 년 전 우리와 아무 관계없는 미국의 엘리트 청년 대학생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이 땅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조선을 위해 복음을 전하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자신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내와 자식이 풍토병으로 모두 잃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은혜 앞에서 마땅히 여겼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에 이런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14)”

여러분의 부담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께

어떤 부채의식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모든 성도에게는 부르심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열방의 선교사로 부르심이 있었고,

마가는 애굽으로, 도마는 인도에로의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요나와 나훔선지자는 니느웨를 위해 부르심을 입었고,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는 조선으로의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학개선지자 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우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이 받은 사명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캠퍼스 복음 전파의 사명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명을 상기시키셨습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위임하신 캠퍼스 복음화!

다시 허리띠를 조이고 운동화 끈을 다시 매고 일어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것을 결단하는 시간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학개서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셋째, 성령 안에서 공동체가 하나 되라는 것입니다.

 

본문 114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시작)하였으니

다리오왕 2년 즉 BC520624일에 성전건축을 위한 공사를 재개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감동은 바로 성령의 감동을 말하는 것으로 성전건축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을 성령 안에서 하나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 됨 보다 더 큰 가치는 없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분열(예수파, 베드로파, 바울파, 아보로파)이 상징이 되어 버린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제발 교회가 하나 되라는 편지를 보냅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1:10)“

교회가 하나 되지 못한 교회는 고린도 교회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와 빌립보교회에도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4:3)”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2:2-5)“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 날 우리 한국교회도 하나 됨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는 최근 한국교회의 어두운 자화상을 자주 목격합니다.

우리 지체 중에도 출석하는 교회가 분열되어 서로가 상처를 주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몰라하는 지체가 있습니다. 어쩌자구 교회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이 이렇게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짓을 하는지 가슴이 아플 뿐입니다.

교회의 하나 됨, 성도의 하나 됨 보다 더 큰 가치는 없습니다.

본문 11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모든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백성의 마음을 감동시키신 분이 발로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하나 되게 하셔서 온 백성이 하나 됨으로 성전을 재건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전재건 재개 4년 후 BC516123일 성전이 완공됩니다.(6:15)

 

사랑하는 형제자매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모스를 통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느냐?(3:3)”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김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었습니다.

지금부터 2500년 전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명이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었다면,

오늘 우리에게도 함께 재건해야 할 성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공동체의 하나 됨입니다.

어제는 수여대 국기게양대 기도회를 했는데 얼마나 감동이었는지 모릅니다.

다음은 어제 사역 칼럼 일부입니다.

<나는 오늘 수여대 지체들 모두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대표인 슬기 자매는 간호사 실습 중에 기도모임에 참석했다.

병원실습 기간에는 심신이 녹초가 될 정도로 힘든 기간임에도

대표로서의 책임감이 그 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지은자매는 언제나 1등 참석이다.

그 만큼 모든 일에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가지원이다.

지난 학기에는 목요일에 수업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성남에서 채플에 참석했다.

희원자매는 오늘 오후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아침 일찍 참석했다.

(기도회 마치고 다시 집에 돌아 감)

게다가 아침 일찍 지체들을 위해 음료를 각각 준비해 왔다.

참으로 따뜻한 가지원이다.

그리고 효진자매가 저 멀리 경기도 광주 퇴촌에서 참석했다.

효진자매는 올 해 하나님이 특별히 보내주신 수원지구의 보배.

특별히,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2년째 캠퍼스를 섬기는 누리간사를 축복한다.

이렇게 2학기 사역이 시작되었다.>

정말 아름답지 않습니까?

이것이 성령 안에서 하나 된 우리 공동체의 모습니다.

다른 캠퍼스에서도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킹 목사와 관련된 일화를 소개하고 말씀을 마무리 할까 합니다.

하루는 킹목사가 차를 타고 가다가 목격한 일입니다.

한 흑인 여자가 백인 좌석에 앉았습니다.

그때 운전기사는 그 여인에게 자리를 옮길 것을 명령했습니다.

흑인 여자는 항거했고 운전기사는 끝내 포기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 흑인 여성의 모습을 보고 킹 목사는

일생을 흑인 인권운동에 바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위대한 사명이 잉태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렇듯 사명은 누가 지시하거나 가르쳐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사명은 이런 각성(깨달음)’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사명은 캠퍼스의 영혼구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핑계를 대며 사명완수에 소극적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상황이 어렵다.

요즘 학생들이 옛날 같지 않다.

사역자가 부족하다는 등 많은 핑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 행위를 돌아 볼 때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명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주님의 이름으로 9월을 전도의 달로 선포합니다.

그 어떤 이유나 핑계들 달지 말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제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1: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