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김진희사모

제게도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의 성령충만함을 베풀어 주소서.

새벽지기1 2017. 12. 9. 07:56


짙은 흑암에서 복음으로 하나된 공동체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나 귀하고 감사하다.

세상의 방법으로는 있을 수 없는 생명 공동체가 교회인 것이다.

세상의 방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공동체가 교회 공동체이다.


오늘 예배 말씀속에서 한 사람의 감사가 공동체의 감사가 된다.

한 사람의 기쁨이 공동체의 기쁨이 된다는 말씀이 들렸다.

그렇다. 세상에서는 서로 자기가 높아지려 하고 자기가 앞서가려고 하고

그러기위해 속이고 또 속이며 누가 나를 앞서가기라도 할까봐 염려하고 시기질투하며 온갖 술수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머리로하는 몸된 교회의 지체는 한 사람의 감사가 모두의 감사, 모두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복음으로 선명한 사람이 공동체 모두를 깨우는 은혜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정말 이것은 지체로서 서로가 하나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하나의 조직이고 세포 하나 하나로 믿고 여겨질 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 하나됨을 믿고 여겨지고 누림도 바로 성령의 역사인 것이다.

사도행전 말씀을 찾아 읽으며 초대교회 제자들이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어떤 간절함으로 성령님을 바라고 기다렸을지 상상을 해 보게 된다.

그리고 기도하게 된다.

주님, 제게도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의 성령충만함을 더하여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행4장29절)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메시아이심을 전하면

그들 앞에 놓인 것은 핍박과 고난과 죽음인 것을 알았다.

예수님이 눈앞에 보이고  함께하실 때는 세상 두려울 것이 없었던 제자들이다.

그런데 놀라운 이적을 행하시고 권능을 행하셨던 그분이 제자들의 예상을 뒤엎고 십자가에 고난받고 힘없이 돌아가셨다.


그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진짜 하나님이시라면 그 정도는 거뜬히 이기고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얼마나 크신 능력이 있는 분이심을 보이길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묵묵히 고초를 당하시고 죽으셨다.

제자들 마음이 얼마나 낙심이 되었을까?

낙심된 그 마음은 제자들을 꽁꽁 숨어 있게 했다.

죽음 앞에 두려워 벌벌 떨게 했다.


그런데 그토록 낙심되고 비참한 모습의 제자들을 다시 사신 예수님께서 찾아가 주신 것이다.

이땅에서는 있을 수 없는 예수님의 부활은 당신이 성경에 예언된대로 오셨고

썩지 않을(행2: 27, 31) 몸으로 오셨음을 제자들에게 만지게 하시어(요일1:1) 믿게 해 주셨다.

너무 놀라 믿기지 않는 예수님의 부활하심이 진짜 일어난 사건이고 제자들이 정말로 만났기에 그들은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제자들을 40일 동안 여러 차례 만나주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오신 나라로 다시 올라가시며 보혜사 성령님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성령 하나님이 누군지 알 수 없었던 그들이지만 예수님께서 당신 대신 보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에

그들은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모여 간절히 간구하였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도망이라도 갔지만 부활도 알고 영원한 나라도 알아버린 그들은

이제는 도망갈 수 없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마귀권세 아래에 있는 흑암인 세상에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신다고 하니

그들은 생명처럼 성령님을 기다리고 성령충만을 간구한 것이다.


"내게도 2000년 전 제자들과 동일한 마음으로 성령충만을 구하게 하소서."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4장31절)

모인 무리가 빌기를 다할 때 모두가 성령 충만을 받으며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세상 권세 잡은 그 누구 앞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들의 힘에 있지 않았다. 바로 성령충만이었다.

성령충만할 때 복음은 그 사람에게서 튀어 나오게 되어 있었다.

입술로, 삶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나의 노력으로가 아니라 성령님께서 도우시는 것이었다.


세상은 가짜인권인 동성애로, 이데올로기로, 이슬람세력으로 교회를 무너뜨리려 악의 대연합을 이루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배를 120년 동안 만들고 있을 때

사람들은 이세상이 전부인 양 세상 낙을 즐기며 살고 있었다.

그리고는 한결같이 배를 만드는 노아를 조롱하고 비웃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선명하니까 배를 만들 수 있었다.

성령충만할 때 나를 드릴 수 있다.


예수님도 성령의 잉태함으로 태어나시고 모든 사역에 성령께서 함께 하셨다.

'원숭이 잡는 법'이란 영상에서 보면 원숭이는 원주민이 미리 넣어둔 미끼를 먹으려 하다가 그만 그 원주민에게 잡혀간다. 그 원주민이 마귀이고 원숭이가 사람인 것이다.


성령충만함이 임할 때 원숭이가 놓지 못하는 손이 놓아진다.
먹이를 쥐고 있는 원숭이의 손을 보며 그 손 펴기만 하면 되는데 그 원숭이 참 어리석다고 생각되었었다.

그런데 잡고 있는 손 하나 펴는 것도 이제 보니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 먹이를 만져보고 먹어 봤기에 내 힘으로는 내려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성령충만해야지만 이땅에서 익숙한 옛사람의 습관이 내려 놓아지고 끊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충만, 예수충만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끝까지 뜨겁게 달려갈 수 없는 것이다.

성령충만해야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전할 때 내가 살고 가정이 사는 것이다.


성령님이 눈에 보이는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분명 제자들에게 약속하셨고 진짜로 성령님을 보내셨다.

그 성령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하고 계시는 것이다.

나와 함께하시는 그분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의뢰하며 나아가는 것이다.


매일 매일 새벽을 깨우는 기도로 간절히 간구할 때

성령님의 충만함이 나를 사로잡고 세상이 감당 못할 주의 제자가 될 줄 믿는다.

주님의 일하심을 기대하고 사모한다.